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주니라...
오늘은 마태복음 27장26절에 "이에 바라바는 저희에게 놓아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주니라." 에서 "못 박다."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먼저 "십자가(十字架)" 라 하심은...... 첫 번에 오셨던 그리스도이신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기까지는 자의든 타의든, 가항력적이던 불가항력적이던 결국 여러 요인과 그렇게 되어가는 환경과 상황에 의해서 그리 할 수 밖에 없도록 하나님께서 베푸신 조화(이치) 속에서 거스르지 않고 흘러가는대로 따라서 흘러감으로써 순종함을 배워 온전케(히브리서 5장8~9절) 되어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무궁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으니 그러나 못 박기까지 그 마음에 이는 수많은 고난 곧 고뇌와 번뇌와 고초는 "못 박히심" 과 "못 박음" 의 산 증거가 되며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못 박히심" 의 모든 것을 드러내고 나타내어서 모든 하나님의 말씀을 다 이루셨다(요한복음 19장28절)면 두 번째 다시 오실(임하실) 이유도 목적도 없겠지만 그리스도와 같은 하나님의 생명(부활)에 참여할 자 곧 그리스도께서 보이셨던 그 본(本)과 자취를 좇아서 지켜 행하는 자, 즉 그에게 붙어서 못 박힐 것은 못 박히고 못 박을 것은 못 박는는 자들을 위하여 두 번째 다시 오시는(임하시는) 것임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못 박다." 의미는 어떤 문제(일,사건)나 일어난 상황에 대하여 단정을 지어서 분명하고 명확하게 해 두는 것을 뜻하며 우리 사람은 살아가면서 기분이 좋고 나쁨, 만족하고 못마땅함, 여유있고 언짢음에 따라서 이랬다 저랬다, 왔다 갔다, 오락가락하면서 때로는 그 우유부단함과 노련하지 못함이 상대편을 불편하게 곤란하게 민망하게 만들 때가 있으며 때로는 참지 못하고 버럭하면서 비방과 훼방과 사나움과 다툼으로, 때로는 견디지 못하고 미워하며 시기하며 원망하며 하부로(멸시,무시) 하기를 서슴치 않을 때가 있으니 하지만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 하는데 무슨 상관을 하고 무슨 간섭을 하는가?" 라고 말한다면 사람으로써 사람(인간)에게 주어진 자유와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상대편 사람에 대하여 피해나 불편함이나 곤란함을 겪지 않도록 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따르기 때문이며 자기 자신의 유익(기준,관점,가치관,신의,성향,기분)과 이익(욕심)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돌아보지 않고 아랑곳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 나라(천국)의 법과 뜻에 반(反)하기 때문이니 이 모든 것은 우리 사람 모두가 반드시 짊어져야 할 십자가로써 제대로 못 박지 못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을 잡아 내셨으면 한다.
그래서 골로새서 2장11절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하시면서 13~14절에 "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 하는 것처럼 "의문(儀文)" 이라 함은 "제사(예배)" 의 "예(禮)" 를 행하기 위한, 치르기 위해서 필요한 절차와 순서를 적어놓은 글을 말하며 그러나 이제는 시대가 시대이니 만큼 때로는 진심에서 우러나는, 진실된 마음에서 시작된 진심어린 행동(행위,행실)이 의문(儀文)으로 하는 것보다 더욱 벅찬 감동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될 때가 있으니 다시 말해서 마음에는 없으면서 그렇게 해 왔기 때문에 그 전통을 좇아서 하는 의문(儀文) 곧 어떤 행동이나 의식(儀式)이나 예법은 이제 외식(外飾)이라, 허례허식(虛禮虛飾)이라, 체면치레라 말하는 것이 맞는 표현이니 진정 우리 사람에게서 벗겨내야 할 것은 몸의 어떤 일부분을 필요 없다고, 의식이라고, 전통이라고 하면서 잘라내고 벗겨내고 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우리 마음에서 하등에 필요없고 쓰잘데기 없는 "죄와 악한 꾀" 그리고 "궤휼하고 완악한 패역함" 이니 이를 본보기로 보여 주시려고 비록 유대인들에게 불가항력적으로 붙잡혀 갖은 모욕과 굴욕감 침 밷음과 때림과 미움과 비방을 받으면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지만 거스르지 않고 이에 순종하여 똑같이 범죄할까하여 입술을 닫아 잠잠하며 십자가에 못 박으셨으며 우리는 그 자취를 좇아서 지켜 행하여야 할 의무와 책임이 믿고 의지하는 자로써 있다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갈라디아서 5장19~21절에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 하시면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여기에서 "육체의 일" 이라 함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현실의 삶 속에서 겪게 되는 여러 "육체의 욕심의 일" 을 뜻하며 이랬다 저랬다, 왔다 갔다, 오락가락하는 두 마음을 품어 행하고 있는 것은 모두 음행과 호색과 우상 숭배이며 또한 왔다리갔다리 하는 술 취함과 방탕함이며 우리 자신의 유익과 이익을 좇아서 육체의 욕심의 일을 이루려 함에는 의도치 않게 원수를 맺게 되고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왕따시키는 것)을 하게 되니 진정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면 이제는 우리 자신의 기분이나 성향이나 기준이나 어떤 관점이나 이익과 욕심에 의해서 왔다갔다, 오락가락, 이랬다저랬다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같이 십자가에 못 박아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그리스도의 마음" 에서 비롯된 선하고 곱고 너그럽고 화평한 것을 좇아서 행하여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