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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데반이~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사도행전 6장8절)

교훈 안에 2018. 12. 24. 16:44

오늘은 사도행전 6장8절에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표적을 민간에 행하니~ " 에서 "기사(奇事)" 와 "표적(表迹)"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표적" 에 관하여는 앞서 기재했던 글(20189월27일자,18년6월29일자,18년년3월19일자,2016년1월1일자,2015년10월30일자)에서 살펴 본 적이 있었지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여 그를 믿으며 그의 보내신 자 그리스도를 의지한다고 부르짖으며 외치는 사람이라면 "기사(奇事)" 즉 기이한 일로 그리스도이신 예수께서 마태복음 15장30~31절에 "큰 무리가 절뚝발이와 불구자와 소경과 벙어리와 기타 여럿을 데리고 와서 예수의 발 앞에 두매 고쳐 주시니 벙어리가 말하고 불구자가 건전하고 절뚝발이가 걸으며 소경이 보는 것을 무리가 보고 기이히 여겨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하는 것처럼 여러 각색 병든 자들을 그리스도께서 고치시며 일으켜 세우신 것을 우리가 지금까지 전파하여 알리며 왔고 전하여(전도) 왔으며 또한 우리의 삶속에서, 생활속에서 이러한 기적같은 일들을 여러 간증 중에 하나로서 많이 말하고 외쳐 왔었지만 여기에서 이제는 바로 잡아야 할 것은 사람(인생)의 이러저러한 각색 병을 고쳐서 낫게 할 수 있는 곳은 "병원" 이며 또한 몸의 어느 부분의 불구가 된 것은 의족(義足)이나 의수(義手) 또는 휠체어나 흰지팡이(시각장애인 지팡이)와 같은 기구를 사용하는 것이 맞는 것이니.....

다시 말해서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께서 우리 사람의 고치고자, 낫게하고자 하시는 것은 마음과 생각 곧 정신 세계의 각색 병든 것들을 고치고자 하시는 것이며 우리의 영혼의 불구가 된 부분을 낫게 하고자 하여 육신(신체,몸)의 각색 병든 것과 육신의 불구가 된 것에 빗대어, 비유하여 표현하시고 기록하신 것이니 마태복음 18장4~5절에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하시면서 8~9절에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쉽게 말해서 정말 기적처럼, 마술처럼 육신의 불치병이나 잘 낫기 어려운 병 또는 신체의 불구가 되었던 것을 주의 이름으로 고침을 받고 낫게 되었다고 할지라도 그 영혼이, 마음과 생각이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바라시는대로 새롭게 변화되지 못하고 바뀌지 못한다면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하는 것이니 순서는 먼저 우리의 영혼이 잘 되어야 우리의 육신의 도모하는 것 또한 의미가 있다는 것이며 우리 사람(인생)으로 각색 병들게 하였던 것은 오직 못됐고 나쁘고 악한 꾀와 죄를 행하게 만드는 "마음" 이요 꼬이고 부정적이고 사납게 변하게 만드는 "마음의 눈과 귀" 이기 때문이니 이러한 우리의 마음과 생각 즉 정신 신계, 우리의 영혼을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낮아지고 그 있는 곳(위치,자리)이 어디든 그 마음을 말석(末席)에 두어서 낮출 줄 알아야 각색 병에서 나은 자요 불구된 것에서 고침을 받은 자이며 하지만 어느누구도 사람은 쉽게 바뀌기 어렵고 새롭게 변화되기에는 자기 고집과 자존심이 강철보다 강하고 세므로 그 마음과 생각을 새롭게 바꿀 수 있고 변화될 수 있는 그것이 가장 큰 "기사(奇事)" 라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래서 골로새서 3장5~10절에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하는 것처럼 이 세상에 욕심(탐욕,욕구,욕망)이 없는 사람이 없고 마음속에 여러 욕심을 품고있는 한 사나운 심성 또한 온전히 버리고 비울 수 없기에 분과 악의와 입의 부끄러운 비방(흉보고 욕함)의 말과 상대방을 곤욕(모욕,굴욕)스럽게 하는 말들을 내밷게 되니 이러한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는 우상 숭배요 하나님 외에 다른 신(神)을 섬기는 것이니 하나님 외에 다른 신(神)은 오직 하나님보다 더 믿고 의지하는 자기 자신의 욕심과 사나운 심성이라는 것을 잡아 내시길 바라며.....

이러한 구습(舊習)을 좇는 옛사람의 모습(자세)을 벗어버리고 그러한 행위(행실,행동)를 비워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그래왔듯 계속하여 남 탓을 하고 다른 사람을 핑계대며 미워하고 불평하고 비방하고 훼방하고 사나워져서 다투고 함부로하고 무례히 행하기를 서슴치 않는 못됐고 나쁘고 악한 꾀와 죄를 행하게 될 것이며 이러한 우리의 영혼의 불구자의 모습으로, 각색 병든 모양으로는 하나님께 있는 생명과 안식과 구원으로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으며 그래서 이러한 것들을 버리고 비우고 죽이는 모습을 본보기로 보이시려고 그리스도께서 죄있는 사람의 모양(로마서 8장3절), 죄의 종의 형체(빌립보서 2장7~8절)로 오셨으며 오셔서 비우고 버릴 때의 겪게 되는 많은 심적 갈등 곧 고난을 받으신 것이며 고난이 없이는 절대로 죄와 악 곧 십자가를 못 박을 수 없고 죽을 수 없기 때문에 죽기까지 하시면서 우리에게 전하며 알리시고 가르치신 것이며 이것이 "그리스도의 교훈" 이며 마침내 하나님의 생명으로 들어갈 수 있는 "부활" 에 참예하신 것이니 그런즉 이러한 모든 것에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부활" 이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에게 나타내고자 하신 "기사(奇事)" 에 대한, "기사(奇事)" 를 통한 "표적(表迹)" 이며 그리스도를 본 받아 그 자취를 좇아서 이를 행할 줄 아는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기사와 표적을 보이는 것이며 알리고 전하는 것임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누가복음 11장29~30절에 "무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됨과 같이 인자도 이 세대에 그러하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그리스도께서 많은 기사와 표적을 4복음서를 통하여 보이셨지만 그 속 이면(裏面)에 흐르고 있는, 통하고 있는 맥락은, 보일 표적은 오직 "요나의 표적" 밖에 없으며 그리고 요나의 시대의 그 세대가 인자가 임하신 그 세대와 같고 또한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다시 오신다(임하신다)고 하신 오늘날 세대와도 그러하니 이는 시간만 바뀌었을 뿐, 공간만 바뀌었을 뿐 그 때나 지금이나 거기나 여기나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인생)에게 요구하시며 원하시는 것이 항상, 언제나 동일한(베드로후서 3장7절) 상황이라는 것을 알리고자 전하고자 하심이니 요나가 물고기 배속에 있을 때에 일깨우고 돌이켜서 고쳐 행하였던 것과 같이 진정한 "회개" 는 그 마음과 생각이 이전의 악독하고 궤휼하고 패역하게 행하였던 죄와 악을 버리고 새롭게 변화되고 바뀌어서 주의 계명(마가복음 12장31절)과 법(로마서13장10절)대로 행하는 것이며 죄와 악을 버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죄와악을 행하게 만드는 근본적인 원인인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하고자 하는 육체의 욕심을 비워야 하며 이것이 우리가 견뎌내야 할 "고난" 이며 고난이 없이는 죄와 악을 못박을 수 있으며 새롭게 마음이 변화되고 바뀌는 "기사" 와 "표적" 은 없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