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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네가 맹세를 멸시하여 언약을 배반하였은즉 내가 네 행한 대로 네게 행하리라...

교훈 안에 2018. 7. 2. 18:56

오늘은 이사야 53장3절에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에서 "멸시(蔑視)"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먼저 "멸시" 의미는 다른 사람을 아래로 보면서 깔보거나 하찮게 여기며 무시하고 업신여기는 것을 뜻하며 사람이 사람을 대하여 멸시할 이유와 권리는 그 어떤 것도 없지만 우리 사람(인생)은 상대편보다 잘 났다고 생각하거나 능력이 많다고 여기면서 상대편의 하는 일(문제,사건)이나 상황이 못 미덥고 답답하게 느끼게 되고 그러한 생각은 자기 자신의 뜻(방법,기준)대로 마음(관점,가치관)대로 하고 싶은 육체의 정욕(욕심)이 발동하게 되며 그러나 상대편이 자기 자신의 뜻대로 마음대로 움직여 주기를 바라는 것은 월권(越權)행위요 갑(甲)질로써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되지 않으면 불평하면서 미워하고 비방하면서 훼방하고 사나워져서 다투고 윽박지르면서 함부로하는 멸시를 행하게 되리니 이러한 모습(자세)은 첫 번에 오셨던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때에 유대인들(이스라엘 백성)이 예수를 대하여 마음에 안 들고 못마땅하다고 때리며 비방하고 침 밷고 멸시하던 그것과 같아서 우리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며 그런즉 우리의 이러한 잘못되고 궤휼하고 허물 많은 모습을 돌이켜서 고쳐 행하지 않는다면 이는 시간만 흘렀을 뿐, 공간만 바뀌었을 뿐 그 때나 지금이나 거기나 여기나 별반 다른 것이 없으니 우리에게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다시 오신다(임하신다)고 하신 약속(언약,예언)이 남아있기 때문이며 바꾸어 말해서 보이는 사람을 대하여 사랑(인애,자비,긍휼)과 온유와 관용과 배려와 양보를 행하지 못하면서 어찌 보이지 않는, 보지 못하는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사랑한다(요한일서 4장20절), 의지한다 말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그" 라 함은 잘 알고 계시듯이 모세의 율법과 시편의 글과 선지자의 글 곧 모든 성경(누가복음 24장27절,44절)에서 기록하고 있는 "그리스도이신 예수님" 이며 그러나 그 바로 앞 구절 2절에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하고 쓰고 있듯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라 할지라도 어렸을 때(갈라디아서 4장1~4절)에는 죄 있는 육신의 모습(로마서 8장3절)으로, 우리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사람의 모양(빌립보서 2장6~8절)으로 오셨기 때문에 어떠한 능력도 없이 마냥 연하디 연하여 약하였고 그져 매마른 우리 사람들과 일반으로 오셨기 때문에 그 모습에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리스도로서의 흠모할 만한 모양도 풍채도 기대할 수 없고 오히려 멸시(무시,업신여김)하기 딱 좋게 너무나도 평범하고 있는듯 없는듯 처해 있는 현실을 묵묵히 살아갈 뿐... 하지만 그 속사람, 내면(內面)은 부지런히, 열심히 하나님의 뜻 곧 최고한 (율)법, 첫 째되는 계명을 지켜 행하시기 위하여 걸림이 되는 모든 것들 즉 하나님의 뜻과 계명을 지켜 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기 자신의 뜻대로 마음대로 하고 싶은 욕심을 버리고 비워야 하리니 지금까지 우리 사람은 대대손손 그 부모는 그 자녀에게, 그 자녀는 또한 부모가 되어 그 자녀에게, 그 자녀는 또 부모가 되어 그 자녀에게 유전처럼 물려주었던 것이 사람의 계명 곧 자기자신의 유익과 이익을 좇아서 행하다가 이에 반하는 일(문제,사건,상황)이나 해(害)가 되면 잘라버리고 꺾어버리고 엎어뜨리기를 너무 쉽게 하고 자기 자신의 유익과 이익을 위하여 줄 세워주고 눈 감아주고 뒤 봐주는 관행이나 전관예우를 좋아했던 것이 부정할 수 없는 우리 사람의 모습이며 그래서 몸에 배어버린 그러한 것을 끊어내고 비워내기 위해서는 하루아침에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부단히 애쓰고 힘쓰는 노력(훈련,연습)이 필요하며 노력을 함에 있어서는 많는 고뇌와 고통과 눈물과 심적 갈등이 없을 수 없기 때문에 이를 "십자가의 고난" 이라 하는 것이며 고난을 통하여 못 박을 수 있으며 마침내 육체의 정욕과 못됐고 나쁘고 악한 죄에 대하여 죽을 수 있으리니 그런 연후에야 구속 곧 죄 사함이 있고 하나님의 생명(부활)에 이르는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을 잡아 내셨으면 한다.

