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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마태복음 22장32절)

교훈 안에 2016. 8. 12. 20:32

오늘은 마태복음 22장32절에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에서 "아브라함(Abraham)" 과 "이삭(Isaac)" 과 "야곱(Jacob)"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그러나 워낙 내용이 방대하여 삼 일에 걸쳐서 나누어 이야기를 풀어갈 계획이니 참고하시기 바란다.

먼저 오늘 본문의 말씀은 그 바로 앞 구절 31절에 "죽은 자의 부활을 의논할찐대~ " 하고 쓰고 있듯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즉 약속의 자녀로라야 죽은 자의 부활을 논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부활" 은 세상 어디에서도 논하지 않고 언급하지도 않으며 할 수도 없는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의 본질이니 고린도전서 15장13절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하시면서 21절에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하는 것처럼 아담이 하나님의 약속(언약)을 어기고 자기의 갈 길을 감으로 말미암아 아담 이후로 모세까지 아담과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노릇(로마서 5장12절)하였으니 여기에서 "모세" 라 함은 오리라 한 모세와 같은 선지자 곧 그리스도(사도행전 3장20~24절)이시며 이는 첫 번에 오셨던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말하고자 전하고자 하심이 아니니 두 번째 다시 오신다고 하신 약속(언약)이 지금 살아서 하나님을 믿고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남아있기 때문이며 그런즉 아담은 불순종의 본(本)이요 그리스도는 순종의 본(로마서 6장16절)으로 어떠한 자취를 좇아 행하여야 할지에 따라서 육신의 자녀가 될 수도 약속의 자녀가 될수 있으니 진정으로 진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그리스도를 의지함으로 말미암아 얻게 되는 믿음의 결국 곧 구원과 직결되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첫 번째로..... "아브라함" 에 관하여는 앞서 기재했던 글 중에서 살펴 본(2016년1월19일자,2015년2월17일자,2013년5월29일자) 적이 있었지만 로마서 4장3절에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바 되었느니라." 하시면서 11절에 "~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사이 되어 저희로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시며 14절에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후사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폐하여졌느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아브라함이 믿음의 본보기로써의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로 인친 것이며 다시말해서 멜기세덱에 관하여 말하지 않을 수 없으니 "멜기세덱" 에 대하여는 히브리서 5장,6장,7장에 걸쳐서 자세하고 세밀하게 기록하고 있으며 "멜기세덱" 은 살렘 왕이요 하나님의 하늘의 제사장으로써 곧 그리스도이시며 이는 아브라함의 때 뿐만아니라 아담의 때에도 동산의 중앙에 있던 생명나무, 즉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은 "나는 참 포도나무요(요한복음 15장1절)" 하시며 또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요한복음 11장25절)~ " 하셨으니 아담의 때의 그리스도는 "생명나무" 이며 더 나아가 모세의 때에 그리스도는 고린도전서 10장2~4절에서 모세를 따라 광야로 나온 이스라엘 백성(믿는 자)들이 광야에서 먹었던 신령한 식물과 신령한 반석(음료)이 "그리스도" 이심을 잡아내시길 바라며..... 

아브라함은 무할례시에 하나님을 믿는 믿음 곧 멜기세덱에게 그 믿음의 증표로 십분의 일(십일조)을 주었고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 복을 빌어 주었으니 낮은 자가 높은 자 곧 하늘의 제사장에게 복 빎을 받는 것(히브리서 7장7절)이며 하나님이 주시는 복(福)은 살아가는 동안 받고자 하는 어떤 요행이나 성공이나 벼락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장구하고도 영원무궁한 생명이며 그러나 어찌되었건 그 복에 대한 약속은 받았지만 이루심은 보지 못하고 죽어 장사 된 것(창세기 49장30~33절)을 우리가 성경을 통하여 본 바요 아는 바이니 "할례" 는 모세의 율법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들의 표징으로 행하는 의식이며 그런즉 율법은 다만 약속이 오시기까지 "죄(와 악)" 를 생각나게 하여 죄 짓지 않게 하기 위한 범법함으로 인하여 주신 것(갈라디아서 3장19절)이니 할례와 무할례 곧 믿고 안 믿고의 믿음은 "십분의 일(십일조)" 에 있으며 앞서 기재했던 글 중에서 "하나님의 것(2016년8월4일자)" 대하여 살펴 볼 때 "십일조" 에 관하여 언급하였었지만 어느 부모가 자식(자녀)에게서 돈을 바랄까? 돈은 사지(四枝)가 멀쩡하면 사지를 놀려서 얼마든지 얻고 구해야 하는 것이며 부모가 자식에게서 바라고 원하는 것은 그 부모의 마음을 헤아려 그 뜻대로 지켜 행하려 하는 마음이며 그 마음 한 쪽, 한 구석을 아버지(부모)이신 하나님께로 향하지 못하여서 패망하고 멸망하고 결국 사망에 이르렀던 것이 성경의 역사인 것을 우리가 본 바요 읽은 바요 아는 바이며 그런즉 그리스도의 마음(빌립보서 2장3~5절), 즉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마음이 되기 위해서는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을 반드시 버리고 비우고 죽여야 하는 노력(훈련,연습)이 필요하며 하나님을 믿고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사람이라면 그리스도의 자취를 좇아 이와같이 행하려 힘쓰고 애써야 하며 이것이 진정한 믿음이요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보이신 믿음이라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