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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사도행전 6장7절)

교훈 안에 2018. 12. 19. 17:06

오늘은 사도행전 6장7절에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에서 "복종(服從)"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여기에서 먼저 짚어야 할 것은 "복종" 에 관하여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에는 좀 강요적이고 강제적인 의미의 "복종" 으로 기록하고 있는 곳도 있지만 자의(자발)적이고 능동적인 의미의 "순종(順從)" 으로 표현하여 기록하고 있는 말씀이 훨씬 더 많으며 하지만 여러 곳, 어느 부분에서 "복종" 으로 표현하여 기록하고 있는 것은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우리 사람에게 스스로, 자의적으로, 자발적으로 행하기를, 선택하기를 바라고 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마음이기 때문에 "복종" 을 통하여 강요하며 강제적으로 말씀을 좇아가기를, 그 계명과 법대로 행하기를 담은 강압적인 말씀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여 그를 믿고 그의 보내신 자 그리스도를 의지한다고 외치며 부르짖는 사람이라면 혀로만 입으로만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말 뿐인것이 아니라 좀더 사명감이나 충성심이나 책임감을 마음에 품고서 당연히, 마땅히 행하여야 할, 선택하여야 할 "의무" 의 차원으로 받아들이기를 말하고자 알리고자 하여 "복종" 이라는 말로 여러 부분에서 표현하여 기록하신 것임을 염두에 두시길 바라며.....

오늘 본문의 말씀에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해짐으로 말미암아 허다하게 많은 사람(제자,제사장 무리)들이 복종하고 있는 이 말씀의 "도(道)" 는... 잘 알고 계시듯이 그리스도이신 예수께서 우리 사람과 똑같은 죄 있는 사람(로마서8장3절)의 모양으로 오셔서, 죄의 종의 형체(빌립보서 2장7~8절)로 오셔서 마음은 하나님의 법과 계명대로 좇아서 행하고자 하는 것이 원이로되(로마서 7장19~23절) 육신 곧 육체의 여러 정욕(욕심,욕구,욕망,탐욕)이 자꾸만 그 소욕(갈라디아서 5장17절)대로 행하고자 하며 이 둘이 싸워서 이기는 것은 늘 육체의 소욕이었던 어린 아이(육체적,정신적) 시절(갈라디아서 4장1~5절)을 지나 장성한 시점 즉 이제는 육체의 소욕에 져서 자신의 못됐고 나쁘고 악한 꾀와 죄대로 행하는,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좌지우지 하고 싶은 육체의 정욕(욕심)대로 행하던 방탕에 자기 자신을 방임(에베소서 4장19절)하지 않고 이를 다스리며 조절하고 제어할 수 있는 방법(지혜)을 알게(깨닫게) 되었고 물론 이 방법(지혜)을 알아 지켜 행하기까지는 많은 고뇌와 번뇌와 심적 갈등 곧 (십자가의)고난이 무수히 많았으며 오직 이러한 불평하고 미워하고 비방하고 훼방하고 사나워져서 다투고 함부로하고 무례히 행하는 육체의 소욕, 육체의 정욕(욕심)이 하나님의 법과 계명을 온전히 지켜 행하지 못하도록 방해를 하며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가로 막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일깨워) 더는 육체의 소욕과 정욕이 마음속에 자리잡지 못하도록 비우고 버리고 죽이는 노력(훈련,연습) 즉 그 십자가(육체의 정욕,소욕)를 못 박으시려 부단히 애쓰며 힘썼으며 그 노력은 마침내 죄에 대하여, 악에 대하여 악한 양심(꾀)에 대하여 죽을 수 있게 되었고 죽으심이 없이는 절대로 다시 사는 "부활" 에 참예할 수 없음을 4복음서를 통하여 전하고 알리시고 가르치시며 몸소 "행하심" 으로 실천하여 우리들에게 본을 보이신 그 교훈의 말씀이 바로 "도(道)" 즉 "십자가의 도" 라는 것을 잡아 내셨으면 한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1장18절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시면서 23~24절에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하시며 29절에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는 것처럼 이 말씀을 바꾸어 말하자면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에 기꺼이 나아가시면서까지 우리들에게 본(本)으로 보이신 십자가의 고난과 못 박히심과 죽으심 곧 "십자가의 도" 를 믿는다면 그 믿음에 대한 증거 즉 그 본과 자취(베드로전서 2장21절)대로 좇아서 지켜 행하는 것이 부르심은 입은 자들이요 복종하는 자이며 그러할 때에 우리 또한 그리스도에게 붙은 자, 속한 자, 옷 입은 자가 되어 그리스도께서 가신 그 길 곧 하나님의 생명(부활)과 안식과 구원에 참예하게 되겠지만 말만 앞세우고 입으로만, 혀로만 하고 그 가르침대로 지켜 행하지 못한다면 제아무리 하나님을 믿고 그리스도를 의지한다고 외치며 부르짖어도 그 사람 앞에는 멸망(패망,파멸)과 사망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며 삶 속에서, 생활속에서, 현실 속에서 그 "십자가의 도" 의 가르침의 취지(사상)와 이론(논리)을 좇아서 행하여 선한 양심으로 새롭게 바뀌고 변화가 된다면 그 사람은 그 "도(道)" 에 복종하는 자로써 그것이 복(福)이 되어 하나님의 능력이신 생명과 안식과 구원이 임하리니 이는 그 어떤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 내세울 것이 없도록,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며 우리 또한 그 때 그 시대 그 세대 사람(유대인)들과 같이 가르침을 받고 전하심(전도)과 알리심(나팔)을 들었어도 경홀(만홀,소홀)이 여겨 마음에 이는 육체의 정욕(욕심)과 그 소욕대로 미우면 미워하고 비방하며, 마음에 안 들면 불평하고 훼방하며, 못마땅하면 사나워져서 다투며, 언짢아지면 함부로하고 무례히 행하기를 서슴치 않는다면 시간만 흘렀을 뿐, 공간만 바뀌었을 뿐 그 때나 지금이나 거기나 여기나 별반 다르지 않아서 그 "도(道)" 미련스럽게 여기며 거리낌으로 여기는 자의 편에 서게 된다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고린도후서 10장3~5절에 "우리가 육체에 있어 행하나 육체대로 싸우지 아니하노니~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복종케 하니~ " 하고 쓰고 있듯이 우리가 비록 마음속이 육체의 정욕(욕심)에 있어서 그 소욕대로 행하여 왔지만 이제는 육체가 원하는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좌지우지 하고 싶은 욕심을 좇아서 살 것이 아니요 못됐고 나쁘고 악한 꾀와 꼬이고 부정적이고 사나운 죄의 소욕대로 서로 서로를 대하여 싸우지 말며 사람이 사람을 대하여 다투지 말아야 할 것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 높아져 있는, 하나님을 향하여 높이고자 하는 높은 마음(교만,오만,자만,경만)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며 이를 무너뜨리고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道)" 에 복종케 하고자 함이니 마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을 아심으로 하나님께로 부여받은 능력이나 권세(마태복음 26장53절)의 칼자루를 쥐고서 마음대로 흔드신 것이 아니라 다만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그리스도의 마음(빌립보서 2장3~5절)" 으로 변화되고 바뀌사 마음속에 높아져 있는 모든 것들을 낮추시기를 죽기까지 복종하심으로 부활에 참예신 것을 본으로 보이신 것과 같이 우리 또한 변화되고 바뀌어야 복종하는 것이요 부활에 참예하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