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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허물이 주의 앞에 심히 많으며...(이사야 59장12절)

교훈 안에 2019. 4. 22. 15:34

오늘은 이사야 59장12절에 "대저 우리의 허물이 주의 앞에 심히 많으며 우리의 죄가 우리를 쳐서 증거하오니 이는 우리의 허물이 우리와 함께 있음이라 우리의 죄악을 우리가 아니이다." 에서 "허물"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허물" 에 관하여는 앞서 기재했던 글(2018년7월11일자,18년1월1일자)에서 살펴 본 적이 있었지만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잘못을 저지르며 그릇행하게 되는 "허물" 이 없을 수는 없으며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이 없지만 오늘 본문의 말씀의 앞 구절 10~11절에 "우리가 소경같이 담을 더듬으며 눈 없는 자같이 두루 더듬으며 낮에도 황혼 때같이 넘어지니 우리는 강장한 자 중에서도 죽은 자 같은 지라. 우리가 곰같이 부르짖으며 비둘기같이 슬피 울며 공평을 바라나 없고 구원을 바라나 우리에게서 멀도다." 하고 쓰고 있듯이 그러한 우리 사람(인생)의 잘못과 허물과 죄로 말미아암 삶의 가는 길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가는 방향은 맞는지 희뿌연 연기속에 갇혀서 소경처럼 보이지 않게 되었고 좀 낫게 두들기며 더듬으면서 간다고 하여도 낭떠러지인 줄 모르고 떨어지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고 헤매기도 하니 겉사람은 아주 강해 보이고 힘있어 보이지만 그 숨은 속사람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죽은 자와 흡사 같아서 그 바라고 구하는 것에 돌아오는 것은 허무한 메아리뿐이며 그져 제자리에서 멤돌고 있을 뿐이었음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 어릴 때에는 부족한 경험 탓에, 처음 겪어보는, 처음 부딪쳐보는 상황에 또는 세상에 대한, 어른들에 대한 반항 심리가 있음으로 하여 객기를 부리고 싶은 마음에 호기로워져서 잘못을 저지르기도 하고 그릇행하기도 하며 알고도 모르고도 죄를 범하기도 한다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소싯적, 어릴 적 좇아 행하던 죄나 "허물" 들을 버리지 못하고서 그 행위(행동,행실)가 오히려 더욱 강화, 진화되고 더 심해지고 더욱 꾀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니 버릇처럼, 습관처럼 자연스럽고 거침없이 행하게 되었고 겉으로는 다 자란, 다 큰 어른으로 보이지만 어른스럽지 못하고 어린애(아이) 같은 모습(자세)을 취할 때가 많으며 그런즉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 는 "소 도둑이 바늘 도둑 된다." 는 속담은 이럴 때 써야하는 표현이 맞지 않는가? 하는 것이며 이러한 구습(舊習)이나 나쁜 버릇은 어른이 되어가면서 더는 행하지 말아야 할 것을 어른으로써, 성인으로써 자라나는, 커가는 어린 사람들에게 본을 보여 주어야 하며 말만 앞세우고 말로 떠드는 것보다 본보기를 보이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선생이요 스승이요 인생 선배이지만 오히려 나이(경험) 믿고 학력 믿고서 권력을 믿고 권위를 믿고서 위치(자리)를 방패 삼아서 뒤 봐주고 눈 감아주고 줄 세워주는 것을 좋아하여 이러한 관행들을 도구 삼아서 때로는 심기 불편해짐을 못마땅하게, 언짢게 여기면서 함부로(무시,멸시,업신여김)하며 무례히 행하고 있는 우리 사람(인생)의 모습은 정말 수치스러운 허물이요 부끄러운 잘못이니 이는 지금의 우리들의 모습임과 동시에 우리의 부모의 세대가 그러하였고 우리의 부모의 부모의 세대가 그러하였고 그 부모의 부모의 세대가 그러하여 대대로 그러하였던 우리 사람의 슬픈 자화상임을 잡아 내셨으면 한다. 

