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라.
오늘은 이사야 50장9절에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리니 나를 정죄할 자 누구뇨. 그들은 다 옷과 같이 해어지며 좀에게 먹히리라." 에서 "정죄(定罪)"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정죄" 에 관하여는 앞서 기재했던 글(2015년10월26일자,2014년12월21일자)에서 살펴 본 적이 있었지만 누군가가 누구에게 "당신은 이러저러한 죄를 지었소!" 라며 죄를 정하여 말한다면 아마도 그 말을 들은 사람은 "너나 잘하세요!!" 라며 기분이 상하여 좋지 않을 것은 당연한 일이니.....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지는 어떤 일도 자신에게는 취약하여 예민하게 받아들일 때가 있으며 또한 타인에게는 크고 민감하게 느끼는 부분에 자신은 오히려 대범하고 담대한 부분이 있어서 아무렇지 않게 넘기는 상황도 있으니 다시 말해서 자신의 것(일,사연,처지,입장,상황... 등등등)이 소중하고 귀하다면 즉 내 것이 소중한 가치를 담고 있으며 귀중한 신념으로 여기는 것이 있어서 그것이 존중 받기를 원하고 귀 기울여주기를 바란다면 마땅히 다른 사람의 기준이나 가치관 역시 소중하고 귀하게 여기며 생각해서 존중해줄 줄 알아야 하리니 그렇지 않는다면 그 곳에는 끊임없는 다툼과 갈등과 대립은 통한 미움과 비방과 훼방과 사나움과 함부로함과 같은 못됐고 나쁜 악함과 죄됨이 만연(蔓延)하게 될 것이며 누가 뭐라하지 않아도 이러한 모든 것이 우리 자신을 정죄하게 되리니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기 때문에 이를 생활속에서 실천하기란, 행실로 옮기기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마태복음 12장35절에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하시면서 37절에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하고 쓰고 있듯이 "광에서 인심난다." 하는 옛말도 있지만 제아무리 광(곳간)에 차고 넘치도록 많은 재물이 있더라도 그 주인이 심술궂고 욕심이 많아서 끌어모으고 쓸어 담기에만 관심이 있다면 그 집 인심은 인색하고 사나울 수 밖에 없는 것처럼 우리 사람(인생)의 마음의 광 또한 심술맞고 완악하고 포악하고 자신의 것만 귀하고 소중하게 여겨서 자신의 뜻대로 마음대로만 하려는 욕심꾸러기는 비록 보이는 앞에서나 잘 보여야 하는 곳 또는 공개적인 공간에서 말로는, 혀로는, 입으로는 꾸며서 선하고 곱고 좋은 것을 말할 수는 있을지언정 몸에 베어 있어서 미워하고 불평하고 비방(흉보고 욕함)하는 악한 습관이나 사납게 다투고 윽박지르고 함부로(무시,멸시,업신여김,갑질) 하는 못된 버릇이 몸과 마음에 베어 있기 때문에 어느 순간, 어떤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나오게 된다는 것이며 그런즉 다른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말과 행실에 의해서 의롭다 함을 받기도 정죄함을 받기도 하리니 사랑(인애,자비,긍휼)과 관용과 용서와 화평(배려,양보)과 같은 빛에 거할 수 있음에도 마음에 이는 못됐고 나쁘고 악한 정욕에 이끌려서 미워하고 비방하고 훼방하고 불평하고 사나워져서 다투고 윽박지르고 함부로하려는 어두운 죄에게 속하여 종노릇하는 것이 "정죄(요한복음 3장19절)" 라는 것을 잡아 내셨으면 한다.
그래서 로마서 8장1절에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 3~4절에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는 것처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 는 것은 지금까지 우리가 입고 있었던 "인면수심(人面獸心)" 과 같은 짐승의 옷을 벗어버리고 그리스도로 옷 입어서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 붙은 자가 된 사람들을 뜻하며 이들을 하단에 19절에서는 "하나님의 아들들" 이라, 23절에서는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 라 기록하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보내심은 그리스도를 위하심이 아니라 육체의 욕심에 져서 죄와 악을 행하여 정죄할 수 밖에 없는 우리들을 위하여 그리스도이신 맏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과 그 죄됨을 정하여 이를 버리고 비우고 죽이는 과정 즉 십자가의 고난과 못 박히심과 죽으심의 영(靈)을 좇아서 행하심으로 다시 사는 부활 곧 구원을 얻는 길(지혜)과 방법을 보이셨으며 이를 좇아오게 하려 하심이니 이것이 진정으로 죄를 정하지 못하게 하는 율법의 요구라는 것임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다시 오늘 본문의 말씀으로 돌아가서 하나님의 도우심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도리를 온전히 지켜 행할 때에 받을 수 있는 도우심이며 그 믿음의 도리는 하나님께서 맏아들 또한 아끼지 않고 보내심으로 그 본과 자취를 좇아가게 하셨으니 이것이 우리가 지켜 행하여야 할 믿음의 도리이며 그 도리를 다 할 때에 비로소 하나님께서 정죄하지 않으시니 어느 누구도 정죄할 수 없으며 더 나아가 우리가 이전에 알지 못하여 죄됨을 알고도 모르고도 가책을 느끼지 못하면서 육체의 욕심을 따라 행하였던 것을 기억하고 높은 마음을 품지 말아서 다른 사람을 정죄하거나 판단(비판)하거나 함부로하여서는 안된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