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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아니하고 그 영혼을 음부의 권세에서 건지리이까...

교훈 안에 2018. 1. 27. 09:49

오늘은 사도행전 2장31절에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에서 "음부(陰府)"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음부" 에 관하여는 앞서 기재했던 글(2015년5월23일자)에서 살펴 본 적이 있었지만 우리가 흔히 많하는 "저승길", "황천길" 을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에서는 "음부" 라 표현하여 기록하고 있으며 이를 계시록(20장1~3절)에서는 한 번 빠지면(욥기서 7장9절) 절대로 거슬러서 빠져 나올 수 없는 "무저갱(無底坑)" 이라, 하늘 위가 아닌 땅의 가장 아래의 밑에 중에 가장 밑에 있는 감옥 즉 "(지)옥(계시록 20장7절)" 이라고도 표현하여 기록하고 있으니 말만 들어도 소름이 돋으며 상상하기도 싫은 섬뜩한 곳으로써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도 기록하고 있지만 "음부" 에 버림이 되지 않으며 고로 그 육신(몸)이 썩음을 당하지 않게 되려면 부득불 "부활" 에 참예하여야 하며 이것이 "부활하심" 의 정석(定石)이며 그러나 "부활" 에 이르기까지 지나가야 할, 거쳐야 할 과정이 있으니 가장 먼저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사람이든, 어떤 일(문제,사건,상황)이든 그져 물 흐르는대로 두지 못하고 좌지우지 수족 부리듯이 하려고 하는 육체의 욕심을 이루는 모든 정욕을 버리고 비우고 죽이려는 많은 "고난(심적 갈등,고뇌,애통,눈물... 등등등)" 을 겪어야 하며 그러나 이 수고로움은 세상에서 소위 "성공" 이라고 하는 것을 성취하며 얻기 위하여 다투고 싸우고 때로는 미워하고 훼방하고 때로는 사나워져서 윽박지르고 함부로하는 그러한 어깨 위에 짊어진 짐에 비하면 더욱 가벼운 것임을 염두에 두시길 바라며.....

그리고 그 고난을 통하여 드디어 마음이 의연하게 되어 어떠한 파도와 풍파에도 잔잔한 호수와 같이 늘 변함이 없는 그리 되어가는 "못 박으심" 과 이 고난과 못 박음으로 말미암아 마침내 죄에 대하여(로마서 6장10~11절) 죽어서 선한 양심으로 변화되는 "죽으심" 즉 죽어야만이 다시 사는 "부활" 이 있으며 이것이 온전하고도 장성한 참 형상의 "세례" 이며 잘 알고 계시듯이 이 모든 것의 길을 묵묵히, 잠잠히 걸어가심으로 "부활" 에 참예하신 것은 그리스도 한 분 밖에 없으니 항상, 여러차례 말씀드렸지만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그리스도를 통하여 보이신 것은 그리스도를 위하심이 아니라 표적, 이정표와 같은 것으로써 우리가 지금까지 한결 같이 행하여 온 불법과 불공정과 불의 행함에서 벗어나게 하여 하나님의 법과 규례와 그  계명과 공의를 행하게 하기 위한 그 본보기로써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것이며 그 본보기를 보고 따라서 좇아오게 하시려 함이니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본과 자취를 좇아 행함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에게 붙은 자(고린도전서 15장21~23절), 속한 자, 옷 입은 자(갈라디아서 3장27절)가 되어야만이 우리도 그리스도와 같은 "부활" 에 참예할 수 있으며 "부활하심" 이 있어야 그 영혼이 "음부" 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 영혼이 살아가야 할 집인 그 육신(몸) 또한 썩음을 당하지 않게 된다는 것을 잡아 내셨으면 한다.

