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종일 주를 바라나이다...
오늘은 마태복음 23장10절에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지도자는 하나이니 곧 그리스도니라." 에서 "지도자(指導者)"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먼저 "지도자" 의 의미는 잘 알고 계시듯이 어떠한 모임(단체)이나 조직체, 또는 사회와 그 사회의 특정 집단의 어디가 되었던 그곳에서 앞장서서 진두지휘하며 이끄는 사람을 뜻하며 그런즉 당연히 그 조직이나 사회를 이끌만한 능력(지도력)이나 거느릴만한 힘(세력,권력)이 있어야 하리니..... 그러나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도 기록하고 있는 바와 같이 "지도자" 라 칭함을 받지 말고 지도자 되기를 기쁘게 여기거나 좋아하지 말기(6~7절)를 말씀하고 계시니 그 바로 뒷 구절 11~12절에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고 쓰고 있듯이 "랍비(선생)" 나 스승보다 더한 "아비" 와 같은 스승이나 "지도자" 와 같은 큰 자요 높은 위치(자리)에 있다는 것은 허울좋은 겉모습에 있지 않으니 그 진정한 모습(자세,태도)은 오히려 자신보다 낮은 자들에게 더 낮추어서, 더 낮은 자가 되어서 그 생각(사연,처지,입장)이나 마음(기분,성향,가치관)을 높여줄(존중해줄) 줄 알고 또한 섬기는(더 낫게 여기는) 데에 있으니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 사람(인생)은 허울좋은 겉모습에 믿고 의지하여 그 쥐어진 칼자루(권력,권세)를 이용해서 소위 "성공" 이라고 하는 부(富)와 명예와 권위를 쌓으며 얻었고 또한 그 이름으로 그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자기 뒤에 줄 세우고 뒤 봐주고 눈 감아주는 관행을 통하여 더욱더 큰 허울과 높은 위치(자리)에 앉아서 전관예우의 악습(惡習)을 내세워서 끝까지 그 허울좋음과 높은 위치(자리)를 고수(固守)하며 존경받고 대우받고 우러름을 받기를 좋아하고 기뻐하였음을 씁쓸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며 또한 이러한 것은 하나님의 하늘의 지혜와 명철과 교훈의 가르침이 아닌 세상이고 정욕적이며 마귀적인 땅의 지혜(방법)에 불과하니 거기에 줄서기 위해서, 줄타기 위해서 서로가 서로에게 시기와 다툼과 분쟁과 비방(흉보고 욕함)과 훼방과 사나워져서 함부로하기(꺾어버리고 잘라버리고 밀어내기)를 서슴치 않기 때문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래서 다시 오늘 본문의 말씀으로 돌아가서 진심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여 그를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라면, 그러한 사람으로써 진정한 지도자로 모시고 섬겸야 할 것은 "그리스도" 이며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그리스도께서 죽기까지하시면서 앞서 본(本)으로 보이신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으심과 이러한 정과 욕심을 못 박기위해 끊임없이 하나님께 간절한 기도를 올리면서 비우고 버리고 죽이려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애쓰고 노력(훈련)하시면서 보여주신 그리스도 마음(빌립보서 2장3~5절) 곧 나보다 남을 낫게 여겨 비록 유대인들에게 랍비로, 제자들에게 아비로, 지도자로 선지자로 불리울 때에도 계속하여 끊임없이 하나님의 하늘(요한복음 3장31~32절)의 지혜와 명철과 교훈(야고보서 3장17~18절)을 지켜 행하기(히브리서 10장7절) 위해서 오직 하나님만 바라고 뜻(계명)을 구하였던 것을 우리가 아는 바요 본 바요 읽은 바요 배운 바이니 그런즉 진정 그를 믿고 의지하며 좇아 따르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서 있는, 앉아 있는 곳(자리,위치)이 어디라 할지라도 선생된 것에 기뻐하지 말고 스승보다 더한 아비와 같은 스승된 것에 좋아하지 말고 지도자 입장에 있다고 칼자루를 이리저리 자신의 기준(기분,성향,가치관)이나 관점(방향,신념)대로 휘두르지 말고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지켜 행하여야 하리니 디모데전서 1장18~19절에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경계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지도 곧 그 가르침이 아니고선 선한 싸움을 싸울 수 없으며 착한 양심을 가질 수 없으며 그런즉 온전한 그리스도의 믿음을 마음에 품을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기억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시편 25편9절에 "온유한 자를 공의로 지도하심이여 온유한 자에게 그 도를 가르치시리로다." 하고 쓰고 있듯이 이 말씀을 바꾸어 말하자면 그 마음에 온유하고 인애하며 양선하고 긍휼이 여기고 관용할 줄 아는, 그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보다는 남의 처지나 입장이나 사연을 더욱 헤아려 살필 줄 아는 마음이 없다면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뜻인 공의로 공도로, 공평과 정의로 행할 수 없으리니 우리의 진정한 지도자이신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이러한 것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라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