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을 행하는 자는 궤사한 입술을 잘 듣고 거짓말을 하는 자는 악한 혀에 귀를 기울이느니라...
오늘은 이사야 28장11절에 "그러므로 생소한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리라." 에서 "생소한 입술" 과 "다른 방언(方言)"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먼저 "방언" 에 관하여는 앞서 기재했던 글 중에서 이미 오래전에 살펴 본(2013년5월27일자,13년1월22일자) 적이 있으니 더 많은 내용을 보기를 원하신다면 그 글들을 참고하시기 바라며..... 오늘 본문의 말씀은 그 앞 구절 3절에 "에브라임의 취한 자의 교만한 면류관이 발에 밟힐 것이라." 하시면서 7절에 "이 유다 사람들도 포도주로 인하여 옆걸음 치며 독주로 인하여 비틀거리며~ 이상을 그릇 풀며 재판할 때에 실수하나니~ " 하고 쓰고 있듯이 에브라임 곧 북이스라엘(사마리아)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유다(예루살렘) 사람들 또한 교만의 면류관에 취하여 공평과 공의로 재판하지 못하며 자신들의 기준이나 관점에 의해서, 유익이나 이익에 따라 치우쳐서 이리 비틀, 저리 비틀하면서 그릇 풀고 있으니 하지만 바로 앞서 "에브라임" 에 관하여 살펴 본 글(2015년12월19일자)에서도 언급하였었지만 지나간 그 시대의 그 세대의 죽어 이 세상에 없는 그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잡아 내셔야 하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며 믿고 의지한다고 하는 우리 시대의 우리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니.....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은 자그마치 "6000년" 이라고 하는 어마어마한 긴 세월을 기록하고 있는 "역사서" 이며 물론 하나님께는 잠깐 피다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찰나의 시간이지만 사람(인생)에게는 정말 까마득하여 나고죽고, 나고죽고, 한 세대가 가고 한 세대가 오고 하기를 수백번도 더 쳇바퀴 돌듯 돌고 돌아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이 시점에 와 있으니 그러나 여느 역사책들과 분명 차이가 있고 확연히 다른 점이 있음은 6000년을 한 줄로 이어놓은 것처럼 이스라엘의 역사(歷史) 곧 그 족보와 계보를 기록하고 있지만 이를 말하고자 알리고자 함이 아니라 이는 단지 표면적인 것에 불과하며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 곧 그리스도의 나심를 깨닫게 하고자 함이니 그렇기 때문에 아담이 때(시대)- 노아의 때- 아브라함의 때- 이삭의 때- 야곱의 때- 요셉의 때- 모세의 때(시대)... 등등등 이어진 것이 아니라 한 시대시대마다, 그 한 세대세대마다 묻어있고 감추어져(숨어) 있는 흔적(표적)을 찾아야 하므로 여기에서 조금, 저기에서 조금 말씀을 취하여(찾아서) 그 속에 있는 교훈의 말씀은 본으로 삼고 경계의 말씀은 더욱 조심하고 근신해야 함이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의 역사이니 마태복음 1장과 누가복음 3장에서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나시기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지만 히브리서 7장3절에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그리스도를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난 대제사장이라 하시면서 그 나심에 관하여 육(혈육,혈통,육정)적인 사람의 계보(족보)와 그 역사를 무관(無關)하게 여기니 요한복음 8장57~58절에 "유대인들이 가로되 네가 아직 오십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 예수께서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하시니~ " 에서 본 바요 마가복음 12장35~37절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새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뇨.~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더라." 에서 본 바니 그런즉 먼저 온(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 먼저 될 자가 많으며(마태복음 19장30절) 그런즉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다른 이(利)를 추구하며 채우고자 한다면 이는 자신의 뜻대로 마음대로 좌지우지 수족 부리듯이 하고 싶은 교만(驕慢)하여지고 경만(輕慢)하여져서 자신의 욕심(유익과 이익)대로 치우쳐서 올바르게 재판(판단,결정)할 수 없게 되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과 노정과는 상관없이 엉뚱한 곳으로 가게 되니 이러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주 생소한 입술(말씀)이 되어 (알아)볼 수도, (알아) 들을 수도 없어 마치 소경과 귀머거리같이 되며 딴(다른) 나라 말소리처럼 들리니 방언으로 들리고 받아들여지게 된다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생소한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는 자" 에 관하여 2절에서는 "주께 있는 강하고 힘 있는 자" 라 표현하여 기록하고 있으며 16절에서는 "시온에 있는 시험한 돌, 견고한 기촛돌" 이라 기록하고 있으며 그를 통하여 22절에 "그러므로 너희는 경만한 자가 되지 말라. 너희 결박이 우심할까 하노라. 대저 온 땅을 멸망시키기로 작정하신 것을 내가 만군의 주 여호와께로서 들었느니라." 하는 것처럼 경만한 자가, 교만한 자가 되지 말기를 기록하고 있으니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사람으로 하여금 코가 땅에 닿도록 낮아지게 하는 말씀인데 사람은 자꾸만 몸과 마음을 상석(上席)에, 상좌(上座)에 두고자 하면 말씀이 생소하게 들리고 다르게 보이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마음이 결국 도착하게 되는 종착지가 하나님이 계시는 "장구한 생명" 에 있는 것이 멸망과 패망과 사망에 있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