그래서 잠언서 15장16~17절에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여간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하시면서 24절에 "지혜로운 자는 위로 향한 생명 길로 말미암음으로 그 아래 있는 음부를 떠나게 되느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어떤 집(고층 아파트, 전원주택, 팬트하우스... 등등등)에 살고 무슨 차(고급 외제차... 등등등)를 타며 어떤 명품(가방,옷,가전... 등등등)을 쓰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한 마음의 모습(자세)으로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중요하니 다시 말해서 비록 풍족히 쓸만큼, 넉넉히 쓰고도 남을 정도의 재물이나 재산은 없을지라도 지금 주어진 것, 처해 있는 상황에 감사할 줄 알면 기쁨이 있고 즐거움이 생기며 행복하여지고 모든 것이 재미가 있어서 다른 사람들을 대하며 베품에 있어서 인색하지 않고 치사하지 않으며 쪼잔해지지 않고 조급해 하지 않게 되리니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하늘 위의 지혜(야고보서 3장17~18절)이며 제아무리 억만금을 갖고 있어 씀씀이에 있어서 제약이 없고 마음 먹은 모든 것을 아무런 고민 없이 자신의 손에 넣을 수 있다하여도, 또는 이러한 재물이 없다 할지라도 자신의 마음 하나를 잡지 못해서 이리저리, 오르락내리락, 왔다갔다, 오락가락 기분(뜻)에 따라 좋았다가 나빴다가, 언짢아졌다가, 못마땅해졌다가 마음에 안 들면 사나워져서 쉽게 다투고 싸우고 분노를 느껴서 윽박지르고 모든 것을 자신의 눈 아래에 두고서 함부로(무시,멸시,업신여김)하며 갑질하고 한다면 이는 위로 향한 곧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생명의 길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그 짧디짧은 생(生)의 마지막 종착지는 위에 있는 "하늘 나라" 가 아닌 땅 아래에 있는 "음부" 가 되리니 과연 우리는, 또 우리의 부모는, 또 우리의 부모의 부모는, 또 그 부모의 부모는... 얼마나 많은 마음에 있는 관용과 사랑(인애,자비,긍휼)와 온유와 화평(배려,양보)과 감사함으로 살아왔을까? 하는 것이니 마음에 안 들면 불평하며 미워하고, 못마땅하면 비방하며 훼방하고, 언짢으면 사나워져서 다투고 윽박지르고 함부로하기에 더욱 발과 손과 입이 빨랐으며 항상 마음에는 평보보다는 전쟁이 있어 자기 안에서 싸워서 하나님의 하늘의 지혜로 승화시켜서 이겨내려 하기 보다는 삶에 생활에 표출되어 매일이 다툼과 시기(질투,훼방,비방)와 분노로 얼룩졌으니 우리의 종착지를 "하늘 나라" 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을 한 번 생각해 보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이사야 5장13~14절에 "나의 백성이 무지함을 인하여 사로잡힐 것이요 그 귀한 자는 주릴 것이요 무리는 목마를 것이며 음부가 그 욕망을 크게 내어 한량없이 그 입을 벌린즉 그들의 호화로움과 그들의 많은 무리와 그들의 떠드는 것과 그 중에서 연락하는 자가 거기 빠질 것이라." 하는 것처럼 우리 사람(인생)이 어떤 것에 무지함으로 무엇에 사로잡혀 있을까? 하는 것이니 하나님의 하늘의 지혜에 있어서 일깨워 잘 알고 있었다면 이렇게 죄됨과 악함에 허덕이지 않았을 것이며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공허한 마음과 메마른 가슴 때문에 무언가를 채우려, 담으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주리며 타들어만 가는 가슴에 만족함이 없고 눈과 입과 손과 발이 정처없어서 둘 곳이 없으니 하나님의 최고한 법 "서로 사랑하라." 하되 그 사랑은 일곱 번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고 관용할 수 있어야 하며 그렇게 되기 위하여 앞서서 본을 보이신 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이요 못으심이요 죽이심이요 부활이니 이것이 하늘 위로 부터 온 지혜이며 이를 행하지 못하면 땅 아래에서 올라온 음부가 사람의 마음에 꿈뜰대는 온갖 욕망(욕심)에서 비롯된 가책없이 죄를 범하는 호화로움과 서슴치 않는 악을 행함의 연락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함이 파멸(멸망,패망)하고 사망에 이르기까지도 깨닫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