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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이사야 58장6절)

교훈 안에 2019. 3. 20. 17:20

오늘은 이사야 58장6절에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에서 "멍에"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먼저 "멍에" 에 관하여는 앞서 기재했던 글(2015년10월3일자,15년7월12일자,15년1월31일자)에서 살펴 본 적이 있었지만.....

사람은 저마다 처해있는 환경이나 시대적으로 주어졌던 배경에 의해 모양과 정도에 차이는 있을지언정 짓눌러 압박해오는 삶의 무게 즉 "멍에" 는 누구에게나 있으며 그것은 돈(재력)이 많고 적고, 학력이 높고 낮고, 나이가 많고 적고, 삶의 경험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그 나름의 압박해오는, 힘든 멍에들을 안고서 때로는 지쳐서 쓰러지기도 하며 때로는 그 멍에로 괴로워하고 슬퍼하기도 하며 삶을 다할 때까지, 삶이 끝나고서야 비로소 내려놓게 되고 마침내 벗어나게 되니... 여기에서 한 가지 짚어야 할 중요한 것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짊어지게 되는 수많은 멍에들은 전적으로 자신을 위한 즉 자기자신의 삶을 얼마나 행복하고 편안하게, 얼마나 더 풍요롭고 즐겁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소위 인생을 성공으로 이끌고자 하는 욕구(욕망)에서, 자신의 유익과 이익을 챙기기 위한 과정에서 짊어지게 되는 "멍에" 들이며 하지만 잘 알고 계시듯이 사람(인생)의 욕심은 채워도 채워도 끝이 없고 품에 안고 넣어도 더욱 모으려고 하는 본능으로 말미암아 그 짊어지게 되는 "멍에" 는 고생스럽고 고달프며 외로울 수 밖에 없는 어쩌면 이미 짜여진 시나리오(각본)와 같은 것으로써 "수많은 멍에와 번뇌를 없애는 길" 은 "오직 욕심을 버리는 길" 이라는 것을 어느 순간 알게되고 깨닫게 되어도 이제는 몸에 배어버리고 습관처럼, 버릇처럼 멈추지 못하고 끝없이 질주만 하는 전차처럼 생의 마지막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는 것을 우리는 슬픈 눈과 마음으로 보고 있으니.....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에서 알리고자 전하고자 하시는 "멍에" 는 자기자신의 유익과 이익을 위하여 짊어지게 된, 자신의 욕심을 위하여 구속되고 억압되어 있는 그러한 "멍에" 가 아니라 그것에 빗대어서 하나님의 뜻 곧 그 계명과 법을 지켜 행하려 함에 있어서 가로막고 있는 우리 사람의 죄된 모양, 죄의 종의 형체로 말미암아 로마서 7장21~24절에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하는 것처럼 자꾸만 곤고해지는 마음의 무게를 의미하니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창세기) 우리 사람에게 전하여 주신 소식(요한일서 3장11절) 곧 그 계명(마가복음12장31절)과 법(로마서 13장10절)을 지켜 행하기 위해서는 이미 몸과 마음에 배어있고 길들여져 있던... 못마땅하면 상대방 미워하고 비방하며 마음에 안 들면 훼방하고 사나워져서 다투며 언짢아지면 함부로하고 무례히 행하기를 서슴치 않던 못됐고 나쁘고 악한 꾀와 죄를 버리고 비우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며 거기에서 밀려오는 여러 심적 갈등과 고난 즉 그 십자가를 "멍에" 라 하는 것이니람은 어느누구나 뜻대로 마음대로 좌지우지 수족 부리듯이 하고 싶어하는 욕심(정욕)이 있으며 하지만 이 세상이, 상대방이 어찌 마음대로, 마음 먹은대로 되겠는가? 거기에서 밀려오게 되는 여러 분노와 원망과 미움과 사나운 심성은 다스리지 못하고 조절하지 못하고 제어하지 못한다면 못됐고 나쁘고 악학 꾀를 내게되고 죄를 범하게 되리니 그러나 하나님의 계명과 법은 이러한 얽매이고 구속되어 억압받고 있는 죄와 악의 멍에서 벗어나야만이 지켜 행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서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도 쓰고 있듯이 다른 사람의 멍에도 끌러줄 수 있고 꺾어줄 수도 있지만 누가복음 12장51절에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케 하려 함이로라." 하는 것처럼 평화와 화평과 화목한 것을 원하지만 자꾸만 밀려오는 죄와 악이 우리의 마음을 짓눌러서 하나님의 계명과 법을 지켜 행하지 못하게 만들며 거기에서 밀려드는 자괴감이나 곤고함은 고스란히 십자가와 멍에로 다가온다는 것을 잡아 내셨으면 한다.

그래서 마태복음 11장29~30절에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고 쓰고 있듯이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보다 앞서서 죄된 모양(로마서 8장3절), 죄의 종의 형체(빌립보서 2장3~5절)로 오셔서 하나님의 뜻대로(누가복음 22장42절), 계명대로 하려할 때에 자꾸만 튀어나오는 죄와 악으로 인하여 고뇌와 애통과 심적 갈등 곧 고난이 있었으며 그 고난의 십자가의 멍에로 말미암아 곤고해질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으니 하지만 고난과 멍에는 하나님께 있는 온유(야고보서 3장17~18절)와 겸손(빌립보서 2장3~5절)으로 하지 않고서는 결코 끊어낼 수 없으며 그 길을 앞서서 보이심으로 우리 또한 그 길을 좇아오게 하셨으며 구원의 근원(히브리서 5장7~9절)이 되심으로 우리에게 하나님의 생명과 안식과 구원의 길을 열어주였으니 이것이 저마다, 사람마다 마음을 짓누루고 있는 십자가의 멍에의 짐을 벗어버릴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지혜)이기 때문에, 이 길이 아니고선 가벼워지지 않기 때문에 "내게 배우라." 하신 것이며 그러할 때에 성령의 열매(갈라디아서 5장22~23절), 신의 성품(베으로후서 1장5~7절)으로 바뀌고 변화되어 멍에를 벗어버릴 수 있다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갈라디아서 5장1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하는 것처럼 우리가 자꾸만 죄에게 져서, 악에게 져서 꼬이고 부정적이고 사나운 심성으로 행하면 우리는 계속하여 죄의 종(베드로후서 2장19절)에 있으므로 자유(요한복음 8장32절)케 될 수 없으며 마음을 짓누르는 짐과 멍에로 곤고하게 되리니 그리스도께서 죄의 종에서, 악의 종에서 이기심(요한복음 16장33절)으로 하나님의 영광의 자유(로마서 8장17~21절)에 이르셨으니 이는 그리스도를 위하심이 아니라 죄와 악의 멍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서 짊어지고 있는 우리들로 자유케 하려고 하심이며 그러기 위해서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것은 마음에 불일듯 이는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좌지우지 하고 싶어하는 욕심(갈라디아서 5장24절)을 버리고 비워야 하며 이를 버리고 비우려고 애쓰고 힘쓰신 것이 그리스도의 "고난" 과 "못 박히심" 이며 이로써 멍에를 벗고 "부활" 로 나아가셨으니 우리들로 그 길로 나아오게 하려 하심이라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