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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율례를 지켜 행하여 죄악을 범하지 아니하면 그가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할지라...

교훈 안에 2018. 1. 12. 18:25

오늘은 사도행전 2장28절에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셨으니 주의 앞에서 나로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니~  " 에서 "생명(生命)의 길"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먼저 오늘 본문의 말씀은 그 앞 구절 25절부터 시작하여 28절까지 베드로가 시편 16편의 말씀을 인용하여 하신 말씀으로써 주께 있는 "생명의 길" 로 가기 위해서는 사람의 영혼이 음부(스올)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로 말미암아 그 육체(신체)가 썩음을 당하지 않게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걸어갈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시길 바라며.....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주께서 보이신 "생명의 길" 이라 하심은 지금 우리 사람(인생)이 살아가는 한 평생 즉 100년 정도 밖에 안되는 이 생명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시편 93편2절에 "주의 보좌는 예로부터 견고히 섰으며 주는 영원부터 계셨나이다." 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영원부터 영원까지(시편 90편2절) 계시는 분이시며 그런즉 하나님께 있는 "영원무궁한 생명" 을 말하고자 하여 기록하여 주신 말씀이니 하나님의 영원무궁한 생명의 시간과 세월에 비하면 우리 사람의 생명은 그야말로 하루살이에 불과하며 또한 끝을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생명에 비하여 우리 사람의 생명의 시간은 100년이라는 찰나와 같은 시한부 생명이니 하지만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그 영원무궁한 생명의 길 곧 찾아갈 수 있는 지혜를 보이셨으니 그 길(지혜)을 보는 눈이 생기고 들리는 귀가 생겼다면 보고 듣고서 그 길(지혜)을 따라서, 좇아서 가야만이 하나님께 있는 영원무궁한 생명에 도달할 수 있으며 사람이라면 어느누구나 사망을 맛보며 이를 당연하게 여기고 살아왔지만 하나님께서 그 생명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방법을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보여주셨으니 근본적으로 우리 사람의 육체의 정욕으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이 들어왔기 때문에 이 육체의 정욕(욕심,욕구,욕망)을 버리고 비우고 죽이려는 노력(훈련,연습) 곧 그러한 고난이 없이는 죄와 악을 없이할 수 없으며 이 십자가의 고난을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모두가 다 짊어져야 하며 못 박아야 하며 못 박은 증거로써 죽지 않는다면 다신 살아나는 "부활" 즉 하나님의 영원무궁한 생명의 구원에 이를 수 없으니 이 길(지혜) 외에는 생명의 길로 갈 수 없다는 것을 잡아 내셨으면 한다.    

그래서 요한복음 5장29절에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하고 쓰고 있듯이 모든 "선(善)" 의 원천은 "사람 사랑" 에서 비롯되며 그 "사랑" 은 원수(누가복음 6장27절) 같은 사람 즉 상대편이 불편하게, 어렵게, 곤란하게, 언짢게 만들며 마음에 안 들고 못마땅해져서 밉고 싫어서 비방하게 되고 훼방놓게 되고 사나워져서 다투고 싸우게 되며 윽박지르고 함부로하게 될 때에 이러한 육체의 정욕을 버리고 비우고 죽일 수 있어야 비로소 진정한 "서로 사랑하라." 하신 하나님의 첫 째되는 계명을 지켜 행할 수 있으며 내가 사랑하고 좋아하고 존경하고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사랑과 친절과 선대와 겸손과 관용과 온유함과 배려와 양보를 할 수 있는 것은 "사랑" 이라, "선한 일" 이라 말하지 않고 "사람이라면 당연히 할 일" 이라 표현하는 것이 맞는 것이며 이 작고 약해 보이고 미련스러워 보이는 이 것을 지켜 행하시기 위하여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고생,고뇌,애통,눈물,심적 갈등)과 못 박히심과 죽으심의 길을 걸으신 것이며 이것을 지켜 행하기가 그리 어렵고 힘든 것은 자꾸만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하고 싶어하는 육체의 정욕과 그 정욕(욕심)을 부추기는 죄와 악이 마음에 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로마서 7장에서 "선(善)을 원하지만 원하는 것을 행하지 않고 자꾸만 악을 행하며 죄의 법에 사로잡히는 것을 보는도다." 하신 것처럼 이러한 사망의 몸(로마서 7장24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결단코 하나님의 생명의 길을 볼 수 없으며 볼 수 없으니 하나님의 생명의 구원과는 멀어지게 된다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7장16절에 "그는 육신에 속한 한 계명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따라 되었으니~ " 18~19절에 "전에 있던 계명은 연약하고 무익하므로 폐하고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하는 것처럼 "육신에 속한 한 계명의 법" 이라 하심은 율법 즉 본의아니게 의문(儀文)을 좇아서 형식과 절차와 순서를 더욱 중요시하기 때문에 사람 앞에 잘 보이려 하게 되고, 사람들의 눈에 잘 보이는 데 있으려 하니 외모를 꾸미게 되고 그런즉 외식(外飾)으로, 허례허식으로 하게 되며 겉치레를 좋아하게 되어 정작 속사람은 썩어도, 더러워져도, 죄와 악으로 물들어도 수치스러움과 부끄러움을 모르고 더욱더 자신을 숨기기 위해 선한 척, 거룩한 척, 겸손한 척 하게 되니 첫 번에 오셨던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백성(자녀,성도)들이었던 유대인들은 모세의 율법을 좇아서 지켜 행하는 "선민(選民)" 이었지만 율법에서 벗어난 행동(행실,행위)을 하는 사람을 보면 마음에 안 들어하며 못마땅해하고 언짢아 하면서 미워하고 비방하고 때리고 침 밷고 모욕을 주며 사나워져서 다투고 함부로(무시,멸시,업신여김)하기를 서슴치 않았으며 정작 율법의 최고한 법인 "서로 사랑하라." 하신 불멸의 생명의 능력과 그 길을 보지 못하고 이제는 죽어서 이 세상에 없으니 이는 지금 살아서 두 번째 다시 오실(임하실)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는 우리들에게 거울과 경계와 교훈의 말씀이요 또한 약속(언약)의 말씀이니 우리 또한 아직도 육체의 정욕(욕심)으로 말미암은 여러 죄와 악에서 벗어나서 선한 일을 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육신에 속한 한 계명 즉 율법에 속한 자로써 불멸의 생명의 능력과 그 길을 보지 못한 자이며 이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부단히 애쓰고 노력(훈련,연습)하는 그리스도께서 걸으신 십자가의 고난의 길을 걷지 못한다면 절대로 하나님께 있는 영원무궁한 생명의 길로 가까이 갈 수 없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