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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는 선하시고 정직하시니 그러므로 그 도로 죄인을 교훈하시리로다...

교훈 안에 2018. 9. 19. 18:41

오늘은 이사야 54장13절에 "네 모든 자녀는 여호와의 교훈을 받을 것이니 네 자녀는 크게 평강할 것이며~ " 에서 "여호와의 교훈(敎訓)"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교훈" 에 관하여는 앞서 기재했던 글(2016년11월13일자,2014년9월9일자,14년3월18일자)에서 살펴 본 적이 있었지만 모든 교훈이 다 그러하지만 특별히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얻게 되는 "교훈" 은 스바냐 3장2절에 "그가 명령을 듣지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의뢰하지 아니하며 자기 하나님에게 가까이 나아가지 아니하였도다." 하시면서 7절에 "내가 이르기를 너는 오직 나를 경외하고 교훈을 받으라. 그리하면 내가 형벌을 내리기로 정하기는 하였거니와 너의 거처가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나 그들이 부지런히 그 모든 행위를 더럽게 하였느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첫 사람 아담 이후로 우리 사람(인생)은 하나님의 명령과 교훈과 그 뜻을 받기 보다는 보암직, 먹음직 즉 탐욕과 탐심에 이끌려서 하나님께서 보이신 생명의 길은 소홀히 하고 경홀히 여기면서 자꾸만 곁길로 발을 옮김으로 하나님의 노(怒)를 촉범(이사야 3장8절)하였으니 하지만 하나님를 경외함(잡언서 8장13절)으로 교훈을 받으면 세상에서 주는, 받는 교훈과는 다르게 그 사람에게 하나님께 있는 생명(요한일서 2장25절)으로 갚아주시며 그러한 사람과 거처(요한복음 14장13절)를 함께하여 주시리니... 하지만 어느 시대, 어느 세대를 막론하고 하나님께서 부지런히 선지자들(마태복음 23장37절)을 보내며 그 행위를 고치기를 알리며 전하셨지만 더욱더 행위(행실,행동)를 더럽히고 궤휼과 패역과 완악한 길을 갔으니 선한 양심으로 바뀌고 변화가 되지 않고서는 절대로 하나님을 찾아가는 길(베드로전서 3장21절)에 설 수 없지만 점점더 멀어지고 하나님과의 사이는 벌어져서 사람이 지금 가고있는 그 곳이 어디인지, 가는 길이 어디쯤인지 알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잡아 내셨으면 한다.

