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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교훈 안에 2015. 9. 20. 12:20

오늘은 마태복음 11장19절에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에서 "지혜(智慧)"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지혜" 에 관하여는 앞서 기재했던 글 중에서 이미 살펴 본(2015년1월1일자,2013년11월17일자) 적이 있었지만 사람이 어떤 일이나 문제나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사람의 타고난 기질을 발휘하여 그 이치나 됨됨이를 파악하고 현명하게 대처해 나갈 방법을 알아내는 능력을 뜻하며 중요한 것은 모든 일과 문제와 어떤 상황은 사람으로 말미암아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올바른 "지혜" 라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얼마나 슬기롭게 대처하느냐를 말하고자 전하고자 하여 기록하신 말씀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셔야 하며 그런즉 지식(체계화된 인식이나 정보)과는 엄연히 큰 차이가 있으니 그래서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은 현실을 살아가는 지금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더 나아가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그리스도를 의지함으로 말미암아 먼 미래의 유쾌하고 좋은 날(사도행전 3장19절)을 소망하고 있는 입장에서 그 길을 걸어감이 마치 안개와 같이 희미하게 뿌옇게 잘 보이지 않는 길을 밝혀 주는 "지혜서(智慧書)" 이지 "지식서(知識書)" 가 아니며 그러나 그 지혜가 옳은 것인지 아닌지를 대변해 줄 수 있는 것은 핑계할 수 없는 온전한 지식이 바탕이 되어야 하는 필요충분조건이기 때문에 온전하게 체계화된 지식이 뒷받침 되어 주어야 하는 것은 또한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잡아 내셨으면 한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그 바로 앞 구절 18절에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저희가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 하고 쓰고 있듯이 유대인들이 (세례,침례) 요한의 하시는 행동과 인자 곧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 하시는 행동을 보고 무언가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으로써 이는 사람(인생)은 행동(행실)으로 보여주기 보다는 혀로 놀리는 말이 더 앞서서 말로 다 하고 말로 해먹으며 속내는 보이는 것이 아니니 얼마든지 시커먼 속내를 감추고서라도 말로는 못할 것이 없어서 쉽게 말해 "말로는 누가 못해" 하기 때문에 오늘 본문의 말씀에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하는 것처럼 "지혜" 는 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행함" 으로 말하는 것이며 그 행함은 야고보서 3장13~14절에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하지 말라." 하고 쓰고 있듯이 참된 지혜 곧 하나님 나라의 하늘의 지혜와 명철과 교훈은 사람에게 무서운 얼굴을 하고 엄하게 호통을 치고 다그치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내 가족(부모,형제)에게 하듯이 온유하고 너그럽고 자상하게 권하고 권면하며 권유하는 것(디모데전서 5장1~절)이며 하지만 불호통을 치면서 사납게 윽박지르며 굴욕감을 느끼게끔 하게 되면 그러한 말을 들은 상대편은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똑같이 되어서 악하고 독한 마음으로 쏘아 붙이면서 다투어 대립각을 세우거나 여의치 못하면 자신보다 아래에 있거나 약한 다른 사람에게 그와 똑같은 방법으로 화풀이를 하게 되기 때문에 이는 참된 지혜가 절대로 될 수 없으며 자신의 육체에서 나오는 정욕적이고 마귀적이며 세상적인 "땅의 지혜" 라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2장6~8절에 "~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의 없어질 관원의 지혜도 아니요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박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는 것처럼 이 지혜가 오늘날 살아서 하나님을 믿고 그리스도를 의지하려는 우리들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하나님의 지혜가 맞는 것이 첫 번에 오셨던 예수님의 때에 이 지혜를 만약 알았다면 그 당대에 하나님을 믿으며 의지하고 있던 율법사들과 대제사장들과 유대인들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박지 않았을 터이니 십자가에 못 박는다는 것은 물론 빌라도의 손을 빌어 그리스도를 죽음(살인)에 넘기긴 하였으나 그들의 못됐고 나쁘고 악하며 꼬이고 부정적이고 사나운 심성이 죄 같지도 않는 죄를 정하여 때리며 욕하고 침 밷으며 비방하고 결국에 그 밉고 못마땅하고 언짢아하는 분노로 살인까지 서슴치 않았으니 죄가 있다 할지라도 사람을 죽이고 때리는 죄가 아닌 다음에야  이 세상에 죄 짓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이며 그러나 사람의 끊임없는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좌지우지 하고 싶은 정욕(욕심,욕구,욕망)과 높은 마음을 버리고 비우고 죽이는 지혜를 알았다면 예수님을 십자가(극형)라는 이름으로 죽이지 않았을 터이요 그리스도는 그들과 똑같이 되지 않기 위해 버리고 비우고 죽이는 "죽으심" 을 받아 들여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소망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본(本)을 보이신 것이니 믿고 의지한다면 그동안 우리의 육체의 욕심을 따라 행하던 땅의 지혜(야고보서 3장14~16절)를 버리고 하나님 나라의 하늘의 지혜(야고보서 3장17~18절)를 따라 지켜 행하여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