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젖먹는 자식,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이사야 49장15절)
오늘은 이사야 49장15절에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찌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에서 "자식" 과 "아들"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자식" 의 의미는 잘 알고 계시듯이 부모가 낳은 아이를 이르는 말로써 다른 말로 "자녀" 라고도 하며 풀어서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아들" 과 "딸" 이라 하니 우리 사람(인생)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누구의 자식(자녀)임과 동시에 성인이 되어 결혼을 하여 자식을 낳게 된다면 누구의 부모가 되며 또한 언젠가는 모두가 부모가 되리니 그런즉 원래는 부모가 되어보기 전에는 100%의 부모 마음을 이해하기 어렵고 또한 부모만이 그 자식 곧 자녀의 마음을 헤아려 알 수 있으며 부모가 되어보기 전에는 다른 건 몰라도 부모의 마음이나 자식의 마음도 온전히 "잘 안다." 말할 수 없으니 오늘 본문의 말씀에 하나님께서 믿고 의지하는 우리 사람들을 "자식" 이라, "아들" 이라 칭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을 비롯하여 사람을 지으셨기(창세기 2장7절) 때문이며 더 정확히 말하자면 속에 있는 속사람 즉 심령(心靈)이라고 하는 "정신 세계" 를 지으셨고 또한 전도서 7장29절에 "내가 깨달은 것은 오직 이것이라, 곧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이 많은 꾀들을 낸 것이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우리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지만 우리 사람이 그 마음속에 끊임없이 이는 육체의 정욕(욕심)으로 말미암아 악한 꾀를 내며 못됐고 나쁘고 악한 죄를 지었으니 이는 말라기 2장10절에 "우리는 한 아버지를 가지지 아니하였느냐. 한 하나님께서 지으신 바가 아니냐. 어찌하여 우리 각 사람이 자기 형제에게 거
짓을 행하여 우리 조상들의 언약을 욕되게 하느냐." 하는 것처럼 각 사람이 서로가 서로에게 정직함으로 행하지 못하고 거짓으로 행함이니 바꾸어 말하자면 정직함의 근본 바탕은 오래 참아주고 온유하게 관용으로 하며 다툼과 시기(비방,훼방)로 하지 않으며 자기의 유익과 이익보다는 나보다 남을 낫게 여겨서 남의 유익을 먼저 구하려는 "사랑" 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이와같이 행할 수 없는 것은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사람이든 일(문제,상황,사건)이든 좌지우지 수족 부리듯이 하고 싶어하는 욕심으로 말미암아 "사랑" 이 아닌 "거짓" 으로 행하게 되리니 하나님과의 사랑으로 행할 약속(언약)보다 더 귀하게 가치있게 여기기 때문이라는 것을 한 번 생각해 보셨으면 한다.
그래서 이사야 1장2절에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하시면서 4절에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
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하고 쓰고 있듯이 첫 사람 "아담" 을 비롯하여 정직하게 지으심에 악한 꾀와 죄로 화답을 한 것은 우리 자신이며 이 세상에 "하나님을 버렸다.", "하나님을 만홀히(경홀히,가볍게) 여겼다." 말 할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우리의 마음에서 비춰진 행실(행위,행동)이 하나님의 계명과 법도에 어긋나며 거스르는 "불법" 과 "거짓" 으로 행하였기 때문이며 이는 우리가 그러하였고 우리의 부모가 그러하였고 우리의 부모의 부모가 그러하였고 그 부모의 부모가 그러하여 대대손손 그러하였으니 16~17절에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하는 것처럼 이러한 우리의 악한 꾀와 죄를 씻어 깨끗하게 하기 위하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쳐야 하며 그 시작은 모든 행실에서 공변됨 즉 "이타심" 으로 자기 자신의 일(입장,처지,상황)이라고 치우치거나 쏠리거나 갑질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공평과 공정함으로 하려 애쓰고 노력(훈련,연습)하리니 씻어 깨끗하게 하지 않고서는 그 제물(헌금)과 분향(예배)과 대회와 성회로 모이는 것과 월삭과 절기를 지켜 행함(13~14절)이 오히려 하나님께는 무거운 짐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시편 103편13~18절에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
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이르리니 곧 그의 언약을 지키고 그의 법도를 기억하여 행하는 자에게로다." 하는 것처럼 우리 사람의 삶과 생명이 길어야 100년이고 하나님의 영원무궁한 시간(세월) 속에서 그져 먼지에 불과하며 금방 피고 지는 들의 풀과 꽃과 같지만 이 또한 소중하게 생각하여 앞만 보고 달리며 성공과 성취를 위하여 뛰고 또 뛰어 보람과 행복과 감사함을 말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지으신 자식 곧 자녀되는 우리들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게 하려 하시니 이 어찌 소중하지 않고 귀하지 않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이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즉 악(꾀와 죄)을 미워하여 바꾸어서 선으로 행할 줄 알아야 하며 그러할 때에 참된 자식으로써 온전한 자녀로써 하나님의 영원무궁한 생명을 유업으로 주시리니 이를 위하여, 우리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앞서 본(本)으로 하나님의 언약과 법도를 지켜 행함 즉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기 위하여 죽으셨으며 우리는 그 자취를 좇아서 지켜 행하여야 할 의무와 사명이 있다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