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이 길을 밟는 자는 평강을 알지 못하느니라...(이사야 59장8절)
오늘은 이사야 59장8절에 "그들은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며 그들의 행하는 곳에는 공의가 없으며 굽은 길을 스스로 만드나니 무릇 이 길을 밟는 자는 평강을 알지 못하느니라." 에서 "평강(平康)"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욥기서 3장25절에 "나의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나의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평강도 없고 안온도 없고 안식도 없고 고난만 임하였구나." 하는 것처럼 이 세상에는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삶을, 인생을 살아가면서 책 한, 두 권은 써도 될 정도의 사연이 없는 사람이 없고 또한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하늘이 무너져 내리고 땅이 꺼지는 듯한 나름의 갖은 고생과 고초를 겪지 않고 살아 온 사람도 없으며 그런 중에 잠깐, 잠깐으로 밖에 찾아오지 않는 평강이나 안온(安穩)이나 안식이라 할지라도 삶의 큰 활력소가 되기도 하니 하지만 이러한 고난과 곤고함은 사람으로 그릇 행하였던(시편 119편67절) 것에서 많은 것들을 생각(전도서 7장14절)하게 하며 돌이켜서 고쳐 행하도록 만들어서 더욱 어른스러워지고 더욱 철이 들게 하며 더욱 초연해지고 의연해져서 다시금 우리 사람으로 평강의 길을 찾게 만들기도 하기 때문에 고난 당한 것이 오히려 유익(시편 119편71절)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이사야 48장3~4절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옛적에 장래사를 고하였고 내 입에서 내어 보였고 내가 홀연히 그 일을 행하여 이루었느니라. 내가 알거니와 너는 완악하며 네 목의 힘줄은 무쇠요 네 이마는 놋이라." 하시면서 18절에 "슬프다 네가 나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였도다. 만일 들었더면 네 평강이 강과 같았겠고 네 의가 바다 물결 같았을 것이며~ " 하고 쓰고 있듯이 우리가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들을 믿으며 의지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께서 옛적부터, 처음(이사야 46장10절)부터, 몇 천 년저부터 먼 훗날에 있을 일들을 미리 알리셨으며 그 알리신대로 참으로 모세와 같은... 참 형상의 선지자(사도행전 3장22~25절) 그리스도께서 오셨으며 오셔서 지금의 우리 사람(인생)으로 파멸(패망,멸망)케 하고 사망케 하는 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하늘의 지혜)을 전하여 주셨으며 그 전하신, 가르치신 것들을 고스란히 몸소 행하심으로 실천하여 본보기를 보이셨으니 그 모든 장래사의 가장 중심에는, 본질은 처음부터(요한일서 3장10~11절), 옛적부터 고하신 사람을 대하여, 서로를 대하여 구별(야고보서 2장1~5절)없이, 차별없이(로마서 10장12절) "사랑하라." 하신 말씀이며 하지만 우리 사람의 목의 힘줄은 무쇠요 이마는 놋과 같이 변하여 완악한 마음으로 못마땅함에 미워하고 비방하며 마음에 안드는 것에 훼방하고 사나워져서 다툼으로 하며 언짢은 것에 함부로하고 무례히 행하기를 서슴치 않는 못됐고 나쁘고 악한 꾀와 죄를 범하였으니 그로 말미암아 평강과 안온과 안식보다는 그 앞길에 평생 고난과 고초와 곤고함으로 결국 파멸과 사망에 이르렀으며 이러한 불행 앞에서 감사와 기쁨으로 하기보다는 더욱더 저주와 훼방을 일삼은 악화일로를 걷게 된 것임을 잡아 내셨으면 한다. 그래서 에스겔서 7장20절에 "그들이 그 화려한 장식으로 인하여 교만을 품었고 또 그것으로 가증한 우상과 미운 물건을 지었은즉 내가 그것으로 그들에게 오예물이 되게 하여~ " 25절에 "패망이 이르리니 그들이 평강을 구하여도 없을 것이라." 하는 것처럼 사람의 끊임없는 성공과 욕심(욕망)의 충족에 대한 갈망은 재력과 학력과 권력과 명예와 같은 화려한 장식으로 포장하게 만들었고 사실 차 떼고 포 떼고 보면 나약하고 부족하며 어리석고 우매하기는 어느 누구를 막록하고 다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누가 누구를 대하여 억하고 악한 심정을 품으며 그러한 감정으로 미워하고 비방하고 훼방하고 함부로 할 이유와 자격은 아무도 없지만 높아져 버린 마음의 자리와 눈과 귀와 입이 서로가 서로를, 사람이 사람을 못됐고 나쁘고 악한 것으로 공격(다툼,싸움,테러,전쟁)하며 스스로 파멸(패망,멸망,)과 사망의 길을 자초하였으니 이것이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마음에 품은 사람의 오예물이요 이러한 가증한 우상과 미운 물건으로 마음을 채웠으며 그로 말미암아 평화와 평강이 없었으며 안온과 안식이 없었으니 로마서 2장9~10절에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며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라." 