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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에서 우리 조상들에게 증거의 장막이 있었으니...(사도행전 7장44절)

교훈 안에 2019. 3. 27. 17:45

오늘은 사도행전 7장44절에 "광야에서 우리 조상들에게 증거의 장막이 있었으니 이것은 모세에게 말씀하신 이가 명하사 저가 본 그 식대로 만들게 하신 것이라." 에서 장막(帳幕)"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장막" 에 관하여는 앞서 기재했던 글(2018년8월8일자,2015년9월1일자)에서 살펴 본 적이 있었지만 "장막" 은 쉽게 말해서 "하나님을 모시는 곳" 즉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 을 뜻하며 이 장막에서 우리 사람들은 하나님을 만나서 우리의 죄와 악을 씻기 위하여 제사와 예물을 드리게 되며 이 "장막" 을 오늘 본문의 말씀의 앞 구절 38절에서는 "광야 교회" 라 표현하여 기록하고 있으며 실제로 오늘날에는 "교회,성당,성전.... 등등등" 으로 불리우고 있으며 43절에 "몰록의 장막과 신 레판의 별" 은 "하늘의 군대(42절)" 로서 하나님께 있는 천사 곧 성령(聖靈)들을 "천천만만(계시록 5장11절)" 이라 하고 대적관계에 있는 하늘의 군대를 "이만만(계시록 9장16절)" 이라 기록하고 있으니.....

"장막" 은 출애굽기에서 "회막", "초막, 성막" 이라 기록하고 있으며 히브리서(9장1~5절)에서는 "성소(예비 장막)" 와 "지성소(증거 장막)" 로 기록하시면서 예비 장막에서는 제사장이 매일, 증거 장막(히브리서 9장6~7절)에서는 대제사장이 일 년에 일 차씩 하나님께 제사와 예물을 드렸으니 중요한 것은 히브리서 8장5절에 "저희가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가라사대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좇아 지으라 하셨느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이 말씀은 출애굽기(25장8~9절)에 기록하고 있는 말씀을 인용하신 것으로써 "장막" 곧 "교회,성당,성전,예배당... 등등등" 을 통하여 우리 사람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禮)는 하늘에 있는 참 형상(실물)에 대한 모형과 그림자 즉 표면적이고 지극히 피상적인, 부분적이고 초보적인 것으로 이에 의지하여 드리는 제사(예배)와 예물(헌금)이 그 섬기는 자를 양심상(히브리서 9장9~10절)으로 온전케 할 수 없나니 쉽게 말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섬기는 궁극적인 목적은 마음에 숨은 속사람 즉 마음과 생각에 있는 못됐고 나쁘고 악한 죄를 씻어 깨끗케, 정결케하려 함인데 경건하고 거룩한 모양과 예(禮)의 형식을 갖추어서 먹고 마시며(성찬식) 겉사람의 몸(세례식)을 씻고 닦는다고 하여 그 죄가 속하고 사하여질까? 하는 것이니 이러한 것은 "육체의 예법" 에 불과하지 본질적인 것은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래서 사도행전 7장47~50절에 "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뇨.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함과 같으니라." 하는 것처럼 이 말씀은 이사야서(66장1~2절)를 인용하신 말씀으로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짓게 하신 "장막" 곧 "교회,성전,성당" 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건물, 집으로써 하나님은 영(靈)이시기 때문에 어떤 특정한 장소나 공간에만 계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숨쉬는 공기처럼 만유, 만물 어디에나 계시며 특별히 먼저는 그 모든 만물의 영장(靈長)인 사람을 집(고린도전서 3장9절)으로, 건물로, 성전(에베소서 2장21절)으로, 장막(고린도후서 5장1~2절)으로 삼아서 거처를 함께 하고자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하지만 지금의 이 죄있는 모양, 죄의 종의 형체를 갖고서는 하나님의 온전히 장막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실절적인, 현실적인 노력 즉 사람이 사람을,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고 비방하고 훼방하고 사나워져서 다투고 함부로하고 무례히 행하기를 서슴치 않는 못됐고 나쁘고 악한 죄를 행하게 만드는 육체의 정욕(갈라디아서 5장24절) 곧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좌지우지 하고 싶어하는 욕심(욕구,욕망)을 버리고 비워서 깨끗케, 정결케하여 그 죄있는 모양, 죄의 종이 형체를 제하여 버려야만이 비로소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참 장막, 함께하시는 거처(요한복음 14장23절)가 되리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앞서서 본을 보이신, 우리 사람도 그리 행하기를 바라시고 본보기를 보이신 "십자가의 길" 이시며 버리고 비움에 있어서는 많은 고뇌와 애통과

심적 갈등 곧 고난이 따르겠지만 고난으로 말미암아 죄와 악을 못박아 버리며 고난이 없이는 죄와 악에 대하여 죽을 수 없으므로 버리고 비우고 죽여야 다시 사는 "부활" 즉 하나님의 생명과 안식과 구원을 얻게 되리니 지금까지의 그 어떤 영광보다도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영광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히

브리서 9장24절에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오직 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 하시면서 26절에 "~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이미 사람의 손으로 지은 장막(교회)에는 율법의 의문(儀文)을 좇아서 제사(예배)와 예물(헌금)을 드리는 제사장(히브리서 8장4절)이 있기 때문에 굳이 그리스도께서 필요치 않음이며 하지만 첫 언약이 무흠(히브리서 8장절)하였다면... 다시 말해서 처음에 하신 약속 곧 모세의 율법을 통하여 드리는 제사와 예물은 우리의 죄를 없이하여 깨끗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제사와 예물을 드릴 때마다 죄를 생각나게 되고 죄에 대한 끊임없는 용서(관용)만 바라는 꼴이 되기 때문에 우리를 온전한 데로 인도하지 못하며 완전한 데로 이끌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참 장막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를 없이하는 방법(지혜)을, 실질적인 죄에 대한 해결 방법을 알려주시고 몸소 실천하여 보여 주셨으니 이는 우리 사람 또한 하나님의 장막으로서 그와같이 행하게 하시려고 앞서서 본을 보이신 것이며 그런즉 둘째 것 곧 새언약을 요구하신 것은 마음과 생각에 하나님의 계명과 법을 새기고 기록(히브리서 8장10절)하여 그 새기고 기록한 것들을 지켜 행하는 것이며 이것이 하나님의 장막이 되는 자격 조건이며 그러할 때 하나님께서 다시는 우리의 죄를 생각지 않으시리니(히브리서 8장12~13절) 흠이 있는 것은 개혁할 때가 이르면 사라지고 없어질 낡은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