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 백배, 혹 육십배, 혹 삼십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마태복음 13장8절)
오늘은 마태복음 13장8절에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혹 백배, 혹 육십배, 혹 삼십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에서 "결실(結實)"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그 앞 구절 3절에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가지를 저희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 하고 쓰고 있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씨(누가복음 8장11절)" 에 빗대어 말씀하실 때에..... "씨를 뿌리는 자" 는 "농부" 요 곧 씨가 말씀이니 당연히 "하나님(요한복음 15장1절)" 이 농부시며 또한 농부가 씨를 뿌릴 때에는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때(갈라디아서 6장9절)가 이르렀을 때에 당연히 결실을 보고자 하는 것이요 물론 그 결실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며 또 빗대어 비유로 하신 말씀이니 씨가 떨어진 "땅" 곧 "흙" 이나 "밭" 은 사람의 마음이요 그런즉 사람의 마음 밭에 농부(하나님)가 씨를 뿌려 결실을 보고자 하시는 것이며 사람은 그 결실로 하나님께 "상(償)" 을 받게 되는 것이며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고자 하시는 상(고린도전서 3장8절)은 복(福)과 장구한 생명과 안식(安息)으로 갚으시고자 하시는 것이며 그러나 좋은 땅 곧 좋고 온유하고 선한 마음이 되지 못하여 결실치 못하는 "길 가" 나 "돌밭" 이나 "가시떨기 위(4~7절)" 는 씨를 가졌다고 하여 하나님을 믿고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자가 아니라 그 씨로 결실, 즉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 하듯이 열매 맺는 과실 나무에게 있어서 결실하지 못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니 아무 쓸모가 없어져 불쏘시개로 써 먹게 되는 것처럼 하물며 식물이 그러하면 사람에게 있어서의 결실은 말할 필요도 없으니, 즉 어떤 일을 한 것에 대한 성과나 그 노력한 것에 대한 보람된 것이 나타나지 않거나 보이지 않는다면 이는 헛된 일을 한 "헛 일" 이요 헛 고생을 한 것이며 특별히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그 뿌려진 씨로 말미암아 맺어야 할 결실은 요한복음 6장27절에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하는 것처럼 썩는다는 것은 죽어 없어지는 것이요 하나님을 잘 몰라 안 믿고 못 믿는 저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되어 똑같은 방법으로 결실을 보고자 하는 것이면 믿고 의지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다시 말해서 죽게 되면 최소한 죽은 그 당사자에게는 없어지고 사라질 재물이나 명예나 권세를 위하여 수고하고 고생하는 것이라면 그들과 다른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니 하나님은 지금껏 씨를 뿌리기만 하셨지 한 번도 결실하여 이를 거둬 들인 적이 없었으며 그러나 이제는 결실 할 때가 되었다면 우리의 안식할 날(히브리서 3,4장)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반증이며 "안식(安息)" 에 관하여는 앞서 기재했던 글 중에서 이미 몇차례 살펴 본(2015년10월6일자,15년8월10일자,2013년12월23일자) 적이 있으니 그 글들을 참고하시기 바라며.....
야고보서 1장18~20절에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지금 살아 있어서 하나님을 믿고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우리로 처음 익은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하나님)의 뜻을 좇아 낳으셨으니 하나님의 뜻은 사람이 성내지 않는 것이며 성낸다는 것은 사나워져서 거침없이, 서슴치 않고 함부로 대한다는 것이며 사람이 꼬이고 부정적이고 사나워지는 이유는 자신의 뜻하는 대로 자신의 마음대로 하고 싶은 욕심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며 욕심을 버리고 높은 마음을 비우며 사나운 성정을 죽인다면 이 세상에 이해 못할 일도, 성내고 화낼 일도, 용서(용납,관용) 못할 일도 없으니 그러나 이렇게 성내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요 자기 자신의 뜻 곧 사람의 뜻이며 이러한 모습(행실,행위,행동)은 씨 뿌린 자의 바램과 소원대로 열매(결실) 맺지 못한 것이며 그래서 하나님이 바라시고 원하시는 뜻대로, 뜻을 지켜 행하는 모습을 본보기로 보이시기 위해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보내셨으며 그리스도는 그 뜻을 지켜 행하시려 "그리스도의 죽으심" 과 다시 사신 "부활" 을 본(本)으로 우리에게 보이셨으며 우리 또한 처음 익은 열매가 되기 위해서는 그 자취를 좇아 행하여야 한다는 것을 잡아 내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의 말씀이 있는 마태복음 13장으로 다시 가서 9절에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하시면서 23절에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배, 혹 육십배, 혹 삼십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하는 것처럼 바로 앞서 기재했던 글 중에서 "비유" 에 대하여 살펴 볼 때 언급하였었지만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 66권은 이상(異狀)으로, 비유(比喩)로 기록하였기 때문에 참 형상(실체,실물)이 아니라 그림자이니 표면적으로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반드시 오해하거나 와해하게 되므로 그 이면에 숨겨져 있는 온전한 뜻을 일깨우고 깨달아야 하며 깨달았다면 이를 결실(열매) 곧 행동(행실)으로 옮길 것이며 깨닫지 못했다면 여전히 하나님의 뜻으로 하지 않고 사람의 뜻으로 할 것이며 결실의 최종 목적지는 "부활" 이며 고린도전서 15장17절에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19~20절에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하고 쓰고 있듯이 죽으심으로 다시 사는 부활을 본(本)으로 보이신 것은 우리들로 그 자취를 좇아 행하게 하려 하심이요 믿고 의지한다면 그와같이 행하여야 할 것이며 그러나 믿고 의지한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일깨우고 돌이켜 고쳐 행하지 못한다면 깨닫지 못한 자요 그런즉 결실치 못한 자니 헛 일이요 헛 고생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