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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자는 오늘날 내가 하는 것과 같이 주께 감사하며...(이사야 38장19절)

교훈 안에 2016. 8. 10. 19:19

오늘은 이사야 38장19절에 "오직 산 자 산 자는 오늘날 내가 하는 것과 같이 주께 감사하며 주의 신실을 아비가 그 자녀에게 알게 하리이다." 에서 "산 자"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그 앞 구절 9절에 "유다 왕 히스기야가 병들었다가 그 병이 나을 때에 기록한 글이 이러하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히스기야 왕이 병 들어서 다 죽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함으로 말미암아 그 병이 나았고 그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시고 이루어주심을 징조(7절)로 보이셨으니 곧 그의 수한에 오십 년(5절)을 더하여 주셨으며 또한 아하스 왕의 일영표(해시계)의 해 그림자를 십 도 물러가게 하셨으니 그러나 우리 사람(인생)은 그것이 무엇이 되었건 "내 마음같지 않네!" 하는 것처럼 단 일 도도 움직이게, 물러나게도 할 수 없으며 우리 자신의 수한의 1년도 더 할 수 없으니 쉽게 말해서 담배를 몇십년 피워 폐암이나 혈액암에 걸려서 몇개월 살지못하는 시한부로 병원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사람에게 "담배를 끊는다면 오십 년, 아니 백 년의 수한을 더하여 살게 해 줄테니 담배를 끊을 수 있겠는가?" 라고 묻는다면 과연 어떠한 선택을 할까? 곧 죽어도 담배를 손에서 놓지 않을까? 당장이라도 담배를 끊을까? 하지만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도 기록하고 있지만 "산 자" 에게는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무의 수한(이사야 65장22절) 곧 장구하고도 영원무궁한 생명(요한일서 2장25절)에 관하여 기록하고 있으니 16절에 "주여 사람의 사는 것이 이에 있고 내 심령의 생명도 온전히 거기 있사오니 원컨대 나를 치료하시며 나를 살려주옵소서." 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는 것 곧 생명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마음을 다스리고 생각을 제어하며 감정을 조절하여 순화할 줄 알고 승화시킬 줄 알아서 하나님의 뜻과 계명, 즉 의(義)에 대하여 산 자가 되어야만이 그 마음과 생각이라고 하는 정신 세계가 치료되어서 궁극적인 "산 자" 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죽은 자와) 산 자" 에 관하여는 앞서 기재했던 글 중에서 살펴 본(2014년9월25일자,2013년10월13일자) 적이 있었지만 첫 번에 오셨던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때에 그 당대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여 열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다고 외치고 부르짖으며 충성되이 섬긴다던 서기관, 바리새인을 더불어 대제사장들과 율법사들과 사두개인을 비롯하여 그들을 좇아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믿음을 갖고 있었던 유대인들에게 그리스도께서는 마태복음 23장37절에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하고 쓰고 있듯이 살아 있으나, 살아 있다는 이름은 가졌으나(계시록 3장1절) 죽은 자들이 있는 무덤에 빗대어 말씀하신 이유는 모세의 율법 곧 초보적이고 부분적인 그림자로써 반드시 그 이면에 있는 깊은 뜻과 계명을 헤아려 그것을 지켜 행하여야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앞에서, 잘 보여야 하는 곳에 형식(절차)적으로 하는 것들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여 정적 내면에 것들을 보지 못하고 지켜 행하지 못하여 실상 하나님의 의(義)에 대해서는 죽은 것이나 죽은 자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며 이는 시간만 흘렀을 뿐, 공간만 바뀌었을 뿐 그 때나 지금이나 거기나 여기나 말로는 입으로는 혀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여 믿고 의지하며 충성으로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믿고 좇는다고 하지만 정작 어떤 일이나 문제나 상황에 부딪히면 "내 마음 나도 몰라" 가 되어서 미우면 미워하고 비방하며 싫으면 화(火)를 참지 못하고 불평을 하며 사나워져서 함부로하고 못마땅하고 마음에 안 들면 다투고 훼방하고 책 잡기를 서슴치 않았으니 지금 살아서 하나님을 믿고 그리스도를 의지한다고 하는 우리들 또한 하나님의 의(義)에 대하여 "산 자" 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며 그러나 육체와 함께 정욕을 부단히 버리고 비우고 죽이려 애쓰고 노력(훈련,연습)한다면 요한복음 5장25절에 "~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하시면서 28~29절에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하는 것처럼 그 음성을 듣고서 일깨워 돌이켜서 고쳐 행하는 자라야 "산 자" 가 되는 것이며 "기이히 여기지 말라." 고 하시는 것은 이것이 육(肉)에 관한 것이 아니라 영(靈) 곧 마음과 생각이라고 하는 우리 사람의 "정신 세계" 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며 궁극적으로 "산 자" 는 "생명의 부활" 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고린도후서 5장15~16절에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하고 쓰고 있듯이 하나님의 말씀(계명) 중에 으뜸은 잘 알고 계시듯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요한복음 13장34절,15장12절)." 이며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또한 그리스도를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그의 계명인 "사람 사랑" 에 있어서는 나 자신의 유익(욕심,욕구,욕망,정욕)과 이익(기준,관점,기분,성격,성향)이 앞서서 나 자신을 먼저 위하고 또한 나를 위하여 살았으니 그리스도께서 본(本)으로 보이신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그리스도의 마음(빌립보서 2장3~5절)에는 나보다는 타인을 위하여, 상대편을 대신하여 욕심도 성질도 기분도 유익도 죽여줄 줄 아는 것이며 이것이 "사람 사랑" 의 근본이지만 이와같이 행하지 못하고 행할 수 없었던 것은 모든 사람을 육체대로 보았고 알았기 때문이며 이는 바꾸어 말하자면 그리스도도 또한 육체대로 알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며 이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진정한, 온전한 "산 자" 가 되기 위해서는 사람의 외모(육)를 보지 말고 그러기까지의 입장이나 사연이나 처지나 상황을 헤아리고 살펴서 이해하고 관용하여 거칠 것이나 넘어질 것이나 부딪힐 것을 두지 않도록 손과 발과 눈과 입과 귀를 조심하는 것이 하나님의 의(義)" 에 대하여 "산 자" 요 이로써 하나님의 구원을 향하여 찾아가게 된다는 것(베드로전서 3장21절)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