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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아니하고 그 영혼을 음부의 권세에서 건지리이까...

교훈 안에 2018. 6. 6. 16:20

오늘은 사도행전 4장7절에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에서 "권세(權勢)"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권세" 에 관하여는 앞서 기재했던 글(2017년9월9일자)에서 살펴 본 적이 있었지만 우리 사람(인생)은 삶을 살아가면서 남들보다 우위(優位)에 있다고 느끼게 해주는 것들 즉 돈(재력,부동산,차)이나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 명예, 또 작게는 가정에서의 가부장적 위치나 지위 이러한 것을 통하여 자연적으로나 인위적으로 발생하는 권한과 힘(세력,능력)으로 아래의 낮은 위치에 처해 있어서 힘이 없고 취약한 다른 사람들을 "내 말이 곧 법이다." 는 식으로 그 권세를 가지고 누르려(억압,강압) 하고 때로 못마땅하고 언짢을 때에는 잘라버리고 꺾어버리기도 하니 그러나 모든 사람은 초동적인 인권(人權)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위아래, 상하, 수직관계는 있을 수 없으며 차별(로마서 10장12절)적으로 대할 수 있는 어떠한 권리(권한)나 자격은 있을 수 없으니 다만 하나(갈라디아서 3장28절) 즉 모두가 다 사람으로써 평등하며 그런즉 그 권세를 휘두를 이유(까닭)는 어느누구에게도 있어서는 안되니 빌리보서 2장6~8절에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하고 쓰고 있듯이 그리스도는 그 근본이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이지만 사람처럼 그러한 권세를 이용하고 사용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 곧 천국에서의 법에서는 맞지 않기 때문에 이를 감추시려고 오히려 가장 낮고 없고 취약하고 부족한 하찮고 보잘것 없는 육체의 모습 즉 사람의 모양으로 오셨으며 하지만 우리 사람은 그 외모로 보이는 모습으로 판단(비판)하기 때문에 그러한 모습은 딱 무시하고 멸시하고 업신여기고 함부로하기에 좋으니.....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께서는 열두 영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있는 권세(마태복음 26장53절)가 있었지만 화가 난다고,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자신의 뜻이나 마음과 생각대로 하려는 것은 그리스도의 형상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의 원대로(마태복음 26장42절), 뜻대로 되기를 고통과 고뇌와 애통의 눈물로써 하나님께 기도를 올렸으니 누가복음 12장4~5절에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하는 것처럼 하나님께는 사람들의 모든 일을 마친 최후에 있을 심판을 할 수 있는 더욱 큰 권세가 있었기 때문이며 이에서 그리스도이신 예수님 또한 제외된 것이 아니며 벗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니 다만 요한복음 10장18절에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그것이 무엇이 되었건 그리스도께서 버릴 수도, 다시 얻을 수도, 잘라버릴 수도, 꺾어버릴 수도 있지만 하나님의 계명은 목숨을 위하여 버리고 비우고 죽이기를..... 우리 또한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 붙은 자라면 그리스도로 옷 입으려 한다면 이러할 때에 하나님의 구원에 가까우며 구원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잡아 내셨으면 한다.   

그래서 로마서 13장3절에 "관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하시면서 8절에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하시며 10절에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하는 것처럼 우리는 제각기 자신이 있는 곳에서 엄마요 아빠요 형이며 누나이고 언니이고 오빠이며 선배이며 선임이라면 그 아래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관원이라 할 수 있으며 그 높은 위치는 하나님의 (율)법 앞에 평등하며 하나라는 것을 잊고서 자신의 뜻대로 마음대로 욕심대로 하기 좋은 위치이니 그러나 세상은 자신의 뜻대로 마음 먹은대로 욕심대로 되지 않는 것이 태반이기 때문에 그럴 때마다 미워하고 비방하고 훼방하고 사나워져서 다투고 함부로 하기를 서슴치 않는 악한 일을 하게 된다면 우리보다 더 높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며 우리의 본분을 망각하는 것이니 다만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것도 없어야 하며 사랑의 시작은 이러한 악한 일을 행하지 않는 것이며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려고 애쓰며 노력(훈련,연습)할 때에 비로소 행할 수 있게 되며 하나님께 칭찬이 있다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에베소서 2장2~3절에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 하고 쓰고 있듯이 세상의 풍속은 자신이 갖고 있는 여러 자연적으로 또는 인위적으로 발생한 높은 위치를 이용하고 자신보다 낮고 부족하고 취약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뜻대로 마음대로 욕심대로 칼자루를 휘두르고 싶어하며 이는 하나님의 권세 아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이 없는 세상적이고 정욕적이며 마귀적인 본질상 지노의 자녀로써 행하였던 것이니 이는 지나간 날로 족하며 이제는 그리스도도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이지만 동등하게 여기지 않으시고 없고 낮고 하찮고 보잘것 없는 모양으로 오셔서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마음으로 행하기 위하여 같이 사나워져서 다투고 함부로 하였던 것이 아니라 입술로 범죄할까 하여 잠잠히 묵묵히(묵언수행) 행하셨으니 이는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을 앞서서 본으로 보이신 것이며 그 길은 새롭게 열린 산 길로써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생명(부활)과 안식(구원)이 있으며 이는 우리로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시기(골로새서 1장13절) 위함이라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