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사도행전 6장3절)
오늘은 사도행전 6장3절에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 에서 "지혜(智慧)"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지혜" 에 관하여는 앞서 기재했던 글(2017년3월9일자,2015년9월20일자,15년1월1일자,2013년11월17일자)에서 살펴 본 적이 있었지만 이 세상을 그래도, 그나마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의 이치나 상황에 맞게 상식적으로 생각할 줄 알고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 곧 지혜가 반드시 있어야 하며 때로는 그 지혜가 아주 가까운 앞날이나 바로 앞의 일을 짐작하게 하며 가늠할 수 있는 선견지명(先見之明)이 되어 안 좋은 상황에서 조금은 어렵지 않게 벗어날 수 있게 하고 그러한 처지를 미리 예방하게 하여 조금은 덜 고생하도록 도와주기도 하니 하지만 이러한 지혜는 이 세상을 좀더 요령있게 살아가기 위한 딱 그 정도만 허락된 "세상의 지혜" 라 할 수 있으며 그렇다고 하여 이 세상 지혜가 하루 아침에 얻어지고 알게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많은 고생과 아픔과 눈물과 시행착오와 같은 경험을 통하여 시간(세월)이 많이 흐른 후, 값진 인생공부 후에 터득하게 되리니.....
그러나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에서 전하고자 알리고자 하시는 "지혜" 는 이러한 세상 지혜와는 사뭇 달라서 디모데후서 3장15절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그리스도를 의지함으로 그 믿음의 한 소망으로써 "구원" 받을 것을 마음에 품고 있으며 그로 말미암아 마침내 도달하게 될 "구원" 의 종착역은 그리스도께서 구원의 근원(히브리서 5장7~9절)으로써 본(本)을 보이셨던 것처럼 하나님께 있는 영원무궁한 생명의 영역에 들어가서 쉼(안식)을 얻게 되는 차원에 들어가는 것이며 그런즉 "부활" 이 없이는 진정한, 참된 구원에 이르렀다고 말할 수는 없으며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본(本)은 우리 사람과 똑같은 죄있는, 죄의 종의 형체의 모습으로 오셔서 이를 버리고 비우기 위하여 많은 심적 갈등(고뇌,고통,번뇌,애통) 곧 고난을 겪으셨으며 고난은 사람으로 파멸(패망,멸망)과 사망(죽음)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게 만든 죄와 악에서 마침내 벗어나게 하며 이러한 과정을 "죄 사함", 또는 우리가 구원에 이르기 위하여 반드시 거처야 할 "세례" 라고도 하며 그리스도의 흔적(자취)에서 찾는다면 고난을 통한 "못 박히심" 이며 많은 고난 끝에 비로소 죄에 대하여 악에 대하여 못 박아서 죽을 수 있어야 다시 사는 부활에 참예할 수 있게 되리니 이와같이 그리스도께도 그러하였듯 우리로 마음은 원이로되(로마서 7장21~24절) 자꾸만 못됐고 나쁘고 악한 죄를 범하게 만드는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좌지우지 하고 싶은 육체의 정욕(욕심)을 버리고 비우지 못한다면 죄와 악에서 벗어날 수도 빠져나올 수도 없기 때문에 말로, 입으로, 혀로 제아무리 "주 예수를 믿어 구원에 이르렀다." 고 부르짖으며 외쳐도 이는 허공에 울리는 메아리일 뿐 "믿음" 은 그 믿음을 있게 한 온전한 지혜 즉 계명(마가복음 12장31절)과 법(로마서 13장10절)을 진솔하고 진지하고 신실하게 잘 "행함" 에 있으며 그리스도께서 본을 보이신 것처럼 죽기까지 힘쓰고 애쓰고 노력(훈련,연습)을 기울이는 고난으로 육체의 정욕(갈라디아서 5장24절)을 못 박아 죄에 대하여, 악에 대하여 죽어야 그 다음을 말씀의 약속(언약,예언)을 우리가 기약할 수 있으며 이 세상을, 이 세상만을 어찌어찌 잘 살아가기 위한 "세상 지혜" 가 아니라 구원에 이르는 "하늘 위의 지혜" 를 하나님께서 선물(에베소서 2장1~8절)로 주신다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래서 로마서 