시편 78편1절에 "내 백성이여, 내 교훈을 들으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일찌어다." 하시면서 8절에 "그 열조 곧 완고하고 패역하여 그 마음이 정직하지 못하며 그 심령은 하나님께 충성치 아니한 세대와 같지 않게 하려 하심이로다." 하는 것처럼 지나간 모든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의 역사는 무엇이든지 우리에게 교훈(로마서 15장4절)으로 기록하여 주신 것으로써 하나님의 교훈을 좇지 않고 마음이 가는대로 미워하고 비방하고 때리고 침밷고 사나워져서 다투고 함부로하기를 서슴치 않는 못됐고 나쁜 죄와 악을 행하던 모든 세대와 같지 않게 하려 하심이 목적이지만 말로는 혀로는 입으로는 오직 하나님을 믿으며 그리스도를 의지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삶의 현장에서는, 현실에서는 말뿐 자신의 유익(기준,입장)과 이익(기분,처지)이 앞선 나머지 상대방의 어려움이나 상황을 굳이 살피며 헤아려 주기 싫어하며 이해해주지 못하고 오히려 몸과 마음과 눈을 높여서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욕심(갑질)을 따라 자신의 유익이나 이익을 가장 앞에 두고서 이를 내세워 행하였으니 이는 사람(인생)을 먼저 살피고 바라보며 좋은 길로 인도하고자 하시는 하나님 앞에 정직하지 못한 것으로써 지나간 열조들이 행하였던 완고하고 완악하고 패역하고 궤휼한, 못됐고 나쁘고 악한 꾀와 죄대로 행하였던 그 세대와 우리가 결코 다르다 말할 수 없으며 오히려 더욱 완고하고 패역(예레미야 3장8~11절)한 길에 치우쳐서 걸어가고 있으니 잠언서 1장25절에 "도리어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 27절에 "너희의 두려움이 광풍같이 임하겠고 너희의 재앙이 폭풍같이 이르겠고 너희에게 근심과 슬픔이 임하리니~ " 하고 쓰고 있듯이 우리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큰 두려움이요 재앙은 무엇일까? 불의의 사고가 되었건, 뜻하지 않은 질병이 되었건, 갑작스런 불행이 되었건 그것은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죽음 앞에 설 수 밖에 없다는 것이며 죽음(사망)은 결국 우리 사람으로 근심과 슬픔으로 내몰아 낭떠러지 앞에 서게 만드니 멸망과 패망과 파멸이 아닐 수 없으며 우리의 탐욕과 탐심과 욕심을 버리지 못한다면 이는 하나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할 수 밖에 없게 되며 받지 아니하는 것으로써 지금까지 모든 사람이 그러하였듯 두려움이 임하고 재앙이 이르게 된다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두려움이 광풍같이, 재앙이 폭풍같이 임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지혜)을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보이시고 가르치시며 전하여 주셨으니 그러나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 교훈의 본(로마서 6장16~18절)을 좇아서 순종하지 않으며 오히려 사나워져서 다투고 싸우고 서로가 서로에게 거치는 것(로마서 16장17절)들을 앞에 두고서 찌르고 때리고 비방하기를 거침이 없었던 유대인들의 모습(자세)을 우리가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본 바요 아는 바이며 중요한 것은 지금의 오늘날을 살고 있는 우리 또한 그 때 그 시대 그 세대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니 우리들은 과연 삶에서 현실에서 지극히 작은 자 즉 부족해 보이고 취약해 보이고 미련해 보이며 부족하여 불편하게 곤란하게 만드는 사람을 대하여, 사소한 어떤 일(문제,사건,상황)들에 대해서 나의 이익과 유익을 위하여 사나워져서 다투고 싸우고 미워하고 비방하고 훼방하고 몸과 마음과 눈을 높은 곳에 두고서 함부로(무시,멸시,업신여김)하지 않는가? 하는 것이니 지극히 작은 자(마태복음 25장40절)로 죄된 모습(로마서 8장3절)으로 오셨던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은 자신의 뜻대로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여 미워하고 비방하고 때리고 곤욕을 주며 사나워져서 다투고 함부로하기를 서슴치 않았던 유대인들을 대하여 똑같이 되어서 완악하고 패역한 것들을 행하였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교훈을 좇아서 행하기 위하여 입에 재갈을 먹이고 선한 말(시편 39편1~2절)도 발하지 않았으니 이것이 "십자가의 도(고린도전서 1장18절)" 이며 그로 말미암아 두려움과 재앙은 사라지고 하나님의 생명(부활)으로 나아가심으로 구원의 근원(히브리서 5장7~9절)이 되셨으며 이는 그리스도를 위하심이 아니라 평생을 두려움과 재앙 앞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우리들을 위하여 본보기로 보이신 기호요 표적이며 하나님께서 보이신 교훈을 그리스도께서 지켜 행하신 그리스도의 교훈이라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요한이서 1장9절에 "지내쳐 그리스도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마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이 사람이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리라." 하는 것처럼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하는 덕담도 있지만 지나치면 안하니만 못하니 그져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와 위치에서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십자가의 도(道) 즉 그 교훈의 길에 서서 버리고 비우고 죽이려 힘쓰고 애쓰고 노력(훈련,연습)할 때에 어느덧 하나님의 생명(부활) 안으로 들어가게 되며 하나님과 그리스께서 계시는 하늘의 예루살렘성(계시록 21장1~2절)이 우리에게 내려와 거처를 함께 함으로, 덧입는(고린도후서 5장1~2절) 안위와 소망 가운데 있게 하신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