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오늘은 시도행전 7장56절에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 에서 "하나님 우편"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인자(人子)" 곧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 에 서신 것, 계시다는 것은 히브리서 12장2~3절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하고 쓰고 있듯이 우리가 "하나님" 을 막연히 추상할 때에 거대한 모습의 어떤 신적(神的)인 존재로 생각하기 쉽지만 "하나님" 은 곧 영원무궁한 차원의 생명 그 자체이시며 그 생명 즉 하나님과 한 몸(고린도전서 15장44절), 하나가 되는 것이 온전한 "일심동체(一心同體)" 로써 그러한 생명이 있는, 생명의 하나님께로 나아가서 한 몸,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오직 우리 사람(인생)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태복음 19장19절)." 하신, "원수를 사랑하라(누가복음 6장35절)." 하신 처음(창세기)부터 전해 들은(요한일서 3장11절), 명하신 말씀의 계명을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지켜 행하여야 하리니 이것이 진정 장성한 의미의, 온전한 뜻의 "순교(殉敎)" 이며 "원수(怨讐)" 라고 하는 것이 어디 멀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외나무" 즉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후퇴도 전진도 할 수 없게 하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 곧 식구(마태복음 10장36절)이며 또한 "원수" 는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상대방)의 알고도 모르고도 행하는 여러 죄와 허물, 잘못이나 과오이기 때문에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는 옛말처럼 그렇기 때문에 "서로 사랑하라." 하신 것이며 "사랑(고린도전서 13장)" 은 그 기본 원칙이 상대방을 대하여 오래 참고 온유로 하며 교만하지 않아서 무례히 행치 않으며 자기의 유익과 이익보다는 상대방이 유익하도록 배려와 양보로서 하며 성내지 않고 악하게 받지 않는 것이니 그러나 사랑할 수 없기 때문에 미워하는 것이고 비방하는 것이고 훼방하는 것이고 함부로하는 것이기 때문이며 사랑함에 있어서 내 사람, 내 식구라고 하여 예외로 하며 열외시키고서 다른 사람들의 보이는 앞에서, 보여지는 곳에는 백 번, 천 번 사랑으로 한다고, 구제한다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외식(外飾)이요 거짓말이며 그져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하고 사랑도, 뭣도, 아무것도 아니니.....
하지만 사람이 어디 이렇게 행하기가 쉬운 일인가? 그리스도께서 이 쉽지 않는 일을, 그 길을 걸으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이 계명의 말씀을 지켜 행하기(히브리서 10장7절) 위하여 겪으신 그 고뇌와 눈물과 심적 갈등 곧 "십자가의 고난" 에 고스란히 묻어있고 담겨 있으며 결국 목에 칼(십자가의 죽으심)이 들어오도록 오히려 저들의, 자기의, 사람의 알지 못하여 행하는 미워하고 비방하고 때리고 침 밷고 사나워져서 다투고 함부로 하는 그 모든 죄를 사하여(누가복음 23장34절) 주시기를 하나님께 간구하시고 기도하시면서 오직 당신은 입으로, 몸으로 범죄치 않으시려 그져 잠잠(시편 39편1~2절)하시고 묵묵히 하셨으니 이 힘들디 힘든, 어렵디 어려운 일을 해내시므로 다시 사는 "부활" 에 참예하신 것이며 "부활" 이 없이는 영원무궁한 차원의 생명 곧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도 없으며 한 몸, 하나가 될 수도 없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부활" 의 첫 열매(고린도전서 15장20~23절)가 되심으로써 하나님을 바라고 그리스도를 바라는 사람(인생)들에게 생명으로 가는 길(요한복음 14장6절)을 열어서 보여주신 것이며 이 길과 방법(지혜)이 아니고선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우편에, 하나님의 편에 설 수 없다는 것을 잡아 내셨으면 한다.
그래서 마가복음 14장62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 하는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우편에, 하나님의 편에 있음에도 두 번째 다시 오시는(임하시는) 이유는 그리스도의 부활의 목적이 오로지 그리스도에게만 있지 않기 때문이며 그리스도를 위하심이 아니라 일평생(전도서 2장23절) 여러 근심과 수고로 외롭고 쓸쓸하고 슬프고 괴로워하며 그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고서 때가 되면 죽는 것을 당연히 여기면서 그 날을 기다리며 맞이는 우리 사람(인생)들에게 가장 복된 소식, 아름다운 소식(이사야 61장1~2절)을 알려주시기 위하여 몸소 행동으로 실천하여 보여주신 것이니 두 번째 다시 오실(임하실) 때에 우리 사람의 죽을, 썪을 이 몸으로 하나님 곧 영원무궁한 차원의 생명에게 삼킨 바(고린도후서 5장1~4절) 되게 하여 하나님과 거처(요한복음 14장23절)를 함께 하는, 덧 입는 한 몸, 하나가 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하시는 모든 일, 창조하신 모든 날들의 빅 픽쳐(큰 그림)이며 이 일을 이루었다면, 끝낸다면 그 제서야 비로소 하나님도, 사람도 하던 일을 쉬는 안식에 함께 들어가게 되는 것이며 이것이 "구원" 의 마침표라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누가복음 20장43절에 "내가 네 원수를 네 발의 발등상으로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원수가 사람이 아니라 죄된 모습, 악한 모양의 모든 것이기 때문에 사람을 발 아래에 두는 것이 아니라 죄와 악을 발 아래 두고서 휘둘리지 않으며 의연해지고 초연해질 수 있도록 사람의 내면의 모든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하고 싶어하는 육체이 정욕을 버리며 하나님의 "서로 사랑하라." 하신 계명(마가복음 12장31절)을 지켜 행함에 있어서 걸림돌이 되고 막힘이 되는 모든 죄와 악에 대하여 죽일 줄 알게 될 때가 이르면 그 때서야 하나님의 우편에 계셨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함께 오셔서 그 때에는 우편이 아니라 우리 사람과 한 몸, 하나, 일심동체(에베소서 5장31~32절)가 되는 것이며 이것이 두 번째 다시 오시는 이유와 목적이며 이를 위하여 기다리신 것이 "하나님의 우편" 이었으며 그 날을 "혼인 기약(계시록 19장7~9절)" 이라 기록하신 것이니 지금에 우리들은 과연 무엇을 예비하고 무엇을 준비하여야 하는가? 이것은 전적으로 우리 사람의 몫으로써 처음부터 전하여 주신 말씀(요한일서 3장11~16절), 첫 째되는 계명 "서로 사랑하라." 하신 말씀을 지켜 행하려고 힘쓰며 노력(훈련,연습)하는 것이며 우리가 도망쳐서 나와야, 벗어나야 할 것은 죄와 악이며 겨울(마태복음 24장20절)에는 하던 일이 멈추고 쉴 수 밖에 없는 안식일이 되기 때문에 겨울이 오기전에 우리의 예비함이, 준비함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