16장17~19절에 "너희 교훈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의 배만 섬기나니 공교하고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하고 쓰고 있듯이 여기에서 "교훈" 이라 하심은 그리스도께서 4복음서를 통하여 유대인들에게 전하시며 가르치신 하늘 위로부터 오신(요한복음 3장31~32절) 지혜의 말씀을 뜻하시며 참된 교훈이요 지혜는 말로만, 입으로만, 혀로만 전하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전하고 가르치는 그 전도자(선생,스승,목자)가 가장 앞서서 모범이 되고 본이 되도록 지켜 행할 수 있어야 전함을 받고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에게 신뢰(믿음)와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미워하고 비방하고 훼방하고 때리고 침 밷는 핍박과 곤욕(모욕,굴욕)을 치르게 하며 함부로(무시,멸시,업신여김)하는 못됐고 나쁘고 악한 죄를 범할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그들과 똑같이 되어서 싸우고 다투고 미워하고 함부로하였던 것이 아니라 이러한 세상적 지혜에 대하여는 미련한 자가 되기 위하여, 입으로 범죄치 않으려(시편 39편1~2절) 재갈을 물리고 잠잠하였으며 다만 속사람의 끊임없이 이는 육체의 정욕을 제하여 버리려 싸우는 그 길(골고다)만 묵묵히 걸었을 뿐... 이것이 그리스도께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을 통하여 얻으신 "그리스도의 교훈" 이며 그런즉 어떻게 하면 악한 마음을 변하여 선한 양심으로 행할까? 하여 지혜를 모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교훈을 거스려 아직도 분쟁하고 다투며 이러한 악한 데 지혜로운 꾀를 내며 자신의 배(유익,이익,욕심)를 위하여 보이는 앞에서는 겸손과 친절과 관용과 화평으로 하다가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비방하고 훼방하고 사납게 다투면서 함부로하는 아첨과 아부로 행한다면 2000년 전 유대인들과 달라진 것이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
그러므로 야고보서 3장8절에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하시면서 11절에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뇨." 하시며 13절에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찌니라." 하는 것처럼 사람은 자신이 살아오면서 터득하고 얻어진 자신만의 철학(신념,이념)과 성향(기준,관점) 즉 마음과 생각속에 있는 삶의 지혜들을 은연중에,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있는 것들이 혀를 통하여 말로, 행동(행실,행위)으로 나오기 마련이며 그런 의미에서 사람의 입(혀,말)은 끊임없이 새어나오는 지혜의 샘이라 할 수 있지만 그 지혜가 참된 지혜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배(유익,이익,욕심)만을 위하여 다른 사람(남,타인,상대방)의 입장이나 처지나 상황은 헤아려 살펴 이해하려 하지 않고 안중에도 없이 행여 조금이라도 불편해지거나 곤란해지면 미움과 비방의 말들을 쏟아내고 마음에 안 들거나 못마땅해지면 사나워져서 다투고 함부로하는 말들을 퍼붓기도 하니 마치 손바닥 뒤집듯, 동전 앞뒷면과 같이 한 입으로 선한 말도 하고 악하고 독한 말도 내밷는다면 그 사람은 세상적이고 정욕적이며 마귀적인(14~16절) 땅에 속한 땅의 지혜대로 행하는 자이며 하지만 악한 마음을 변하여 어찌하든지 선한 양심으로 바꾸어 화평과 관용과 긍휼과 온유함으로 행하여 노력(훈련,연습)하다면 그 사람은 하늘 위로부터 오는 하늘의 지혜(17~18절)대로 행하려 애쓰고 노력(훈련,연습)하는 자로써 그 끝(로마서 9장27~28절)과 마침은 하나님께 있는 영원무궁한 생명과 안식과 구원에 있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