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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여호와께서 나의 귀를 열으셨으므로...(이사야 50장5절)

교훈 안에 2018. 1. 20. 09:55

오늘은 이사야 50장5절에 "주 여호와께서 나의 귀를 열으셨으므로 내가 거역지도 아니하며 뒤로 물러가지도 아니하며~ " 에서 "열다."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먼저 "열다." 의 의미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알리고자 전하고자 하시는 의미는 무언가가 닫혀있던 것이 이제는 안팎이 통할 수 있도록 되어진 상태를 뜻하며 그런즉 어떠한 사물 즉 현관문이나 옷장문과 같은 것이 닫혀있다가 열린 것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라 쉽게 말해서 무엇을, 어떤 말을 하여도 알아듣지 못하고,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제 고집대로 밀어 붙이는 사람을 우리는 흔히 "꽉 막혔다." 라는 표현을 쓰듯이 그룹 송골매의 맴버였던 가수 구창모씨의 노래 중에 "문을 열어 마음의 문을 열어, 그 문으로 가만히 내가 들어가게~ " 하는 것처럼 마음의 문 곧 그 눈과 귀를 열어 오픈하여서 성경 곧 하나님 말씀을 학자와 같이 알아듣게(4절) 하시므로 이를 지켜 행하게 하여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의 마음 즉 영혼(정신세계)에 들어오셔서 거처를 함께(요한복음 14장23절) 하고자 하시는 것이며 또한 거처를 함께 할 때라야 하나님께 있는 (영원무궁한)생명의 문으로 우리 또한 들어갈 수 있는 것이며 멸망과 패망과 사망의 구덩이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니 그런즉 우리의 육신의 장막(고린도후서 5장1~2절) 곧 몸(신체)이 살아있을 때에 이러한 것이 이루어져야 하나님과 온전히 함께 할 수 있는 것으로써 우리의 육체의 몸이 죽어서 사망한 후에는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이었던 다윗도,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부귀영화를 다 누렸던 솔로몬도 피할 수 없었던 있는 자나, 없는 자나, 명철하거나 우매하거나, 지혜로운 자나 미련스럽고 어리석은 자나 모든 사람들이 일반으로 가게 되는 음부로 가게 되리니 다시 말해서 영혼이 거할 집인 육체(신체), 몸이 없는데 어찌 그 영혼에 관하여 이렇다저렇다 말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을 한 번 생각해 보셨으면 한다.

