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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육체)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교훈 안에 2016. 1. 17. 10:54

오늘은 마태복음 16장21절에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 에서 "고난(苦難)"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고난" 에 관하여는 앞서 기재했던 글 중에서 이미 살펴 본(2015년2월18일자)" 적이 있었지만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생노병사(生老病死)", "희노애락(喜怒哀樂)" 을 겪지 않는 사람이 없고 기뻐서 즐거워하며 행복감을 느끼는 날 보다는 화나고 속상하고 원망스럽고 눈물 쏟은 날이 더 많으며 또한 병들어 아프고 기력이 쇠하여 마음같이 되는 일이 없으며 경제적(돈)인 어려움에 얽매여 먹고 사느라 쓰러지고 넘어지면서 쓴맛, 단맛, 세상의 갖은 고생, 육해공군전까지 다 겪으면서 책도 여러권 썼을 정도로 그동안 힘들고 괴롭고 지치고 외롭고 아프고 슬펐던 사연이 없는 사람이 없으니 그래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잠언서 15장15절에 "고난 받는 자는 그 날이 다 험악하나 마음이 즐거운 자는 항상 잔치하느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매섭게 불어닥치괴 휘몰아치는 시련과 그에 따른 고통을 그져 "고난" 이라 ,"고생과 역경" 이라 여기면서 성질부리면서 원망하고 불평하며 악에 받쳐 사나운 맹수처럼 변한다면 그 남은 날도 그리 평온하기를 바라기는 어렵기 때문에 모든 것은 마음(잠언서 4장23절,12장23절)에서 비롯되고 먹기에 달려 있으니 천국으로 바꾸는 것도 지옥으로 변하게 만드는 것도 전적으로 자신의 몫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러나 어찌되었건 여기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하고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으니 이렇게 겪는 모든 고난과 갖은 고생은 누구를 위한 일도 아니며 누구를 위하여 한 것도 아니니 철저히 "나" 자신을 위하여 겪은 어려움과 고난이며 설령 내 가족을 위해, 내 혈육을 위해 아니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감당해야만 했던 "희생" 에서 비롯된 고난이라 할지라도 결국엔 누가 등 떠밀어 한 것도 아니요 억지로 누가 시켜서 한 것도 아니요 자의(自意), 즉 자신이 좋아서 자신을 위해서 겪은 "고생" 이며 겪어내야만 했던 "환난" 이기 때문에 누구를, 무엇을 원망하고 미워하며 사납게 악에 받쳐서 조급하게 나오는대로 말하고 행하여서는 자신의 어리석음(잠언서 14장29절)을 나타내고 드러내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니 로마서 5장7~8절에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는 것처럼 고난의 최고점은 "죽음" 까지 불사하는 것이며 이를 하나님이 말씀에서는 "사랑(고린도전서 13장)" 이라 기록하고 있으며 세상에서도 그것이 누가 되었건 정말 존경하고 좋아하며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도 죽기까지, 죽어가면서까지 고통과 고난을 감내(堪耐)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더욱이 죄인, 즉 자신이 밉고 싫고 마음에 안 들고 못마땅하며 불편하고 곤란하게 만드는 사람을 위해서 죽어 줄 정도로 고생하고 죽기까지 고난을 겪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이 세상에 죄 짓지 않는 사람이 없고 악한 말과 행동(행실,행위)을 알고도 행하고 모르고도 행하면서 하지 않는 사람은 없으며 하지만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은 그러한 우리 사람(인생)을 위해 죽음까지 불사하는 고난과 환난과 고생을 겪으셨음을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본 바요, 읽은 바요, 가르친 바요, 배운 바이며 또한 "죽음", "죽으심" 이 어찌 육신(신체)의 죽음(로마서 6장2절)만 있는가? 다시말해서 못됐고 나쁘고 악하며 꼬이고 부정적이며 사납게 말하고 행하는 사람을 위하여 나 자신의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내 기분대로,성질대로 하고 싶은 정욕(욕심,욕망)을 버리고 비우고 죽이며 또한 죽여주기란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요 어떻게 보면 있을 수도 없는 일이요 내 목숨을 내어놓을 만큼 진심 좋아하는 내 가족이나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서도 죽어주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인데 우리 사람(인생)은 어느 시대, 어느 세대를 막론하고 죄와 악에서 벗어난 적이 없고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로써 조금만 마음에 안 들고 못마땅해도, 조금만 언짢아지고 불만이 생겨도, 조금만 밉고 싫어져도 서로 물로 (헐)뜯고 다투고 싸우고 시기하고 미워하고 원망하며 사사워져서 함부로하고 비방하고 훼방하니 이처럼 사람(인생)은 죄인 되지 않았을 때가 없는데 이러한 사람(인생)의 죄인 됨을 벗어나 자유롭게 될 수 있도록 로마서 6장에서 그 방법을 알리셨으니 10절에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 12절에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 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 17절에 "~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 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그리스도께서 가르치고 전하시며 가르치고 전하시기만 하신 것이 아니라 몸소 본(本)으로 보이시며 지켜 행하신 교훈의 본(本), 즉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기를 죽기까지 하신 "죽으심" 외에는 결단코 다른 것(방법)이 없으며 죄에 대하여 죽어서 벗어나야만이 하나님 속에 있는 구원 곧 장구한 생명과 영원한 안식으로 나아갈 수 있는 "부활" 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베드로전서 2장21~24절에 "~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 하는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죄를 범치 않으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이 하려고 행한 것은 그져 입을 닫아 잠잠(시편 39편1~9절)하여 타인의 허물(죄됨)에 대하여 보아도 못 본척, 들어도 못 들은척 오히려 하나님의 뜻과 계명을 좇아 온유와 인애로써 관용하며 화평하기를 바라고 배려하고 양보하였으며 어느 누가 자신을 험담하고 욕하고 흉보며 불평하면서 사납게 함부로하는 말을 듣고 행동을 보면서 참고 견딜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그러한 사람을 또한 흉보고 욕하며 불평하면서 미워하고 다투며 업신여겨 함부로한다면 이 또한 똑같은 사람 밖에 되지 않아서 화평과 화목과 평강이 있는 것이 아니라 불화(不和)밖에 남지 않기 때문에 남의 유익과 이익(고린도전서 13장5절) 곧 그 입장과 처지와 상황을 헤아리고 이해하여 잠잠할 수 있을 정도로 버리고 비우고 죽일 수 있는 것이 진정한 "그리스도 교훈의 본(本)의 고난" 이며 고난에 따르는 어떤 고통이나 무너지는 자존심에 대한 슬픔이나 한 번씩 올라오는 분노를 잠재우기 위한 괴로움은 그리스도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나님께 간절한 기도로 하소연 하셨듯 주께 맡기면서 더욱 버리고 비우고 죽이려 애쓰고 노력(훈련,연습)하는 것이 그 자취를 좇아 우리가 지켜 행하여야 할 참된 "고난" 이라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