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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마태복음 16장25절)

교훈 안에 2016. 1. 29. 20:52

오늘은 마태복음 16장25절에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에서 "목숨"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목숨" 에 관하여는 앞서 기재했던 글 중에서 여러차례 살펴 본(2015년8월30일자,15년6월6일자,2014년7월14일자,2013년6월5일자) 적이 있으니 더 많은 내용을 보기를 원하신다면 그 글들을 참고하시기 바라며..... 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는, 살아내는 목숨(생명)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사람(인생)은 저마다 목숨처럼 소중하게 여기는 것(사람,물건,신념,철학... 등등등)이 있으며 또한 세상사, 인생사 살아가는 "낙(樂)" 을 찾아 온 정성과 힘을 쏟으며 그것에 몰두하며 전념하기도 하니 이는 모두 자신이 이 세상에 살아있는 이유 곧 "목숨" 을 위하여 그러한 것을 우리는 살아오면서 느낀 바요 알고 있는 바이며..... 

그러나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는 그러한 자신의 목숨을 부인(24절)하고 잃어버려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는 진정한 참 형상의 "목숨" 을 찾으며 구원할 수 있다고 기록하고 있으니 그 이유는 바로 뒷 구절 26절에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하고 쓰고 있듯이 사람은 자신이 목숨처럼 여기는 것을, 살아가는 "낙(樂)" 으로 여기는 것을 채우며 관철시켜서 이루기(성공)하기 위해, 이루어 얻기 위해 타인(他人), 즉 가족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친적이나 이웃이나 지인이나 동료와 같은 가까이에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것(목숨)을 고집하여 자신의 뜻대로 마음대로 하려고 하기 때문에 자신의 것이 목숨처럼 소중하고 귀한 것이라면 타인이 목숨처럼 여기는 것 곧 그 신념이나 기준이나 관점, 행여 그것이 그 사람의 고유의 고정관념이라 할지라도, 말도 안되는 고지식한 것이라 할지라도, 어처구니 없는 것이라 여겨지는 것이라 할지라도 상대편이 목숨처럼 여기고 있는 것이라면 존중하고 관용하며 온유하고 너그럽게 용납하고 헤아려 살펴서 이해해야 하지만 내 것(목숨), 즉 자신의 유익과 이익만을 앞세우며 내 목숨만 소중히 여겨서 이루고 얻으려고 상대편이 목숨처럼 여기는 그것들은 안중에도 없이 무시하고 업신여기며 사납게 함부로하기를 서슴치 않고 서로 다투고 분쟁하며 미움과 비방과 불평으로 불화(不和)하고 있다면 진정 목숨처럼 여기는 것이 사람이나 물건이나 신념(기준,관점,가치관,성향)인가? 아니면 이러한 것을 빌어 "목숨" 이라는 이름으로, "낙(樂)" 이라는 명분으로 타인에게 자신의 유익과 이익을 고집하여 이루어 얻으려고 사나워지고 못마땅해지고 언짢아져서 무시하고 함부로하는 못됐고 나쁘고 악한 "죄(罪)" 인 것인가? 하는 것을 한 번 생각해 보셨으면 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9절에 "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하시면서 18~19절에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법 곧 그 온전한 계명은 잘 알고 계시듯이 사람으로 멸망과 패망과 사망으로 이끌거나 몰고 가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생명과 복과 안식이 되게 하는 것이지만 지금까지 우리 속(내면,마음)에 온전히 하나님의 법이 있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죄는 살아나서 우리 자신의 목숨처럼 마음을 에워싸고 사로잡아서 자리잡고 있었으며 그로 인하여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가는 목숨(생명)은 죽어 있었으니 이 세상에 선(善)한 것이 좋고 너그러운 것이며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행복과 즐거움과 기쁨이 있는 것임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하지만 원하는 바 선(善)한 것은 행하지 않고 자꾸만 꿈틀거리는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욕심으로 말미암아 안색이 변하여 불평하며 미워하고 인상을 찌푸리면서 언짢아하고 못마땅해하며 사나워져서 다투고 분쟁하고 비방하는 죄와 악은 행하였으니 22~23절에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하고 쓰고 있듯이 이는 곧 하나님의 법으로 즐거워하며 이를 "낙(樂)" 으로 여기고 이 세상에 살아있는 이유 곧 목숨이 되어야 할 우리 지체 죄의 목숨이 살아서 행하기 때문이며 또한 이는 아직도 우리가 죄의 법 아래 있다는 반증이라는 것을 잡아 내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15장36~38절에 "어리석은 자여 너의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또 너의 뿌리는 것은 장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갱이 뿐이로되 하나님이 그 뜻대로 저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하는 것처럼 진정한 이치요 진리는 땅에 뿌려진 씨가 썩어야만이, 죽어야만이 다른 모양(형체) 곧 새싹으로, 순으로, 나물로, 나무로, 열매(곡식)로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것과 같이 우리 사람의 마음에도 진정 하나님의 말씀의 씨(말씀- 누가복음 8장11절)가 뿌려져 있다면 그 씨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버릴 것은 버리고 비울 것은 비우고 죽일 것은 죽여야 하리니 버리고 비우고 죽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씨 곧 법과 계명으로 말미암아 깨닫게 된 "죄와 악" 이며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의 목숨이 되어 마음속에 살아있었던 것들을 하루 아침에 버리고 비우고 죽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므로 반드시 노력(훈련,연습)이 필요하며 버리고 비우고 죽여야만이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기록하고 있듯이 열매(결실) 곧 다시 사는 "부활" 로 진정한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장구한 생명을 얻을 수 있고 하나님께 속한 목숨을 찾으며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