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오늘은 이사야 55장11절에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에서 "나의 뜻", "나의 명" 즉 "하나님의 뜻" 과 "하나님의 명(命)"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 "나의 뜻", "나의 명" 하시는 것은 곧 하나님의 입에서 나가는 모든 말씀 즉 성경(聖經)에서 기록하고 있는 모든 하나님의 말씀들을 의미하며 이는 그 바로 앞 구절 10절에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다시 그리로 가지 않고 토지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 하며 열매가 맺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 하는 것처럼 마치 농부가 밭에 씨를 뿌리면 하늘에서 내리는 빛과 비와 눈이 땅(마음)을 적시어 싹이 나게 하며 후엔 열매를 맺게 하여 다시 종자와 양식을 제공하는 이 당연한 이치(理致)와 섭리(攝理)처럼 하나님께서는 농부(요한복음 15장1절)가 되시어 사람의 마음 밭(땅,흙)에 씨(누가복음 8장11절)를 뿌리시고 자라나게 할 수 있도록 양분이 되는 빛(고린도후서 4장6절)과 비(신명기 32장2절)를 내려 적시어 주셨으며 이러한 모든 과정의 최종 목적은 우리로 그것에 합당한 열매(로마서 7장4절)를 맺게 하고자 하심이며 우리들은 믿고 의지하는 자로써 마땅히 열매를 맺어야 할 의무(열심)와 사명(충성)과 책임이 있으니 이 열매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 즉 하나님의 뜻과 명(命)을 모르는 자들의 생명의 양식을 제공해줘야 하는... 어길 수 없는 자연의 이치와 섭리처럼 이는 반드시 이루시며 형통할 것을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약속(예언,언약)하신 것임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래서 "나의 뜻" 즉 "하나님의 뜻" 은 데살로니가전서 4장2~6절에 "우리가 주 예수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무슨 명령으로 준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좇지 말고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 하고 쓰고 있듯이 여기에서 "음란", "색욕" 이라 쓰시는 것은 하나님을 남편(예레미야 3장14절)으로, 신랑(누가복음 5장34~35절)으로, 우리들은 그러한 남편과 신랑을 맞이할 신부와 아내(계시록 19장7~8절)에 빗대어 말씀하실 때에 도출되는 어휘이니 다시 말해서 "음란을 버리라." 는 것은, "색욕을 좇지 말라." 는 것은 남편 곧 하나님의 뜻인 그 계명과 법대로 "서로 사랑하라." ,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가복음 12장31~33절)", "법 곧 율법의 완성은 사랑(로마서 13장10절)",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께 제사(예배)와 제물(헌금)을 드리는 것보다 낫다." 하시는 직설적으로 표현하여 하시는 말씀 그리고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은 이런저런 역사적 이야기들을 많이 기록하고 있지만 그러한 이야기 속에 간접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사랑으로 행하기" 를 말씀하여 기록하고 있으니 그러나 우리들은 삶에서, 현실에서 못마땅하고 마음에 안 들어 언짢아지면 반사적으로 불평과 불만과 분노와 미움과 비방과 훼방과 사나움과 다툼과 함부로 함으로 일관되게 서슴치 않고 행하여 왔으니 이는 말로만, 입으로만, 혀로만 하나님을 부르짖으며 그리스도를 내세울뿐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무엇이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니 남편이신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그 계명과 법을 배제하고서 경홀(소홀,만홀)히 여겨 밖에 것들을 행하고 있음을 "음란" 이라, "색욕" 이라 표현하여 기록하신 것이며 우리가 말과는 다르게 하나님이 뜻과 명을 행함에 있어서는 못됐고 나쁘고 악한 죄로 행하고 있음을 질책하시는 것으로써 이는 곧장 이웃 즉 형제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으로 나타나게 되며 "사랑하라." 하신 말씀과는 대립각을 세우면서 대적하는 입장에 놓이게 되니 음란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하여 색욕을 좇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약속(예언,언약)하신 생명(부활)과 안식과 구원... 이 모든 것들이 결국엔 하나님의 계명과 법을 지켜 행하는 자들에게 이루시리니 진정한 "이스라엘" 은 하나님의 계명과 법을 지켜 행함으로 죄 없이(로마서 11장26~27절)함 즉 죄 사함의 세례를 받은 자가 되기 때문이라는 것을 잡아 내셨으면 한다.
