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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종을 세워 복 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사도행전 3장26절)

교훈 안에 2018. 5. 18. 18:33

오늘은 사도행전 3장26절에 "하나님이 그 종을 세워 복 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 너희로 하여금 돌이켜 각각 그 악함을 버리게 하셨느니라." 에서 "복(福)"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성경 66권 하나님의 말씀에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에게 주고자 하시는 오직 "복" 생명과 안식과 구원으로써 디모데전서 6장8~10절에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 하고 쓰고 있듯이 우리 사람(인생)은 본능적으로 그것이 무엇이 되었건 자신의 소유로 만들고자 하는 욕심이 있으며 이와같이 이 세상에 욕심이 없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오죽하면 잠언서(30장15절)에서는 사람을 거머리에 빗대어 말씀하시기를 있어도, 채워도 족한 줄을 모르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교묘히 더욱더 채우고 담으려고 하는 것을 기록하고 있으며 그러한 사람은 천지분간도 못하고 자신의 위에는 아무도 없어서 모든 것을 아래로 보며 발바닥에 있는 때처럼, 때보다도 못하게 여기고 함부로(무시,멸시,업신여김,갑질)하기를 서슴치 않게 되며 이것이 그 사람의 입지를 좁게 만드는 해로운 정욕(욕심)으로써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침몰(침륜)하고 멸망하게 되리니 그 여러 욕심(정욕)으로 인하여 사람으로써 행하여야 할 가장 기본적인 도리나 이치조차 저버리고서 미움과 원망과 비방과 훼방과 사나움과 다툼과 같은 못됐고 나쁘고 악한 꾀와 죄를 행하게 되기 때문이며 그런즉 참되고도 온전한 "복" 이라고 하는 것은 재물 곧 돈(금,주식... 등등등)이나 재력이나 부동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람의 마음과 생각 즉 영혼이라고 하는 정신 세계가 풍요로워지고 부하여져서 있어도 없는 것처럼, 없어도 있는 것처럼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의연하게 되어서 지금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족하게 여길 때에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으로써 하나님의 최고한 법(야고보서 2장8절) 곧 그 계명을 지켜 행하게 된다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3장8~9절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하시면서 14절에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고 인치신 것은 무할례 시에이며 이로써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이며 이는 무할례 곧 하나님을 잘 몰라 안 믿고 못 믿는 이방(세상)사람들이 비록 하나님의 법을 잘 몰라도 오히려 믿고 의지한다고 하는 이스라엘보다 그 율법의 제도를 잘 지키는 자들을 믿음으로 여기시고 의로 정하시기 위함이며 또한 이는 아브라함보다 먼저 있었던 살렘 왕이요 평강의 왕이요 의의 왕이었던 멜기세덱(히브리서 7장1~7절) 곧 아브라함 시대의 그리스도였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에게 복을 빌어 주었듯 이방인에게도 아브라함의 복이 미치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믿고 안 믿고는 부르짖으며 외치는 말에 있지 않고 진솔하고 진정성이 있는 행함에 있으며 그 행함으로 말미암아 의로 여기시고 하나님께 있는 참되고도 온전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에베소서 1장3절)을 주고자 하심이니 어찌 세상에서 누리고자 하는, 얻고자 하는 그러한 복(福)과 비교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며 야고보서 1장25~26절에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하고 쓰고 있듯이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 이라 함은 언제나 참아줄 줄 알며 온유하게 관용할 줄 알며 측은지심(긍휼)으로 상대편의 입장이나 처지나 상황을 헤아리고 이해하여 배려하고 양보하는 남의 유익과 이익을 먼저 구할 줄 아는 "사랑" 이며 이것이 사람으로 자유하게 하며 사람이라면 믿고 안 믿고 떠나서 이와같이 행할 줄 알아야 하지만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의 정욕(욕심)이,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좌지우지 하고자 하는 정욕(욕심)이 죄에게 종노릇하게 하고 악에게 노예가 되어서 사로잡혀 행하게 되니 어찌 자유케 되었고 말할 수 있을까? 은연 중에 내밷는 말이 상대편을 찌르고 상처를 주며 꺾어버리고 잘라버리고 넘어지게 하므로 경건의 모양만 외식적으로 갖추고서 고상하고 거룩하게 있는 것이 아니라 "묵언수행" 을 할 수 있어야 참된 경건이요 그로 말미암아 할례자(밈든 자), 무할례자(안 믿고 못 믿는 자)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고린도전서 7장19절) 즉 그 율법의 제도를 지킬 줄 아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참된 복(福)이 임하게 되는 것임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