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고하며 광풍에 요동하여 안위를 받지 못한 자여...(이사야 54장11절)
오늘은 이사야 54장11절에 "너 곤고하며 광풍에 요동하여 안위를 받지 못한 자여 보라 내가 화려한 채색으로 네 돌 사이에 더하며 청옥으로 네 기초를 쌓으며~ " 에서 "곤고(困苦)" 와 "안위(安慰)"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먼저 "곤고" 의 의미는 힘들고 고생스러운 것을 뜻하며 사람(인생)이 살아가다 보면 이런 어려움, 저런 곤란함을 겪으면서 고달프지 않을 수 없고 피곤하지 않을 수 없으며 때로는 곤고함에 우울해지고 외로운 마음에 눈물이 앞을 가리기도 하리니 하지만 시편 107편10~11절에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 하고 쓰고 있듯이 사람이 이러한 곤고함으로 슬퍼하며 아파하게 되는 것은 그 나아가는 길에 있어서 뚜렷한 무언가(소망)가 보이지 않고 긴가민가 가늠이 되지 않을 때에 그러하니 가는 길에 확신이 있고 자신감이 있다면 아무리 힘들고 어렵고 고달파도 콧노래까지는 아닐지라도 힘을 내어 씩씩하게 전진하려 할 것이라. 주께서 우리 사람(인생)에게 보이신 길은 선한 양심(베드로전서 3장21절)으로 바뀌고 변화될 때에 마치 앞을 못 보는 소경이 눈을 뜬 것과 같이 비로소 보이게 되며 곤고함이 눈 녹듯 사라지게 된다는 것을 염두에 두시길 바라며.....
또한 미가서 6장8~9절에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여호와께서 성읍을 향하여 외쳐 부르시나니 완전한 지혜는 주의 이름을 경외함이니라 너희는 매를 순히 받고 그것을 정하신 자를 순종할찌니라." 하는 것처럼 우리가 어떤 일(문제,사건,상황)을 추진하고 처리함에 있어서 나 자신의 어떤 유익(입장,처지,기분,관점,기준.... 등등등)에 의하여 치우지는 것이 아니라 이를 잠시 접어두고 공정하고 공평하게 판단하며 해결하려는 마음이 중요하며 이 모든 것은 인애롭고 자비로우며 긍휼한 즉 "사랑" 의 마음으로 하려할 때에 하나님과 겸손히 그 길을 행하는 자가 되며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가 되리니 경외함의 근본은 못됐고 나쁜 악함과 죄를 미워함(잠언서 8장13절)에 있기 때문이며 그러나 사람은 살아가는 삶이 현실이라 인애롭고 자비로우며 긍휼한 즉 "사랑" 의 마음으로 바라보며 해결하고 판단하기기 그리 쉽지 않고 못마땅함에 욱하여 함부로(무시,멸시,업신여김) 하기에 손과 발이 빨라서 먼저 나가기 때문에 닥쳐오는 곤고함의 원인이나 이유를 모른체 아파하고 슬퍼하고 고달파하는 곤고함이 있다는 것을 잡아 내셨으면 한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도 기록하고 있지만 사람에게 있는 이러한 곤고함이 광풍(狂風) 즉 살아가면서 닥치게 되는 여러 고비(곤경,곤란함)나 위기(사고,질병) 그리고 겪게 되는 여러가지 모진 풍파에 흔들리고 파장이 일게 하여 유유자적(悠悠自適)할 수 없게 만들고 의연할 수 없게 만들며 안위를 받지 못하게 하고 안위를 받더라도 오래가지 못하게 하니 하지만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으로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어떠한 마음의 모습(자세)으로 걸어가야 할지를 아주 명확하고 상세하게 기록하여 주신 메뉴얼(manual)로써 로마서 15장4~6절에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이제 인내와 안위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하는 것처럼 사람은 어리고 철이 없을 때에는 철없이 실수와 잘못과 죄를 범하기도 그러나 지나간 그 모든 것(성경의 역사)을 교훈과 거울과 경계로 삼아서 그와 같은 것(짓)을 두 번, 세 번, 두 번 또는 다시는 행하지 않는다면, 행하지 않으려 노력(훈련,연습)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로 영원무궁한 안위를 받게 하시며 더불어 하나님께 있는 생명(부활)과 안식과 구원에 관한 소망 또한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리니 이보다 더 든든하고도 감사한 일이 있을까? 하는 것이며 이는 앞서 그리스도께서 죄 있는 육신의 모습(자세)에 져서 파멸(패망,멸망)과 사망에 이르신 것이 아니라 비록 곤고함에 처해서 고뇌하고 애통해하며 눈물을 흘리셨지만 기도로써 아버지 하나님께 그 곤곤함을 아뢰었고 마침내 버리고 비우고 죽이심으로 이겨서 곤고함에서 벗어나 오히려 밀려드는, 닥쳐오는 광풍(마태복음 8장26~27절)에도 유유자적과 의연하심과 안위함을 얻으셨으니 메뉴얼대로 지켜 행하셨기 때문이요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 자신을 위하심이 아니라 그리스도에게 붙으려, 속하려, 옷 입으려 힘쓰고 애쓰는 우리 사람들을 위하여 본보기로 보이신 것이며 이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하심이니 하나님의 영광은 곧 우리들의 "구원" 이라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시편 23편4절에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하시면서 6절에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하고 쓰고 있듯이 삶에 대한 두려움이나 고달픔은 사람이라면 없을 수가 없고 그로 인한 어려움과 우울함은 나이와 상관없이 견디기 힘들고 적응이 안되는 해로움이며 그렇다고 남 탓하고 이것저것 핑계대며 못마땅해하고 언짢아하고 마음에 안 들어하면서 미워하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시기하고 사나워져서 다투며 비방하고 훼방하고 함부로하는 못됐고 나쁜 악함으로 한다면 그 이는 광풍에 여지없이 요동하여 쓰러지고 넘어지게 되며 곤고함에 무릎을 꿇어 안위를 받지 못하게 되리니 악한대로 악한 양심을 품지 말고 오직 선(善)으로 바꾸고 선한 양심으로 변화되어서 인애와 자비와 긍휼한 즉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랑(요한일서 4장16절)의 마음을 좇아 행하며 안위와 소망이 있는 하나님의 집에 영원히 거하게 되며 그 집(사람)에는 영원무궁한 생명과 안식과 구원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