하는 것처럼 모든 죄와 악을 행하게 되는 근본적인 원인은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사랑" 으로 행할 수 없었기 때문이며 하나님께로 지어지고 만들어지기를 "사랑" 으로 행할 때에 모든 기쁨과 감사와 행복과 평강과 안식이 찾아오는데 그렇지 못함으로 인하여 항상 환난과 곤고와 불행과 불안, 초조기 있게 되었으니 모든 "선(善)" 의 기준과 시작은 얼마나 "사랑(고린도전서 13장1~7절)" 으로 행할 수 있는가?, 행하느냐에 있으며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고 사랑하는,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겸손과 친절과 온유와 관용과 배려와 양보로써 행하는 것은 "사랑" 이라 말하지 않고 "사람이 당연히, 마땅히 할 일" 이라 표현하는 것이며 이것으로 하나님 앞에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으며 할 수 없을 때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다른 사람,타인,상대방)의 처지와 입장을 헤아리고 살필 줄 알아서 못됐고 나쁘고 악한 꾀와 죄로 행하지 않을 수 있게 될 때에 비로소 진정한 평강과 안온과 안식이 우리에게 임하며 이는 믿는 자, 안 믿고 못 믿는 자 상관 없이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적용되는 부분이라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그러므로 히브리서 7장1~2절에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그 이름을 번역한즉 첫째 의의 왕이요 또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하시면서 16절에 "그는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을 좇지 아니하고 오직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 된 것이니~ " 25절에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 하고 쓰고 있듯이 "멜기세덱" 의 그 속 뜻을 해석하고 번역하자면 의의 왕 곧 평강의 왕이니 다시 말해서 의(義)에 있어서는, 평강에 있어서는 따라올 자, 좇아올 자가 없이 단연 독보적으로써 모든 "의로움" 은 공평과 공의와 공정으로 행할 때에 출현되며 "의(義)" 가 함께 할 때에 "평강" 또한 함께 임하는 것은 당연한 공식임을 멜기세덱 곧 그리스도께서 몸소 행하심으로 실천하여 보이신 것이 "십자가의 도(道)" 이며 다시 말해서 육체,육신은 끊임없이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욕심을 좇아가며 그 욕심으로 말미암아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길 수 없게 되며 그런즉 사랑으로 행할 수 없음으로 말미암 미워하고 비방하고 훼방하고 사나워져서 다투고 함부로하기 를 서슴치 않는 죄와 악을 행하게 되기 때문에 이를 제하여 버리고 비우는 것이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는 것이며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입으로, 혀로, 말로 외치고 부르짖었지만 행실은 못마땅함에, 마음에 안 듦에, 언짢음에 미워하고 비방하고 때리고 침밷고 함부로하기를 안 믿고 못 믿는 사람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지만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무궁한 생명의 능력이 있는 그 계명과 법을 좇아서 행하기 위하여 입을 금하여 악한 말을 내밷지 않으려, 범죄치 않으려 잠잠하셨으며 몸을 금하여 악한 행실을 행하지 않으며, 범죄치 않으려 묵묵히 그 길만 바라보고 걸으셨으니 그것이 아니라면 그들과 똑같이 되어서 그 있는 힘(권위,권세)으로 더욱 큰소리고 싸우고 미워하고 비방하고 함부로 하였을 것이며 묵묵히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시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