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은 능히 안정치 못하고 진흙과 더러운 것을 늘 솟쳐내는 요동하는 바다...
오늘은 이사야 57장20절에 "오직 악인은 능히 안정치 못하고 그 물이 진흙과 더러운 것을 늘 솟쳐내는 요동하는 바다와 같으니라." 에서 "악인(惡人)"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악인" 에 관하여는 앞서 기재했던 글(2018년10월31일자)에서 살펴 본 적이 있었지만... 이 세상에 자기 자신더러 "나는 악인이야!", "나는 악한 사람이야!" 라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으리라. 그러나 오늘 본문의 말씀의 앞 구절 17절에 "그의 탐심의 죄악을 인하여 내가 노하여 그를 쳤으며 또 내 얼굴을 가리우고 노하였으나 그가 오히려 패역하여 자기 마음의 길로 행하도다." 하고 쓰고 있듯이 또한 이 세상에 한 가닥 욕심, 탐심이 없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러한 욕심이, 탐심이 사람(인생)으로 상대방(남,타인,다른 사람)에게 헤아려 살피는 배려심으로 행할 수 없게 만들고 그런즉 서로가 서로에게 이해하여 관용하는 양보로 할 수 없게 만들어서 곱고 좋고 너그러운 마음을 품을 수 없게 만드니 자꾸만 악하게, 괴팍스럽게, 옹졸하게, 인색하게, 함부로, 무례히 행하게 하여 미워하고 비방하게 되며 훼방하고 사나워져서 다투는 것을 아무런 가책없이 거침없이, 서슴치 않게 되니 이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 패역이요 죄(罪)요 악(惡)이며 이 모든 것이 마음으로 탐심, 욕심이 원하는 길을 좇아 행하였기 때문이니.....
호세아서 10장2절에 "저희가 두 마음을 품었으니 이제 죄를 받을 것이라.~ " 하시면서 13절에 "너희는 악을 밭갈아 죄를 거두고 거짓 열매를 먹었나니 이는 네가 네 길과 네 용사의 많음을 의뢰하였음이라." 하는 것처럼 사람(인생)을 농부에 빗대어 표현하자면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에 씨(누가복음 8장11절)를 심기는 하나님의 좋은 것 곧 거룩하고도 좋은 영(요한복음 6장63절)으로 심어 주셨고 그러한 심령(스가랴서 12장1절)으로 지으시고 만들어주셨지만 우리 사람이 욕심과 탐심에 의해 변질되어 악을 밭갈아 이득을 취하였고 미워하고 비방하고 훼방하고 다투기를 쉬지 않는 죄를 거두었으며 말로는 입으로는 혀로는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경외하노라, 믿노라 외치며 부르짖으면서 정작 삶 속에서, 현실 속에서는 온유하고 긍휼하며 관용으로, 배려로, 사랑으로 행하기보다는 못됐고 나쁘고 악한 꾀를 내며 죄를 범하는 두 마음으로 행하며 거짓된 모습(자세)을 보였으니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길과 용사의 많음을 의뢰한 두 마음으로 품은 것이며 두 마음을 품은 여자처럼 간음(행음,음행)으로 행한 것이요 하나님 앞에 진실되지 못하니 거짓증거이며 이렇듯 십계명에 걸리지 않는 것이 없으니 그 죄에 대한 벌을 받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며.....
그러나 에스겔서 18장20절에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찌라.~ " 하시면서 23절에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어찌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쓰고 있듯이 우리의 육신(신체,몸)은 영(靈)과 혼(魂)을 담고 있는 그릇이요 집으로써 하나님의 영원무궁한 차원의 시간(세월)과 생명에 비하면 길어야 100년으로써 이 100세 인생은 생명의 축에도 들지 못하는 찰나의 시간이요 시한부의 생명이며 이는 우리 사람의 끊임없은 욕심과 탐심으로 인하여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음으로 말미암아 그 집은 당연히 폐가가 되어 무너지고 썩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 참된 논리이니 하지만 이는 우리 사람(인생) 스스로가 자초한 것이지 절대로, 결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것이며 오히려 그 악한 길에서 그 용사(욕심,탐심) 많은 것을 더욱 의뢰하고 믿던 것에서 떠나 돌이켜 고쳐 행하기를 바라고 원하시니 27절에 "만일 악인이 그 행한 악을 떠나 법과 의를 행하면 그 영혼을 보전하리라." 하는 것처럼 의인은, 선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음(로마서 3장10~15절)으로 하여 어느 때, 어느 시대, 어느 세대를 막론하고 우리 사람(인생)은 죽어 장사된 바 되어 썩음을 당하였으니 그래서 이미 앞서서 죄있는 모양, 죄의 종의 형체, 그리고 그러한 악(惡)에서 어떻게 하든지, 어찌하든지 벗어나고 떠나서 하나님의 법과 의를 행하려 죽기까지 하시면서 본(本)을 보이시므로 그 영혼을 보전하여 구원의 근원(히브리서 5장7~9절)이 되시고 하나님의 영원무궁한 차원으로 생명으로 들어가기 위한 관문인 "부활" 에 참예하신 사례를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본 바요 아는 바이며 또한 이를 믿을 수 있는 것이 참된 "믿음" 이며 믿는다면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본과 자취(베드로전서 2장21절)를 좇아서 행할 수 있어야 그 사람은 참으로 부분적이고 초보적인 율법에서 벗어나 온전하고 장성한 데(히브리서 6장2절)로 나아간 자라 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이사야서 55장7절에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하고 쓰고 있듯이 우리 사람은 한 번 마음먹은 억한 심정이나 원망이나 노여움은 풀기가 쉽지않고 바로 응징을 하거나 보복(복수)을 해야 마음이 시원하여지고 직성이 풀리지만 하나님은 끊임없이 우리 사람으로 고치기를, 돌이키기를 선지자들을 통하여 인내를 가지시고 외쳐오시기를 6000년(성경의 역사) 동안 하셨고 인류가 생긴 이래로 생각하자면 그보다 훨씬 더 오래 참으셨으니 결코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는 불가능한 용서(관용,용납)이며 하나님께서도 이렇듯 용서하고 사랑하시는데 그러한 하나님을 믿는 우리 사람이 서로가 서로를 대하여, 사람이 사람을 대하여 온유와 긍휼과 관용과 배려와 양보와 사랑으로 하지 못한다면 과연 이러한 우리의 모습(자세)을 "의롭고 선한 사람" 이라 말해야 할까? 아니면 "못됐고 나쁜 악인" 이라 표현해야 맞을까? 만물의 영장(靈長)으로서의 불명예와 오명을 씻어서 깨끗케 하지 못한다면 500년, 1000년을 사는 나무 그리고 몇 백년을 살아가는 거북이와 같은 피조물(로마서 8장19~22절)들의 고대하고 기다리는 탄식과 고통을 우리 사람의 죄와 악으로 치닫게 하는 욕심, 탐심과 맞바꾼 "참으로 비겁하고 졸렬한 인간" 이라고 어딘가에는 기록되어질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