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이사야 50장4절)
오늘은 이사야 50장4절에 "주 여호와께서 학자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핍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에서 "학자(學者)"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먼저 "학자" 의 의미는 잘 알고 계시듯이 어떠한 한 분야에 관해서 거의 통달하다시피 하여 전문적으로 된 사람을 뜻하며 그렇다면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의 "학자" 의 의미는 여러차례 언급하였지만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은 어느 누구나 들여다보고 읽어보면 하나님의 그 뜻과 마음을 다 헤아려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도록 기록하여 주신 것이 아니라 실물, 참 형상에 대하여 이에 버금하는 다른 모양 즉 "이상(異狀)" 으로 하셨으며 또한 미루어 짐작하여 알(깨달을) 수 있도록 간접적인 표현을 한 "비유(比喩)" 로 하셨기 때문에 반드시 이를 밝히 풀어서 해석(마가복음 4장34절)을 해주어야 하며 이렇게 해석할 수 있는 때는 아무 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예언,언약)하신 때가 이르러야 가능하며 그렇기 때문에 해석을 해주는 때가 이르렀다면 하나님의 약속이 가까운 때에 이루어진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하여 알 수 있는 대목이며 그 해석함에 있어서는 하나님께서 학자 같이 알아듣게 하여 주셔서 통달하지 않고서는 결코 헤아려 이해할 수 없으며 그런즉 학자의 혀로 해석하여 알리며 전하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하나님께서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을 학자 같이 알아듣게 하시는 가장 큰 이유와 목적은 하나님 아는 것을 상대하여 높아진 견고한 진 곧 그러한 모든 이론(고린도후서 10장4~5절), 논리, 사상, 가치관, 이념... 등등등을 파하고 무너뜨리게 하고자 함이며 이를 파하고 무너뜨리려 함에는 이렇게 높아져 있는 모습(자세)으로는 하나님 나라 곧 천국에서는 불법이요 이러한 것이 그 곳에서는 설 자리가 없기 때문이며 "높아진 견고한 진(陣)" 즉 사람이 살아가면서, 생활하면서 교만하여지고 오만하여지고 기만, 경만, 거만하여져서 마음이 높아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마음에 안 드는 상대편 사람이나 그 일에 대해서 비방(흉보고 욕함)하고 훼방(남이 잘못되기를 바람)하며 못마땅해지거나 언짢아지면 사나워져서 다투고 윽박지르며 함부로(무시,멸시,업신여김)하게 되기 때문에 그러한 마음의 소유자에게는 하나님께서 학자의 혀를 줄 수 없을 것이며 자기 자신의 유익과 이익보다는 나보다 남을 낫게 여겨서 그 입장과 처지와 사연과 상황을 헤아려 배려하려 애쓰며 양보하려 노력하는 사람의 마음이라야 부족하고 연약(취약)하고 곤핍하며 없고 어리며 좀 어리석고 모자라고 미련한 사람들을 대변하여 도와줄 줄도 알기 때문에 더욱더 학자 같은 통찰력과 그 통찰력을 가감없이 전하고 알리며 말할 수 있는 학자의 혀를 주신다는 것을 잡아 내셨으면 한다.
그래서 에스라서 7장6절에 "이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올라왔으니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음으로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는 자이더니~ " 10절에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하고 쓰고 있듯이 "에스라" 는 이스라엘 백성(자녀,성도)들이 이방민족 바벨론에 사로잡혀서 노예가 아닌 노예가 되어 그들의 종노릇을 하고 있을 때에 그 냐약해지고 곤핍하여진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나님의 율례와 명령을 알게하려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에스라에게 학자 같이 하나님의 율법의 말씀들을 알아 들을 수 있게 하셨기 때문이며 그런즉 학자의 혀가 되어서 그들이 지금 처해 있는 상황을 알리며 전하여서 빠져 나올 수 있게 하려 함이니 중요한 것은 에스라는 "다윗" 과 같이 이미 죽어서 이 세상에 없으며 그런즉 에스라와 같은 한 사람, 한 선지자, 한 제사장 즉 참 형상은 그리스도이신 "예수" 를 말하고자 함이며 이방(마태복음 4장15~17절)과 같이 되어버린 갈릴리에 오셔서 그들의 부족하고 가난하고 곤핍한 상황과 어떠한 것에 노예처럼 사로잡히고 얽매이고 져서 있음을 드러내고 나타내서 그러한 것에서 나오기를 나야와만이 자유를 얻을 수 있음을 학자의 혀로써 가르치시며 가르치기만 하신 것이 아니라 몸소 실천하여 학자된 자로, 선생된 자로 앞서서 본(本)을 보이셨으니 곧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을 버리고 비우고 죽이는 십자가의 고난과 못 박히심과 그 결과로 이루어진 죽으심과 다시 살아나는 "부활" 을 증거로써 보여주셨으며 더 나아가서 두 번째 다시 오실(임하실) "그리스도" 를 알리고자 전하고자 함이니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고 지으심은 함께 거처를 함께 하여 하나님 나라에서 살고자 하심이었지만 하나님 나라가 아닌 이방(異邦) 즉 세상적이고 정욕적이며 마귀적인 지혜(사상,논리,이론,이념... 등등등)에 사로잡혀서 높아지기를, 높은 곳, 높은 자리(위치)에 있기를 좋아하며 이러한 것에 사로잡혀서 노예가 아닌 노예가 되어 종노릇하고 있을 때에 그 부족하고 연약하고 곤핍하며 어리고 어리석을 알게 하여 그러한 바벨론에서 나오기를(마태복음 24장15절) 학자의 혀로 전하며 알리는 것임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1장18~19절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 29절에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는 것처럼 "십자가의 도(道)" 즉 그 가르침은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낮아질대로 낮아지지 않는다면 결코 그 뜻을 헤아려 이해할 수 없는 가르침이며 또한 말만 앞세워서는 결코 그 가르침의 끝을 알 수 없으니 그런즉 그리스도께서 몸소 실천하여 본(本)을 보이신 것이며 이것이 하나님께 있는 가장 큰 능력이요 사람으로 변화되게 하는 가장 큰 기적이니 진정한 "학자(學者)" 이며 사람으로 그 부족하고 연약하고 없고 곤핍한 데서 나오게 하여 자유를 얻을 수 있게 하는 참된 진리의 길이니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며 그리스도를 의지한다면 진정 그 본과 자취를 좇아 지켜 행함으로 그리스도에게 속하며 그리스도에게 붙어서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가 되어 그 학자의 가르침을 알리며 전하여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