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짜기 속에 있는 네 길을 보라 네 행한 바를 알 것이니라.~ 너는 광야에 익숙한 들 암나귀가 그 성욕이 동하므로 헐떡거림 같았도다...
오늘은 이사야 22장5절에 "이상의 골짜기에 주 만군의 여호와께로서 이르는 분요와 밟힘과 혼란의 날이여 성벽의 무너뜨림과 산악에 사무치는 부르짖는 소리로다." 에서 "이상(異狀)의 골짜기"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먼저 오늘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이 이사야에게 어떤 무대(이상의 골짜기)를 하나를 보이셨는데 그곳에는 평화와 평강과 화평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전쟁이라도 일어난 후의 어수선한 모습과 상황에 관하여 보이신 것이며.....
"이상" 은 말 그대로 실물(참 형상)은 따로 있고 그 실물에 대한 그림자로써의 다른 모양과 형상을 뜻하며 "이상" 에 대하여는 앞서 기재했던 글 중에서 오래 전에 이미 살펴 본(2015년3월31일자,2013년12월22일자,13년7월28일자) 적이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 종 선지자들에게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케 하기 위하여 무언가를 보이시긴 보이시되 이상(호세아 12장10절)으로 보여 주셨으며 그러나 어느 누구나 보면 알 수 있도록, 알아 볼 수 있도록 처음부터 실물(참 형상)로 보여 주신 것이 아니라 그에 준(準) 하는 형상, 즉 이상으로 하신 것은 봄으로 들음으로 고침을 받아서는 안될 사람(이사야 6장10절)도 있기 때문이요, 그들은 그 마음에 불일듯 이는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욕심과 높은 마음으로 말미암아 사곡하고 궤휼하며 완악(마태복음 13장15절)하게 행하기 때문이요, 그러한 사람이 고침을 받으면 그 은혜에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또 다른 형상(로마서 1장23절)으로 바꾸어 버리기 때문이니 그런즉 반드시 누구에게는 감추고 숨겨야 할 비밀(아모스 3장7절)한 것이므로 감추고 숨기는 방법이 "이상" 이나 "환상" 이나 "비유" 와 같은 그림자(초보,부분)로 하셨지만 진심으로 믿고 의지하는 우리들이 하나님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선한 양심(베드로전서 3장21절)으로 그 이면에 있는 깊은 뜻 곧 참 형상을 찾아 잡아 내실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리고 "골짜기" 는 잘 알고 계시듯이 산과 산 사이에 있는 움푹 패인 곳을 뜻하며 이는 곧 산(山)이 많은 곳을 의미하며 "인산인해(人山人海)" 하는 것처럼 야곱 자손의 생육,번성으로 말미암아 많은 백성을 이루고 하나의 나라를 이룬 상황을 뜻하며 그러나 그 골짜기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사건)과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오늘 본문의 말씀이 있는 이사야 22장의 말씀이며 그 안에 있는 사람들 곧 한 때는 하나님의 백성(자녀,성도)들이었던 야곱 자손 곧 "이스라엘" 에 관하여 기록하신 것이며 항상 염두에 두셔야 할 것은 어찌 되었건 그 때 그 시대의 그 세대 사람들은 이제 죽어서 이 세상에 없고 이제는 지금 살아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있다고 하는 우리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니, 즉 1절에 "이상 골짜기에 관한 경고라. 네가 지붕에 올라감은 어찜인고." 하고 쓰고 있듯이 어떤 난리통에 지붕에까지 올라갈 정도로 깜짝 놀라고 두려운 거울과 경계의 말씀이요 또한 언약(약속,예언)의 말씀이라는 것이며 그 난리통은 2~3절에 "훤화하며 떠들던 성, 즐거워하던 고을이여 너의 죽임을 당한 자가 칼에 죽은 것도 아니요 전쟁에 사망한 것도 아니며 너의 관원들은 다 함께 도망하였다가 활을 버리고 결박을 당하였고 너의 멀리 도망한 자도 발견되어 다 함께 결박을 당하였도다." 하는 것처럼 "훤화하며 떠들던 성", "즐거워하던 고을" 은 하나님의 관심사였던 "예루살렘 성",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다는 "이스라엘 족속" 이며 그들이 죽임(패망,멸망)을 당하였는데 칼에 맞아 죽은 것도, 전쟁이 일어나 사망한 것도 아니며 관원(지도자,우두머리)부터 그 백성들에 이르기까지 누군가에게서 헤어나올 수 없을 정도로 에워싸이고 사로잡혀 포로가 되어 결박을 당하였기 때이니 마치 애굽에게 430년 동안 자유도 주권도 없이 죽은듯이 노예 생활을 하던 것과 같고 70년 동안 바벨론에 사로잡혀 이름도 없이 문화(문명)도 말살된 채 살아가는 것과 같은 것이며 이는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닌 것임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렇다면 그들이 그렇게 된 이유는 8~11절에 "그가 유다에게 덮였던 것을 벗기매 이 날에야 네가 수풀 곳간의 병기를 바라보았고 너희가 다윗성의 무너진 곳이 많은 것도 보며 너희가 아래 못의 물도 모으며 또 예루살렘의 가옥을 계수하며 그 가옥을 헐어 성벽을 견고케도 하며 너희가 또 옛못의 물을 위하여 두 성벽 사이에 저수지를 만들었느니라. 그러나 너희가 이 일을 하신 자를 앙망하지 아니하였고 이 일을 옛적부터 경영하신 자를 존경하지 아니하였느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유다(이스라엘)를 지킬 수 있는 방어선이 뚫렸는데 그제서야 무기고의 병기를 보았고 다윗성(예루살렘)이 무너지고서야 성벽을 쌓고 마실 물을 얻기 위해 비로소 저수지를 만들었으니 속담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 격이며 14절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친히 내 귀에 들려 가라사대 진실로 이 죄악은 너희 죽기까지 속하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는 것처럼 그들의 그 욕심과 높은 마음에서 비롯된 못됐고 나쁜 죄악에 사로잡히고 결박 당하여 헤어나올 수 없기를 죽을 때(멸망,패망)까지 할 것이요 거기에서 헤어나올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욕심과 높은 마음을 버리고 비우고 죽이는 것 뿐이지만 그들의 마음이 이를 허락지 않으니 이는 그 지으신 자를 앙망하지도, 존경하지도 않는다는 반증이며 이로 인한 되어질 결국을 그들의 죽임 당한 "이상 골짜기" 를 하나님이 이사야에게 보이신 것임을 잡아 내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이는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 누가복음 12장51절에서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케 하려 함이로라." 하신 것과 같은 것이며 화평하고 화목하는 것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하늘의 지혜와 명철과 교훈의 말씀(야고보서 3장17~18절)을 통하여 욕심을 버리고 높은 마음을 비우며 사나운 성정을 죽일 때에라야 가능한 것이니 이것이 진정 우리의 마음이 방어선을 지킬 수 있는 병기(무기)이며 이를 본(本)으로 보이시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기를 죽기까지 하신 것임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