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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을 당하며 욕을 받아 다 함께 수욕 중에...

교훈 안에 2017. 5. 1. 10:30

오늘은 이사야 45장16절에 "우상을 만드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며 욕을 받아 다 함께 수욕 중에 들어갈 것이로되~ " 에서 "부끄러움" 과 "수욕"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먼저 오늘 본문의 말씀에 기록하고 있는 "우상(偶像)" 에 관하여 앞서 기재했던 글(2017년2월4일자,2016년10월28일자)에서 살펴 본 적이 있었지만 꼭 보이는 우상만이 우상이 아니라 진정한 "우상" 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여 그를 믿고 그의 보내신 자 그리스도를 의지한다고 말로는 입으로는 혀로는 외치며 부르짖으면서 정작 현실의 삶 속에서 마음으로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고 그리스도의 도움을 바라며 인내하지 못하여 자신의 뜻대로 마음대로 모든 것을 좌지우지 수족 부리듯이 하고 싶은 정욕(욕심)에 집착하면서 욕심대로 마음대로 되지 않았을 때 못됐고 나쁘고 악한 꾀나 죄로 심판 곧 미워하고 비방하고 훼방하고 사나워져서 다투고 함부로 하기를 서슴치 않는 것이니 사람(인생)은 자신이 사랑하고 좋아하는 좇아서 행하기 마련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무엇보다 그가 "지켜 행하라." 하신 최고한 법인 "사랑하라." 하신 말씀대로 행하여야 하며 이를 지켜 행하기 위해서는 "마음과 생각" 이라고 하는 그 "정신 세계" 가 그리스도께서 앞서 지켜 행하여 본을 보이신 교훈 곧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그리스도의 마음과 정신" 이 되어야 하고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의 육체와 함께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박아서 제거하고 버려야 하지만 다스리지 못함으로 인하여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보다 이러한 것을 더욱 목숨처럼 여기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것을 한 번 생각해 보시길 바라며 이러한 보이지 않는 마음 안에 자리 잡은 "우상" 을 알리고자 전하고자 하여 보이는 우상에 빗대어 하신 말씀이며 자신의 마음 속에 이러하 우상을 만들어 이에 집착하며 믿고 따르며 좇아서 행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그 모습을 숨기신다(15절)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서론이 많이 길어졌는데 그래서 그러한 "우상" 으로 말미암아 결국 다가올 "부끄러움" 과 "수욕" 은 "우상" 을 마음에 만들어 이에 집착하며 그것을 좇아서 행하는 자의 몫이 되리니..... "부끄러움" 이라 함은 순수한 어린아이들이 그져 수줍어 하는 그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으며 사람이 자신의 선한 양심에 비추어 무언가가 떳떳하지 못하고 당당하지 못하여 수치스럽고 창피한 것을 뜻하며 이로 인하여 받게 될 여러가지 수욕과 모욕과 치욕과 굴욕에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게 되리니 에베소서 5장3~5절에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 12절에 "저희의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움이라." 하고 쓰고 있듯이 이 세상에 어느누가 자기 자신더러 "나는 우상숭배자야!" 라고 말할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보이는 앞에서 하는 말과는 다르게 보이지 않는 뒤에서는 서스럼 없이 거침없이 거리낌이 없이 과감하게 행하여 왔으니 은밀히 행하는 자이니 다시 말해서 마음 속에 한 지아비(예레미야 3장14절)를 섬기지 못하고 다른 지아비 곧 세상적이고 정욕적이며 마귀적인 것(야고보서 3장14~16절)을 좇아 섬기면서 마음에 안 들면, 못마땅하면, 언짢으면, 욕심대로 되지 않으면 불평하고 시기하고 다투고 미워하고 훼방하고 훼방하고 사나워져서 다투고 함부로하기를 서슴치 않으며 그와같이 행하는 사람은 음행하는 자요 간음하는 자로써 이것이야말로 누추하고 더러운 것이며 또한 이러한 것을 탐하여 누구보다 앞서서 행하기에 손과 발이 빠른 그러한 사람은 참된 우상 숭배자로써 우리 모두가 이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는 것을 일깨우셔야 하며 중요한 것은 이제는 일깨우셨다면 부끄럽게 여기고 돌이켜서 고쳐 행함에 있으며 고쳐 행함의 시작은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그리스도의 마음" 에서부터라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이사야 50장6~7절에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수욕과 침 뱉음을 피하려고 내 얼굴을 가리우지 아니하였느니라. 내가 부끄러워 아니하고 내 얼굴을 부싯돌 같이 굳게 하였은즉 내가 수치를 당치 아니할줄 아노라 " 하시면서 9절에 " 나를 도우시리니 나를 정죄할 자 누구뇨 그들은 다 옷과 같이 해어지며 좀에게 먹히리라." 하는 것처럼 이 말씀은 그리스도이신 예수께서 가룟유다에 의하여 은 삼십에 대제사장들과 온 회당 곧 유대인들에 팔리고 잡혀서 온갖 모욕과 침 밷음과 비방과 미움과 뺨을 치고 때리는 수욕에도 그들과 똑같이 되어서 다투고 싸우고 비방하고 훼방하고 똑같이 모욕하였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혀로 범죄치 않으려 입술을 닫아 혀로 잠잠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말씀의 계명을 지켜 행하시려 비록 심적, 내적 고난 곧 갈등과 고뇌와 고통과 아픔은 있었을지언정 이러한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은 십자가에 못 박으시는 "죽으심" 을 행하셨으니 이로써 다시 살아나시는 "부활의 근원" 이 되셨으며 이러한 것을 참고 인내하신 것은 첫 번째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알고 행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마음으로 그들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관용하며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였기 때문이며 두 번째 다가올 영광 곧 하나님의 생명(부활)의 구원에 이르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뜻과 계명을 지켜 행하지 못하는 그것이 부끄러움이요 수치스러움이라는 것을 그리스도의 영(靈)이 임하신 분으로써 깨달으며 학자같이(이사야 50장4절) 알아들으셨기 때문이니 그런즉 이러한 부끄러움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수치스러운 줄 모르고서 계속하여 행하여 그리스도에게 붙은 자가 되어 하나님의 생명(부활)에 들어가지 못하는 그것이 수욕이요 굴욕이라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