서론이 많이 길어졌는데 하나님께서 이토록 우리 사람의 귀와 눈 즉 마음을 열어주시려 하시는 것은 욥기서 36장9~10절에 "그들의 소행과 허물을 보이사 그 교만한 행위를 알게 하시고 그들의 귀를 열어 교훈을 듣게 하시며 명하여 죄악에서 돌아오게 하시나니~" 하고 쓰고 있듯이 지금의 우리 사람의 모습(모양,자세)은 감옥(구치소,교도소)에 갇힐 정도의 범죄가 아니면 사람을 미워하고 비방(흉보고 욕함)하며 보복심리에 훼방(남이 잘못되기를 바람)하고 좀 사나워져서 다투고 싸우고 윽박지르고 함부로(무시,멸시,업신여김)하는 사소한 허물이나 잘못은 "죄" 와 "악" 이라 크게 여기지 않으며 가책도 별로 느끼지 않으면서 행하고 있지만 사실은 이러한 모든 것은 마음에 있는 육체의 정욕(욕심)과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길 수 없는 높은 마음 즉 교만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감옥에 갇힐만한 범죄는 말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근원적이고 원초적인 마음이 하나님께 있는 선(善)과 의(義)로 변화되어 온전히 선한 양심으로 돌아오기를 바라고 원하시는 것이니 이를 위하여 마음을 열어주시려 하시는 것이며 그러나 여러차례 말씀드렸지만 말을 물가까지 억지로라도 끌고는 갈 수 있지만 그 물을 먹고 안 먹고는 전적으로 말의 의지에 달린 것처럼 하나님께서 아무리 그 마음의 문을 열고자 하셔도 열고 안 열고는 전적으로 우리 사람의 의지의 문제이기 때문에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여 그를 믿으며 그의 보내신 자 그리스도를 의지한다고 외치며 부르짖는 사람이라면 지금까지의 믿음이 헛되지 않게 일깨우고 돌이켜서 고쳐 행하여야 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래서 다시 오늘 본문의 말씀으로 돌아가서 그 바로 뒷 구절 6절에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수욕과 침 뱉음을 피하려고 내 얼굴을 가리우지 아니하였느니라." 하는 것처럼 여기에서 바로 아셔야 할 것은 물론 오늘 본문의 말씀을 비롯하여 6~9절의 말씀이 응하여 이루신 것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시며 모든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이 응하여 이루어짐에는 가장 먼저 그리스도부터 시작되는 것이며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위하심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에게 붙은 자, 속한 자, 옷 입은 자들을 위하심이니 만약에 첫 번에 오셨던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온전히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가 있어서 이 말씀이 온전히 응하여 이루어진 말씀이라면 두 번째 다시 오실(임하실) 이유도 목적도 없는 것이며 믿고 의지하는 모든 사람들은 이미 마음의 문이 열려서 하나님의 뜻과 계명의 말씀 즉 그리스도의 교훈의 말씀대로 변화되고 고침을 받아서 그 이후에 전개될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다 성취되었으리라. 그러나 그 때 그 시대, 그 세대 사람들은 죽어서 이 세상에 그 흔적조차 없으며 이는 지금 살아서 믿고 의지하며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의 소망이 이루어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응하며 이루어질 말씀이라는 것을 잡아 내시길 바라며.....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백성(자녀,성도)들이 있는 이스라엘에 오셨지만 그들의 입과 말과 혀로는 하나님을 외치며 부르짖고 있었지만 하나님을 향한 자부심과 자긍심이 그들의 마음을 높게 만들어 사람들을 아래로 보며 함부로하는 교만(경만,오만,자만)에 빠지고 그 교만은 자신들의 뜻대로 마음대로 하고 싶은 육체의 욕심을 이루어 그 어느 곳보다도 세상적이고 정욕적이며 마귀적인 하나님 나라(천국)가 아닌 이방(異邦)과 같이 되어 그것의 노예가 아닌 노예가 되어 종노릇을 하고 있음을 보았고 또한 죄 있는 사람의 모양(빌립보서 2장7~8절)으로 오셨으니 그리스도 또한 그들과 똑같음을 하나님께서 마음을 열어 보이셨으며 이를 마음에서 돌이켜서 고쳐 행하시려, 제하여 버리려 많은 심적 고난을 겪으셨으니 그 고난의 절정은 그들과 똑같이 되어서 때리며 비방하고 침 밷고 미워하고 싸우고 멸시하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그들의 죄된, 악한 행실을 몸으로 다 받으시며 오히려 그들과 싸우기 보다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를 제하여 버리려 하셨으니 묵묵히, 잠잠히 입을 열지 않으신 것이 그 증거요 그들과 똑같이 범죄치 않기 위하여 잠잠하였을 뿐 무슨 죄가 있어서 악이 있어서 그러하였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눈과 귀를 여시는 즉 마음을 여시는 것을 "계시(啓示)" 라 하며 우리가 그리스도를 본받아 하나님께서 눈과 귀를 여시는 것에 동참하여 마음이 열렸다면 그 증거로 이전에 마음에 안 들면 미워하고 불평하며, 못마땅하면 비방하고 훼방하며 언짢으면 사나워져서 다투고 윽박지르고 함부로하였던 그러한 불법과 죄와 악에서 벗어나려 애쓰며 노력(훈련,연습)하여야 하며 그 노력하는 과정에서 얼마든지 심적 다툼 곧 갈등과 고뇌와 애통과 눈물 곧 고난은 있을 수 있지만 이는 이전에 진노의 자녀와 같이 행할 때의 그 고통과 수고에 비하면 기쁨과 감사와 행복과 평안으로 다가올 것이며 사도 바울도 그리스도의 계시(갈라디아서 1장11절)로 말미암아 이전에 모든 것은 아무 쓸모없는 배설물(빌립보서 3장8~9절)처럼 여기고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못 박히심(고린도전서 2장2절) 외에는 알지 않기로 작정하였던 것처럼 우리 또한 그 자취와 흔적을 좇아서 변화되고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 믿은은 헛 것이요 하나님의 거짓 증인(고린도전서 15장15절)으로 발견된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