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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상론하고...(마태복음 22장15절)

교훈 안에 2016. 7. 31. 17:18

오늘은 마태복음 22장15절에 "이에 바리새인들이 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로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상론하고~ " 에서 "올무"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올무" 에 관하여는 앞서 기재했던 글 중에서 살펴 본(2014년12월23일자) 적이 있었지만 사람(인생)이 사람에게 무언가에 얽어서 그것에 매이게 하고 또한 그러한 것을 놓아서 걸려 넘어지게, 쓰러지게, 잡히게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마음도 아니요 하나님의 뜻(계명,법도,율례)도 아니니 그런즉 못됐고 나쁘고 악하며 꼬이고 부정적이고 사나운 심성의 마귀적이고 정욕적이며 세상적(야고보서 3장14~16절)인 것으로써 상대편이 마음에 안 들고 못마땅하고 밉고 싫고 원망스러울 때 갖게 되는 마음으로 반드시 제하여 버려야 할 마음과 생각이니 시편 64편3~5절에 "저희가 칼 같이 자기 혀를 연마하며 화살 같이 독한 말로 겨누고 숨은 곳에서 완전한 자를 쏘려 하다가 갑자기 쏘고 두려워하지 않도다. 저희는 악한 목적으로 서로 장려하며 비밀히 올무 놓기를 함께 의논하고 하는 말이 누가 보리요 하며~ " 하고 쓰고 있듯이 이 말씀은 첫 번에 오셨던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때의 그 당시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여 믿고 의지한다고 외치고 부르짖으면서 성경(율법,선지서,시편의 글)을 읽으며 바라보고 또한 가르치고 배우던 제사장들과 율법사들과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을 비롯한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향하여, 그리고 세리와 창기와 같이 그저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외모만 바라보고서 부족하고 연약하고 가난하고 믿음이 없다고 생각했던 자들에게 행하였던 것들을 다윗을 통하여 미리 기록하게 하신 말씀이며..... 

그러나 항상 잊지 마셔야 할 것은 그 때 그 시대 그 당대의 사람들은 이제 죽어서 이 세상에 없으며 이는 지금 살아서 하나님을 믿고 그리스도를 의지한다고 부르짖으며 외치고 있는 우리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니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다시 오신다고 하셨기 때문이며 우리는 과연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여 그가 가르쳐주신 순종의 본(本)을 좇아 나보다 남을 낫게 여겨는(빌립보서 2장3~5절) "이타심(利他心), 즉 상대편이 좀 밉고 싫으며 좀 마음에 안 들고 못마땅하며 좀 불편하게 난처하게 곤란하게 어렵게 만들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들끓는 정욕(욕심,교만,사나운 심성... 등등등)을 버리려 비우려 죽이려 애쓰고 노력(훈련,연습)하면서 인애와 양선으로써 관용하고 온유하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납하고 긍휼하고도 체휼한 마음으로 배려하고 양보하려는 사랑(자비)으로 하려 했었는지 한 번 생각해 보셔야 하니 하지만 아직도 이러한 마음으로 방탕에 방임하고 있다면 그리스도를 두 번 죽이는 것이며 아직도 첫 번에 오셨던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때와 같이 율법(초보적이고 부분적인 그림자)에서 벗어나지도 못하였고 율법 아래에 있는 것이니 모든 것을 필(必)하시고 끝내시는(로마서 9장28절) 때에 잘못된 것은 바로 잡고 고칠 것을 빨리 고쳐서 하나님의 크나큰 영원무궁한 생명의 경륜에 참여하시는 자기 되시기를 바라며 무엇보다 올무처럼 마음에 세우고 있는 날카로운 갈고리를 제하여 버려야 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래서 잠언서 22장5절에 "패역한 자의 길에는 가시와 올무가 있거니와 영혼을 지키는 자는 이를 멀리 하느니라." 하시면서 24~25절에 "노를 품는 자와 사귀지 말며 울분한 자와 동행하지 말찌니 그 행위를 본받아서 네 영혼을 올무에 빠칠까 두려움이니라." 하는 것처럼 이 세상에 어느누가 자기 자신더러 "난 악한 사람이야!", "난 패역한 사람이야!" 라고 말할 사람이 있을까? 자신이 좋아하고 존경하며 사랑하고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는 마음속에 있는 온갖 친절과 너그러움과 관용과 겸손과 온유으로써 행하다가도 이러한 것을 보고 "그 사람 참 착한 사람이야!", "좋은 사람이야!"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할 일이라 표현하는 것이 맞는 것이며 하지만 꼬이고 부정적이고 사나운 심성으로 마음에 분노와 울분을 품고 있다가 마음에 안들고 못마땅하고 밉고 싫은 사람에게는 비방과 훼방과 다툼과 불평과 올무로 하면서 함부로하기를 서슴치 않았다면 그러한 자는 그 놓았던 올무에 다른 사람(상대편)이 걸려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편 69편22절에 "저희 앞에 밥상이 올무가 되게 하시며 저희 평안이 덫이 되게 하소서." 하고 쓰고 있듯이 결국엔 자신이 베풀어 놓았던 그것이 자기 자신의 가시로 돌아와서 찌프게 하며 자기 한 몸 편하려고 자신의 유익과 이익만 챙겨서 미우면 상대편을 헤아리기보다 미워하며 싫으면 이해하기보다 비방하고 훼방하며 못마땅하면 온유하고 너그럽게 관용하기보다 사납게 함부로하기를 서슴치 않는다면 그러한 올무에 자기 자신이 걸리고 잡혀서 빠치게 한다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디모데후서 2장22절에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 하시면서 25~26절에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찌니 혹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저희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바 되어 그 뜻을 좇게 하실까 함이라." 하고 쓰고 있듯이 아직도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좌지우지 수족 부리듯이 하고 싶은 마음(정욕)이 꿈틀대어서 그와같이 행하고 있다면 어른(장성한 자)이 되지 못한 청년이요 우리는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 앞에 궤휼하고 완악하고 패역한 죄인 중에 괴수였으니 이제는 때가 오래므로 이러한 것들을 버리려 비우려 죽이려 애쓰고 노력(훈련,연습)하면서 하나님의 의(義)인 그 온전한 뜻과 계명을 지켜 행하며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아야 하며 하지만 우리 자신도 잘 몰라 온전히 지켜 행하지 못하였던 것처럼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아 행하지 못하고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권유,권면)하여야 하리니 이러한 류(類)가 아니고선 그 어느누구도 올무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