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여호와는 의를 말하고 정직을 고하느니라...(이사야 45장19절)
오늘은 이사야 45장19절에 "나는 흑암한 곳에서 은밀히 말하지 아니하였으며 야곱 자손에게 너희가 나를 헛되이 찾으라 이르지 아니하였노라. 나 여호와는 의를 말하고 정직을 고하느니라." 에서 "의(義)" 와 "정직(正直)"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그 앞 구절 17절에 "이스라엘은 여호와께 구원을 입어 영원한 구원을 얻으리니 영세에 부끄러움을 당하거나 욕을 받지 아니하리로다." 하고 쓰고 있듯이 "구원" 곧 "영원한 구원" 에 관하여 은밀히 말하지 아니하였다, 헛되이 찾으라 이르지 아니하였다 말씀하시는 것이며 우리 사람(인생)은 구원 곧 현세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서 그리고 내세의 좋은 날을 보장 받기 위해서 나름의 신(神)을 믿으며 의지하고 앙망하며 기도와 정성과 공력을 들이지만 "영원무궁한 구원" 을 언급하시면서 여호와 하나님을 찾기를, 구하기를 말씀하시는 신(神)은 없으며 또한 구하고 찾는 자들을 위하여 두루뭉술하게 알리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방법(지혜)까지 제시하여 주시는 신(神)은 없으니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 곧 참된 위계질서와 그 속에 우리 사람(인생)을 창조하시며 지으셨기 때문이며 다시 말해서 현세와 내세를 위해서 "착하고 정직하게 살아라", "자비와 은혜를 베풀어라", "죄와 악을 행하지 말고 정의롭게 행해라", "겸손과 도리를 다하라." 하는 것처럼 어느 신이, 어떤 종교가 사람(인생)더러 "악하고 독하고 모질고 이기적으로 살아라." 하겠는가? 모든 좋은 말과 은혜스러운 성어(聖語)로 이 세상을 살아가기를 전하며 알리며 이로써 복 받게 될 것을 알리며 전하고 있지만 어느 누가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예나 지금이나 예날의 거기나 지금의 여기나 사람은 사랑과 평화를 원하고 또한 이를 외치지만 끊임없는 다툼(분쟁,갈들,테러,전쟁,싸움,대립)과 미움(비방,훼방,보복,복수)과 멸시함(함부로 함,무시,모욕,치욕)은 변한 것이 없고 오히려 삶의 질과 문명의 발달은 사람의 내면의 추하고 악함을 부추기기만 하니 이는 두루뭉술한 좋은 말과 은혜로운 성어만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폐단(弊端)이니, 즉 입으로는, 혀로는, 말로는 누가 못하는가? 그 말이 완성된 몸체가 되기 위해서는 그 말을 뒷받침 해줄 수 있는 구체적이고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이론(사상)이 성립되어 행동(행실,행위)으로까지 옮겨질 때에 진정한 생명력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서론이 너무 많이 길어졌는데 그래서 "구원" 곧 "영원무궁한 구원" 에 이르며 얻음으로 말미암아 사람(인생)이 받을 부끄러움이나 치욕(수욕)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은밀하게 말씀하지 않으셨던, 헛되이 찾게하지 않게 하셨던 "의" 곧 "정의" 와 "공의" 와 더불어 "정직함" 을 행하여야 하리니 우리는 "정의의 이름으로 너를(그 무엇을) 용서치 않겠다." 하는 말도 있듯이 의(義)를 위해서 무관용이 정답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진정한, 참된 모든 의(義)는 사랑 곧 인애와 자비와 긍휼과 온유와 관용에서부터 비롯되니 마태복음 5장44~46절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 하는 것처럼 의로운 해를 비취시는 하나님의 "의" 는 악인이라고 비취지 않는 것이 아니며 또한 그 비를 불의한 자라고 내려주시지 않는 것이 아니니 하나님께서 그러하신데 그에게 창조함을 받고 지으심을 얻은 우리 사람(인생)이 무슨 자격과 권한으로 차별하고 구별하며 구분지어서 의로움에 비추어서 못마땅하고 마음에 안 들고 언짢다고 하여 미움과 비방과 핍박과 훼방과 사납게 다툼과 함부로 함으로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니 우리 사람(인생)은 다만 원수같이 밉고 싫고 마음에 안 들어도 남의 유익을 구하여 그러한 상대편의 입장이나 처지나 사연이나 상황을 헤아리고 살피려, 이해하고 배려하려는 애쓰고 노력(훈련,연습)을 해야 하며 이러할 때에 의로운 자라, 정직한 자라 말할 수 있으며 그러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구원 곧 영원무궁한 구원에 이르게 하여 주신다는 것을 잡아 내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시편 15편1~3절에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오니이까.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그 혀로 참소치 아니하고 그 벗에게 행악지 아니하며 그 이웃을 훼방치 아니하며~ " 하고 쓰고 있듯이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다시 오신다(임하신다)고 하신 세상 끝 곧 마지막 때에 있을 주의 장막은 하늘의 온전한 참 장막(고린도후서 5장1~2절)이 임하여 우리 사람을 거처로 삼는 것이며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임하시는 것이니 이것이 온전하고도 영원한 구원이며 그것이 진정한 주의 성산 시온산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라며 이러한 구원에 이르며 얻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그러했듯, 해왔듯 말따로 행동따로였던 정직하지 못한 거짓된 자, 불의를 행하면서 의를 행하는 척 외식하는 자가 되지 말아서 말이 그러하면 행동도 그러한 정직하고 진실한 자로써 공의와 정의와 공평으로 행하여야 하리니, 즉 참소(흉보고 욕하는 비방)치 말고 밉고 마음에 안 들고 못마땅한 마음에 상대편(남)에게 행악지 말며 해 준 것은 순수하게 쿨하게 해 준 것으로 끝내야지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어떠한 보상이나 댓가를 바래서 보상이나 댓가가 없으므로 서운해하고 섭섭해하며 원망과 보복과 복수와 같은 훼방은 행하지 말아야 하리니 아직도 말로는 입으로는 혀로는 하나님의 사랑을 외치며 그리스도의 교훈을 부르짖으면서 행실(행동,행위)은 마음에 이는 정욕(욕심)으로 말미암아 이러한 못됐고 나쁘고 악한 꾀와 죄를 행한다면 그 사람의 구원은 헛 것이요 "의" 와 "정직" 은 헛된 말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