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것과 옛 것을 그 곳간에서 내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오늘은 마태복음 13장52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 것과 옛 것을 그 곳간에서 내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에서 "새 것" 과 옛 것"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먼저 오늘 본문의 말씀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 마태복음 13장(비유장)의 모든 말씀을 마치시고 이 모든 것의 최종적인 결론의 의미로 하신 말씀으로써 천국 곧 하나님 나라에서 그 나라의 법(계명)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 된 사람이라면 그 마음에 하나님이 사람(제자)에게 원하시고 바라시며 진정으로 기뻐하시는 그 뜻과 마음을 알아야(깨달아야) 할 것이요 또한 그것을 알았다면 반드시 몸에 배어서 자연스럽게 행동(행위,행실)으로 반드시 나와야 하니 좋고 너그럽고 선한 것이라면 마음에 그득히 담아 이를 행하여야 할 것이요 못됐고 나쁘고 악한 것이라면 마음 가죽을 베어 내어 제하여서 미련을 두고 쳐다 보지도, 행하지도 말아야 할 것이며 이는 먹으로 종이에 기록한 것이 아니라 사람(제자)의 마음과 생각에 마치 서기관과 같이 기록이 되어 있기 때문이니 마음과 생각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 나라의 법과 계명과 율례는 세상적이고 정욕적이며 마귀적이어서 서로 불평하며 미워하여 다투고, 꼬이고 부정적이고 사나운 성정으로 비방하고 시기하며 함부로 하는 땅의 지혜가 아니라 하늘의 지혜와 명철과 교훈의 말씀(야고보서 3장14~18절)이며 이는 그 어떤 값진 금,은,보화나 보물이나 진주(44절,46)절와도 비교할 수 없는 없는 것으로써 마치 집주인이 자신의 곳간에서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필요한 것들을 마구 꺼내 올 수 있는 것처럼 그 마음에서 꺼내어 사용할(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래서 그 마음의 곳간에서 꺼내어 사용할 필요한 것들은 다름 아닌 태초(창세기)부터, 처음(옛 것)부터 말씀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이는 다름아닌 그리스도에 관한 것들(골로새서 1장26~27절)이며 "그리스도" 에 관한 것들이라 함은 그가 가르치고 전하시며 또한 가르치고 전하시기만 하신 것이 아니라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기를 죽기까지 하시며 지켜 행하신(히브리서 10장7절) "죽으심" 에 대한 하늘의 지혜와 명철과 그 교훈의 말씀이며 이는 4복음서를 비롯한 사도 바울의 서신서와 사도 요한이 기록한 계시록에 이르기까지 기록이 되어 있으며 그러나 창세기로부터 말라기서에 이르기까지 구약 성경 어디에도 "그리스도" 의 "그" 자도 보이지 않으니 이는 선지자들에게 다른 모양 곧 이상(異狀)으로 보이시고 이를 기록하게 하셨기 때문이며 신약 성경에서는 그나마 많은 부분 "그리스도" 에 대하여, 즉 그 죽으심과 그것이 온전한 죽음이라면 반드시 "부활" 로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어야 하므로 "부활" 또한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으로써 이를 기록하고는 있으나 이 또한 비유로 빗대어 말씀하여 사도들에게 기록하게 하였으니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 에 관한 것 곧 그 죽으심과 부활은 구약 성경(옛 것)과 신약 성경(새 것)을 자연스럽게 연결해주는 연결 고리 역할을 해주는 것으로써 이상으로 보여 잘 보이지 않는 것들을, 비유로 빗대어 어렴풋이 드러내어 잘 돋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밝히 나타내고 드러내어서 이를 온전히 알고 깨달아(요한복음 14장29절) 이를 행실(행동,행위)로 옮겨 행할 수 있어야 온전한 천국 곧 하나님 나라의 제자요 서기관으로써 그 곳간에서 자유자재로 꺼내어 사용하는(행하는) 집주인과 같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잡아 내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전도서에서도 이미 밝히 말씀하셨듯이 1장9~11절에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 오래 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이전 세대를 기억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가 기억함이 없으리라." 하고 쓰고 있듯이 하나님의 영원무궁한 시간과 세월 속에서 새 것이라 할 것도 옛 것이라 할 것도 없지만 우리 사람(인생)에게 있어서 새삼스러워 새롭게 여기는 것은 그 삶이 길어야 100년이 채 되지 못하기 때문이요 그 안에서 우리가 경험하며 느끼고 부딪히는 모든 것들이 난생처음 맛보고 느끼는 것들이지만 가늠하기 어려운 하나님의 영원무궁한 시간과 공간에 비하면 그져 "새발에 피" 정도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우리 자신의 연륜과 경험과 나이에 비례하는 어떤 기준과 관점이나 가치관과 성향과 성격이나 욕심내는 유익이나 이익으로 잘난체 하며 상대편을 자신의 뜻대로 마음대로 좌지우지 수족 부리듯이 하고 싶어하는 높은 마음(교만)은 그야말로 헛되고 헛된 것에 불과하며 이를 고집하며 관철시켜 이룩한 성공이라는 이름의 모든 수고와 고생과 노력은 헛 일과 헛 고생에 불과하다는 것을 기억하셔야 하니 다만 요한일서 2장7~11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의 들은 바 말씀이거니와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빛 가운데 있다 하며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두운 가운데 있는 자요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운 가운데 있고 또 어두운 가운데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어두움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니라." 하는 것처럼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의 (율)법이요 계명을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은 "새언약(신약)" 으로 말씀하고 이를 사도 바울과 사도 요한은 새 계명처럼 기록하고 있지만 이는 처음(창세기)부터 우리에게 부탁하신 하나님의 옛 계명, 옛언약(구약)이며 이는 다름아닌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피조물, 그 중에서도 지으신 "사람 사랑" 에 관한 것들이며 그러나 우리 자신의 욕심이, 높은 마음이, 사나운 성정이 사람 사랑하는 것을 가로막고 서로 미워하고 불평하고 비방하고 다투며 "욱" 하고 "버럭" 하면서 맹수처럼 사나운 모습으로 변하게 만들었으니 이를 버리고 비우고 죽여야만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사람 사랑(고린도전서13장)" 하는 것을 온전히 지켜 행할 수 있으며 이를 본(本)으로 보이시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죽으심" 을 우리에게 나타내고 드러내어 보이셨으며 이는 곧 사람으로 온전히 살게하는 "부활의 빛" 이며 이 생명의 빛을 사람의 마음속에 창조하고자 하신 것이 하나님이 태초부터 정하신 뜻인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