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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교훈 안에 2015. 6. 29. 20:33

오늘은 마태복음 8장17절에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에서 "이루다" 에 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이루다." 에 관하여는 앞서 기재했던 글 중에서 이미 살펴 본(2015년2월15일자,2014년11월1일자) 적이 있었지만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은 선지자의 글, 그 중에서도 이사야의 글을 많이 인용하시면서 그 글이 이루어짐 곧 응함(미리 예언한대로 약속한대로 그 약속이 나타나고 드러남)
이 된 것에 대하여 4복음서에 많이 기록하고 있으며 또한 이사야의 글은 모든 선지자(大선지자,小선지자)의 글들을 대표하는 글(말씀)이며 그리고 그것을 기록한 사람들은 모두가 다른 사람이지만 그 기록된 내용들은 거의 반복되어 같은 글들을 담고 있으니 이유는 그 저자가 "에스겔", "다니엘" 하는 그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이시기 때문이며 이사야의 글 뿐만아니라 예수님은 모세의 글(율법 곧 모세오경)과 시편의 글들도 많이 인용하시면서 첫 번에 오셨던 예수님의 때에 그 글들이 이루어진 것들에 관하여 말씀하셨으니 이는 누가복음 24장44절에 "~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 하고 쓰고 있듯이 "예수님" 이라는 사람을 가르켜 하신 말씀이 아니라 "그리스도" 에 관하여 이루어진 것을 말씀하신 것이며 더욱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을 첫 번에 오셨던 예수님의 때에 나타내고 드러내서 다 이루셨다면 두 번째 다시 오실 이유도 목적도 없다는 것을 잡아 내셨으면 한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인용하신 이사야의 글은 이사야 53장4~5절에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하는 것처럼 질고(疾苦), 즉 여기에서 한 가지 항상 염두에 두셔야 할 것은 물론 말기 암(癌)에 걸려서 시한부를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보다 슬프고 마음 아픈 일이 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다음에야 모든 질병은 병원에 가서 빨리 치료를 받아야 하며 또한 생활 속에서 항상 건강을 관리하며 병에 걸리지 않도록 예방에 애써야 하며 더불어 사고로 인하여 생긴 모든 질환 또한 빨리 병원을 찾아 치료를 하는 것이 맞는 것이니 하나님이 그리고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 살리고자 하신 것(요한복음 6장63절)은 육(肉) 곧 우리의 몸의 신체를 고쳐서 낫게하고자 살리고자 하신 것이 아니라 영(靈) 곧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라고 하는 "정신 세계" 이니 쉽게 말해서 우리가 보고 있는 눈이 어떤 이유로 실명(失明)하여 앞을 못 보는 시각장애인이 되었다고 하면 이보다 더 안타까운 일은 없으리라. 그러나 마음의 눈이 어둡고 지혜롭지 못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다고 하신 유쾌하고 좋은 날(사도행전 3장19절)을 분변하지 못하고 찾아가는 못한다면(베드로전서 3장21절) 이보다 더 큰 낭패가 어디에 있을까? 하는 것이니 그런즉 우리의 질고는 자신의 뜻대로 마음대로 안 된다고 불평하며 짜증내고, 어떤 일이 못마땅하다고 하여 상대편에게 화풀이 하듯이 사나워져서 함부로하며, 상대편이 불편하게 곤란하게 만들었다고 언짢아하며 다투며 비방하고 막말을 퍼부으며 다스리지도 제어하지도 조절하지도 인내하지도 못하는 우리의 연약하고 나약하고 취약한 마음 곧 정신세계가 병들어 아픈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짊어지신 것을 말씀하여 기록하신 것이며 우리의 완악하고 궤휼한 허물과 죄악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고난 받으며 찔리고 상한 것은 우리가 아니라 그리스도였으니 우리는 미우면 미워하고 싫으면 싫어하고 마음에 안 들면 불평하고 언짢으면 다투고 못마땅하면 얼굴을 찌푸리고 인상을 쓰며 분노하고 사나워져서 함부로 할 줄만 알았지 그리스도가 본(本)을 보이신 그 모습처럼 하나님께로 지으심을 받은 (다른)사람을 대하여 버리고 비우고 죽이지 못하였던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의 말씀으로 다시 돌아가서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 첫 번에 오셨을 때 선지자가 하신 이 말씀대로 우리의 연약하고 나약하고 취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마음과 생각에 병이 든 것을 짊어지셨다 함을 온전히 다 이루셨다면 왜 아직도 우리는 우리 마음을 어찌하지 못하고 하루에도 열두 번은 왔다갔다, 오락가락, 이리저리 다니며 어지럽고 시끄러워서 그것을 자신의 내면에서 승화시키고 순화시키지 못하고 불평하며 미워하고 비방하며 훼방하고 사나워져서 무서운 도깨비같이 변하여 다투면서 못됐고 나쁘고 악하며 모진 말들을 서슴치 않고 내밷고 하는 것일까? 하는 것이니 로마서 9장27~29절에 "~ 이사야가 이스라엘(믿는 자들)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뭇 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사 필하시고 끝내시리라 하셨느니라.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 바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시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하나님의 진정한 구원은 그리스도가 다시 오신다고 하신 그 때에 다 이루시고 반드시 끝내시리니 "소돔과 고모라" 는 6000년전 롯의 때에 있어졌던 일들로 소돔과 고모라와 같이 멸망하고 패망하며 사망(죽음)하지 않았다 뿐이지 우리 또한 태초(창세기)로부터 죄를 다스리지도 제어하지도 조절하지도 못하여 못됐고 나쁘고 악하며 꼬이고 부정적이고 사납기는 그 때나 지금이나 거기나 여기나 별반 다른 것이 없으니 이는 우리에게 구원 곧 복(福)과 장구한 생명과 안식으로 인도하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기록하여 주신 거울과 경계의 말씀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시고 진정 믿고 의지한다고 한다면 그리스도가 보이신 본(本)을 좇아 행하여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