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을 삼아 사백 년 동안을 괴롭게 하리라...(사도행전 7장6절)
오늘은 사도행전 7장6절에 "하나님이 또 이같이 말씀하시되 그 씨가 다른 땅에 나그네 되리니 그 땅 사람이 종을 삼아 사백 년 동안을 괴롭게 하리라 하시고~ " 에서 "종(從)"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종" 에 관하여는 앞서 기재했던 글 중에서 살펴 본(2017년11월6일자,17년2월20일자,2016년10월11일자) 적이 있었지만 "종" 이라 함은 잘 알고 계시듯이 자유가 없이 남에게 얽매여서 부림을 당하는 사람을 의미하며 비슷한 말로는 "노예" 가 있으며.....
그러한 뜻에 빗대어 우리 사람(인생)들에게 알리고자, 전하고자 하시는 "종" 의 모습은 요한복음 8장32~34절에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되리라. 저희가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하고 쓰고 있듯이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에서의 "죄" 의 범위는 실형을 받아서 구치소나 교도소에 구속, 수감하는 수준이 아니라 그러한 차원은 국가적으로 이미 제도(법률,규칙)가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며 그런즉 도의적인 즉 우리가 사소하게, 가책없이 너무도 쉽게, 아무렇지 않게 행동으로 옮기고 있는 것들로써 상대방(남,타인,다른 사람)의 못마땅하고 마음에 안 드는 것에 언짢아져서 미워하고 비방(흉보고 욕함)하고 훼방(잘못되기를 바람,소심한 복수)하고 사나워져서 다투고 함부로(무시,멸시,업신여김)하거나 무례히 행하기를 서슴치 않는 것이 하나님 앞에 "죄" 이며 이러한 것은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좌지우지 하고 싶은 육체의 욕심(정욕)에서 비롯되며 그런즉 마음에 숨은 속사람의 끊임없는 욕심을 반드시 다스려서 제어하고 조절할 줄 알아야 하리니 그렇지 않다면 "주의 종" 이 아니라 "죄의 종" 으로써 바꾸어 말하자면 아직도 자유케 되지 못하였고 온전한 진리 가운데 있지 못함을 증명하는 것이며 이 요한복음의 말씀은 이제는 죽어 장사되어 이 세상에 없으며 썩음을 당한 그 때, 그 시대, 그 세대의 유대인(이스라엘)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거울과 경계(고린도전서 10장11절)로, 우리의 교훈(로마서 15장4절)으로 기록하여 주신 것이니 남을 나보다 낫게 여겨서(빌립보서 2장3~5절) 그 입장이나 처지나 상황를 헤아려 배려하거나 양보하지 못하고 자꾸만 분란과 갈등을 야기시키고 화평(화목,화기애애)하도록 노력(훈련,연습)하지 못한다면 입으로만, 혀로만, 말로만 주의 종이요, 하나님의 그리스도의 충성된 종이라 외칠 뿐 한 치도 진리로 자유함을 얻지 못한 죄의 종으로써 하나님의 집(요한복음 8장35절) 곧 천국에 거하지 못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래서 베드로후서 2장19절에 "저희에게 자유를
준다 하여도 자기는 멸망의 종들이니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이니라" 하는 것처럼 이러한 못됐고 나쁘고 악한 꾀와 죄를 다스리지(창세기 4장7절) 못해서 미우면 미워하고 싫으면 분내고 불평하며 마음에 안 들면 비방하고 못마땅하면 사나워져서 다투고 언짢으면 함부로하기를 서슴치 않는다면 하나님 앞에 멸망의 가증한 것(행동)이요 자유를 준다 하여도 결국엔 죄에게 져서 죄에게 이리 저리 끌려다니고, 이랬다 저랬다, 갈팡질팡, 오락가락 손바닥 뒤집듯 그 마음을 뒤집어 자신 뿐만아니라 다른 사람(남,상대방,타인)까지도 멸망과 패망과 사망으로 인도하고 이끄는 멸망의 종으로 나타나게 되리니 로마서 6장9~10절에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라.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 17~18절에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아직도 우리는 온전히 죄의 종에서 벗어났다고, 해방되었다고 말할 수 없으니 여전히, 때때로, 순간순간 못됐고 나쁘고 악한 꾀와 죄에게 얽매이고 져서 이를 행하고 있기 때문이며 다만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그 교훈의 본 즉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영(성령)으로 다시 살으심으로 다시 죽지 않으시는 완전한 생명으로 나아가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 의 자취를 좇아서(빌립보서 3장12절) 지켜 행하는 중에 있으며 그리스도께서 앞서서 본을 보이신 것은 우리로 죄의 종에서 벗어나 해방되어 하나님께 있는 완전한 생명 가운데로 나아가게 하시려고 몸소 실천하여 보이신 것이며 죄의 종에서 벗어나 의로, 진리로 자유케 되어야 비로소 참된 하나님의 아들(히브리서 2장10절)들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잡아 내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갈라디아서 4장7~8절에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 노릇 하였더니..." 하는 것처럼 이 세상에 선(善)이 무엇인지, 의(義)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알고도 이러저한 이유로, 이 핑계 저 핑계로 행하지 못하는 그것이 죄(갈라디아서 4장17절)이며 죄의 종이기 때문이며 진정으로 안다는 것은 탁상이론처럼 입으로만, 혀로만, 말로만 되내이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할 수 있어야 죄에게 해방되어 의로, 진리로 자유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으리니 죄의 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언제까지나 종으로써 아들이 될 수 없으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가나안 곧 생명과 안식과 구원에 대한 유업을 이을 수 없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