"나의 명" 즉 "하나님의 명령" 또한 마태복음 22장37~40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하는 것처럼 쉽게 말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여 그를 믿으며 그의 보내신 자 그리스도를 의지한다고 외치며 부르짖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에 걸맞는 "행동 강령" 을 지켜 행하라는 의미로써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면서 눈에 보이는 형제나 이웃 곧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지 못한다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니 결국엔 "네 이웃을 네 몸과 사랑하라." 하신 뜻과 동일한 의미로써 지켜 행하라는 것이 곧 "하나님의 명(命)" 이시며 말로는 누가 못하고 말을 앞세우는 것은 누가 못하겠는가? 모든 내밷는 말과 말로 하였던 모든 것의 결정체요 완성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굳이 말이 필요 없어도 행동(행실,행위)으로 옮겨서 행하는 행함이니 그 행함이 모든 것을 다 말해주기 때문이며 하나님의 뜻과 명을 지켜 행할 줄 아는 자라야 비로소 하나님을 아는 자(골로새서 1장10절)라 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갈라디아서 1장4절에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 " 하고 쓰고 있듯이 죄가 없으신(요한일서 3장5절) 그리스도를 죄 있는(로마서 8장3절), 죄의 종의 형체(빌립보서 2장7~8절)를 가진 우리와 똑같은 모습의 사람으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것은 죄와 악에 벗어날 수 있는 방법(지혜)을 본(本)으로 보여주시기 위함이며 벗어나지 못한다면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생명(부활)과 안식과 구원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 되어 지금까지 겪어오고 그래왔듯 파멸(패망,멸망)과 사망에 복종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며 그 보이신 본(本)은 누가 마음에 안 들어 못마땅해지고 언짢아져서 여과없이 분노와 불평과 불만을 표출하며 미움과 비방(흉보고 욕함)과 훼방(잘못되기 바람)과 사나움과 다툼과 함부로(무시,멸시,업신여김) 하였던 유대인들 곧 그들의 모습은 시간만 흘렀을 뿐 공간만 바뀌었을 뿐 그 때의 그들과 지금의 우리들과 별반 다른 것이 없음을 인지하고 인식할 수 있어야 하며 그들과 똑같이 되어 그리스도께서 싸우고 때리고 침밷고 함부로 하였던 것이 아니라 입에 재갈을 먹여 선한 말조차도 내밷지 않으시고 묵묵히 잠잠히 계셨으며 다만 내면의 자신 즉 마음에서 올라오는 수많는 세상적이고 정욕적이고 마귀적인 것들과 싸워서 이기기 위하여 이는 고뇌와 애통과 심적 갈등 곧 고난을 겪으셨으니 고난이 없이 결코 죄와 악을 못 박을 수 없기 때문이며 죄와 악에 대하여 죽을 수 있어야 비로소 하나님의 생명(부활)의 빛으로 나아가게 되며 마침내 잔잔한 호수와 같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안식으로 들어가게 되며 구원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몸소 실천하여 보이신 것이니 이는 형제, 다른 사람 즉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지 못한다면 절대로 행할 수 없는 경지이며 결국 하나님의 뜻과 명(命)은 "사랑" 으로 행할 수 있을 때에 지켜낼 수 있는 것이며 이는 자연스런 자연의 이치나 섭리처럼 반드시 이루어질, 형통할 하나님의 약속이며 약속을 지킨 자들에게 내리시는 선물(은총)은 생명과 안식과 구원이라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