그래서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는 명언도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은 간고와 질고를 많이 겪었기 때문에 그것이 얼마나 고달프고 고생스러운지를 누구보다 잘 알므로 자신을 앞세우고 내세우지 않게 되며 그러한 모습은 오늘 본문의 말씀의 뒷 구절 7절에서도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하고 기록하고 있듯이 입술로, 혀로 범죄치 않기 위하여 입에 재갈을 물려 선한 말도(시편39편1~2절) 내밷지 않는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며 또한 똑같이 되어서 불평하고 미워하고 비방하고 때리고 침밷고 사나워져서 다투고 멸시(무시,업신여김)하고 함부로하는 것은 똑같이 되어서 행악(시편37편1~8)에 치우칠 뿐이니 잠잠하여 묵묵히 하나님의 구원과 생명과 안식을 향하여 걷게 되리니 이렇듯 하나님을 향하여 걸어가신(베드로전서 3장21절) 그 길이 바로 "골고다 언덕" 이며 하지만 하나님의 뜻과 계명을 오해하고 와해하고 있었던 유대인들(이스라엘 백성) 입장에서 바라 본 그리스도의 모습은 오늘 본문의 말씀의 바로 뒷 구절 4절에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하는 것처럼 하나님께 징계와 징벌을 받을 것이 있어서 맞고 고난이 닥쳐왔다고 여기면서 이에 동참하여 미워하고 비방하고 침 밷고 때리고 멸시를 하였으니 설령 그러한 것이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과 계명을 지켜 행하여야 할 우리들 입장에서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러한 못됐고 나쁘고 악한 궤휼함과 패역함을 행하지 말아야 하지만 찌르고 멸시하는 강포를 행하였으니 어찌 하나님의 구원을 기대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며.....

중요한 것은 우리 또한 고쳐 행하지 않는다면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며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이러한 질고와 멸시와 찔림과 곤욕을 당하신 것은 전적으로 우리를 위함이니 다시 말해서 오늘 본문의 말씀의 뒷구절 5절에 "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하고 쓰고 있듯이 하나님을 믿으며 그리스도를 의지한다고 부르짖고 외치는 사람 중에 하나님의 구원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지만 구원은 그냥 믿는다고 의지낳다고 말로 외친다고 하여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노력 즉 불교에서는 "공덕(功德)" 이라고 말하는 "공력(고린도전서 3장11~15절)" 이 있어야 하며 하지만 우리 뜻대로 공을 들이고 노력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즉 그 최고한 법과 첫 째되는 계명을 얼마나 열심히, 부지런히 충성된 자로써 지켜 행하느냐에 따라 그 공력을 나타나며 그 공력대로 상과 벌이 있으리니 이를 앞서서 본보기로 보여 주신 것이 그리스도이시며 그 본과 자취는 하나님의 최고한 법과 첫 째되는 계명을 지켜 행하기 위하여 부득이 버리고 비워야 하는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갑질) 하고 싶은 육체의 정욕(욕심)이며 이를 버리고 비우고 죽여서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는 것처럼 비록 볼 품이 없고 좋은 모양과 풍채는 없지만 말이 없어져야 수많은 잘못과 허물과 실수와 죄악에서 자유(요한복음 8장32절)로워질 수 있으며 비로소 하나님(구원,생명,안식)을 찾아가는 길에 들어설 수 있으니 하지만 아직도 믿는다, 의지한다 하면서 그리스도께서 몸소 보이신 그 죽으심의 본을 좇아서 행하지 못하고 말로만, 입으로만, 혀로만 외치며 부르짖고만 있다면 그리스도를 찌르고 멸시하고 강포를 행하였던 그 때 그 시대 유대인들(이스라엘 백성)과 다를 것이 없는 하나님의 반대편 즉 이방인(고린도전서 10장20절)으로 가지(로마서 11장17~22절)에서 찍힘을 받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