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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이사야 50장4절)

교훈 안에 2018. 1. 15. 18:26

오늘은 이사야 50장4절에 "주 여호와께서 학자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핍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에서 "학자(學者)"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먼저 "학자" 의 의미는 잘 알고 계시듯이 어떠한 한 분야에 관해서 거의 통달하다시피 하여 전문적으로 된 사람을 뜻하며 그렇다면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의 "학자" 의 의미는 여러차례 언급하였지만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은 어느 누구나 들여다보고 읽어보면 하나님의 그 뜻과 마음을 다 헤아려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도록 기록하여 주신 것이 아니라 실물, 참 형상에 대하여 이에 버금하는 다른 모양 즉 "이상(異狀)" 으로 하셨으며 또한 미루어 짐작하여 알(깨달을) 수 있도록 간접적인 표현을 한 "비유(比喩)" 로 하셨기 때문에 반드시 이를 밝히 풀어서 해석(마가복음 4장34절)을 해주어야 하며 이렇게 해석할 수 있는 때는 아무 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예언,언약)하신 때가 이르러야 가능하며 그렇기 때문에 해석을 해주는 때가 이르렀다면 하나님의 약속이 가까운 때에 이루어진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하여 알 수 있는 대목이며 그 해석함에 있어서는 하나님께서 학자 같이 알아듣게 하여 주셔서 통달하지 않고서는 결코 헤아려 이해할 수 없으며 그런즉 학자의 혀로 해석하여 알리며 전하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하나님께서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을 학자 같이 알아듣게 하시는 가장 큰 이유와 목적은 하나님 아는 것을 상대하여 높아진 견고한 진 곧 그러한 모든 이론(고린도후서 10장4~5절), 논리, 사상, 가치관, 이념... 등등등을 파하고 무너뜨리게 하고자 함이며 이를 파하고 무너뜨리려 함에는 이렇게 높아져 있는 모습(자세)으로는 하나님 나라 곧 천국에서는 불법이요 이러한 것이 그 곳에서는 설 자리가 없기 때문이며 "높아진 견고한 진(陣)" 즉 사람이 살아가면서, 생활하면서 교만하여지고 오만하여지고 기만, 경만, 거만하여져서 마음이 높아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마음에 안 드는 상대편 사람이나 그 일에 대해서 비방(흉보고 욕함)하고 훼방(남이 잘못되기를 바람)하며 못마땅해지거나 언짢아지면 사나워져서 다투고 윽박지르며 함부로(무시,멸시,업신여김)하게 되기 때문에 그러한 마음의 소유자에게는 하나님께서 학자의 혀를 줄 수 없을 것이며 자기 자신의 유익과 이익보다는 나보다 남을 낫게 여겨서 그 입장과 처지와 사연과 상황을 헤아려 배려하려 애쓰며 양보하려 노력하는 사람의 마음이라야 부족하고 연약(취약)하고 곤핍하며 없고 어리며 좀 어리석고 모자라고 미련한 사람들을 대변하여 도와줄 줄도 알기 때문에 더욱더 학자 같은 통찰력과 그 통찰력을 가감없이 전하고 알리며 말할 수 있는 학자의 혀를 주신다는 것을 잡아 내셨으면 한다.

그래서 에스라서 7장6절에 "이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올라왔으니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음으로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는 자이더니~ " 10절에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하고 쓰고 있듯이 "에스라" 는 이스라엘 백성(자녀,성도)들이 이방민족 바벨론에 사로잡혀서 노예가 아닌 노예가 되어 그들의 종노릇을 하고 있을 때에 그 냐약해지고 곤핍하여진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나님의 율례와 명령을 알게하려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에스라에게 학자 같이 하나님의 율법의 말씀들을 알아 들을 수 있게 하셨기 때문이며 그런즉 학자의 혀가 되어서 그들이 지금 처해 있는 상황을 알리며 전하여서 빠져 나올 수 있게 하려 함이니 중요한 것은 에스라는 "다윗" 과 같이 이미 죽어서 이 세상에 없으며 그런즉 에스라와 같은 한 사람, 한 선지자, 한 제사장 즉 참 형상은 그리스도이신 "예수" 를 말하고자 함이며 이방(마태복음 4장15~17절)과 같이 되어버린 갈릴리에 오셔서 그들의 부족하고 가난하고 곤핍한 상황과 어떠한 것에 노예처럼 사로잡히고 얽매이고 져서 있음을 드러내고 나타내서 그러한 것에서 나오기를 나야와만이 자유를 얻을 수 있음을 학자의 혀로써 가르치시며 가르치기만 하신 것이 아니라 몸소 실천하여 학자된 자로, 선생된 자로 앞서서 본(本)을 보이셨으니 곧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을 버리고 비우고 죽이는 십자가의 고난과 못 박히심과 그 결과로 이루어진 죽으심과 다시 살아나는 "부활" 을 증거로써 보여주셨으며 더 나아가서 두 번째 다시 오실(임하실) "그리스도" 를 알리고자 전하고자 함이니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고 지으심은 함께 거처를 함께 하여 하나님 나라에서 살고자 하심이었지만 하나님 나라가 아닌 이방(異邦) 즉 세상적이고 정욕적이며 마귀적인 지혜(사상,논리,이론,이념... 등등등)에 사로잡혀서 높아지기를, 높은 곳, 높은 자리(위치)에 있기를 좋아하며 이러한 것에 사로잡혀서 노예가 아닌 노예가 되어 종노릇하고 있을 때에 그 부족하고 연약하고 곤핍하며 어리고 어리석을 알게 하여 그러한 바벨론에서 나오기를(마태복음 24장15절) 학자의 혀로 전하며 알리는 것임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1장18~19절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 29절에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는 것처럼 "십자가의 도(道)" 즉 그 가르침은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낮아질대로 낮아지지 않는다면 결코 그 뜻을 헤아려 이해할 수 없는 가르침이며 또한 말만 앞세워서는 결코 그 가르침의 끝을 알 수 없으니 그런즉 그리스도께서 몸소 실천하여 본(本)을 보이신 것이며 이것이 하나님께 있는 가장 큰 능력이요 사람으로 변화되게 하는 가장 큰 기적이니 진정한 "학자(學者)" 이며 사람으로 그 부족하고 연약하고 없고 곤핍한 데서 나오게 하여 자유를 얻을 수 있게 하는 참된 진리의 길이니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며 그리스도를 의지한다면 진정 그 본과 자취를 좇아 지켜 행함으로 그리스도에게 속하며 그리스도에게 붙어서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가 되어 그 학자의 가르침을 알리며 전하여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