그래서 이사야 50장1~2절에 "나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라. 내가 너희 어미를 내어 보낸 이혼서가 어디 있느냐 내가 어느 채주에게 너희를 팔았느냐 오직 너희는 너희의 죄악을 인하여 팔렸고 너희 어미는 너희의 허물을 인하여 내어 보냄을 입었느니라. 내가 왔어도 사람이 없었으며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었음은 어찜이뇨 내 손이 어찌 짧아 구속하지 못하겠느냐 내게 어찌 건질 능력이 없겠느냐." 하는 것처럼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큰 재앙이요 저주는 지구의 멸망도 아니요 한 나라(국가)가 지도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요 지진이나 쓰나미와 같은 자연재해로 무너지고 쓰러지는 것도 아니라 이러한 것은 나중의, 차후의 문제이고 근본은, 본질은 사람이 잘못된 죄악에 몸과 마음이 팔려서, 그릇된 허물을 인하여서 사랑(온유,긍휼,관용,겸손)으로 행하는 선인(善人)이 없고 자신의 유익과 이익과 욕심에 치우치고 쏠려서 공평과 정의로 행하는 의인(로마서 3장10~15절)이 없음으로 하여 영원무궁한 차원의 생명 그 자체이신 하나님을 멀리 떠나 스스로 파멸(패망,멸망)과 사망(죽음)을 자초한 그것이니 이사야 43장26~27절에 "너는 나에게 기억이 나게 하라. 우리가 함께 변론하자. 너는 말하여 네가 의로움을 나타내라. 네 시조가 범죄하였고 너의 교사들이 나를 배반하였나니~ " 하고 쓰고 있듯이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흐르면 그 흐른 시간과 세월 만큼 치기어린, 부족한 아이들의, 사람들의 선생이 되고 스승이 되고 교사가 되어서 말이 아닌 행실로, 말뿐이 아닌 행동으로 선한, 의로운, 좋은 가르침을 주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그러하지 못하였던 것이 가장 본질적인 인류의 역사이며 지금이라도 일깨우고 돌이켜서 고쳐 행할 줄 아는 것이 하나님을 바라고 그리스도를 바라며 거기에 소망과 희망을 두어 두 번째 다시 오신다(임하신다)고 약속을 기다리고 있는 우리들이 무엇보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충성과 열심으로 하여야 할 하나님의 일이요, 우리가 마음으로 먹어야 할 일용할 양식이니 우리 사람의 잘못된 죄나 그릇된 허물로 말미암아 허비한 시간과 세월이 이것으로 족하여 더는 우리 자신을 이러한 방탕에 방임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다시 오신다고 하신 약속(언약,예언)만을 남겨 둔 이 시점에서 그동한 인류가 보여준 역사가 충분히 거울이 되며 교훈이 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시편 32편5절에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였나이다." 하는 것처럼 사람이 자신의 어떤 잘못이나 죄나 허물을 감추며 숨기기는 쉽지만 이를 자복하고 고백하며 숨기지 않고서 참회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니 하지만 참회한다는 것은 지난 죄와 악, 잘못과 허물에 대한 상당한 후회와 아쉬움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시작하고 인정하기까지가 어렵지 진심 사람의 체면과 자존심을 내려놓으며 높아져 있는 눈과 마음 몸짓을 버리고서 미워하고 비방(흉보고 욕함)하고 훼방하고 사나워져서 다투고 불평하고 함부로하고 무례히 행하였던 죄와 허물들을 더 이상 행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가장 중요하며 모든 것은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라 훈련과 연습을 반복하는 노력끝에 완성되고 이루어져가는 것이므로 그러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와 악을 사하여 주시는 것이니 말만 앞세우고 입으로만 내세우면서 행동은 고치지 않는다면 그 죄와 악, 잘못과 허물은 어디 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거기 그 자리에 계속 있으면서 우리 자신을 괴롭히게 되리니 사도행전 17장30절에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 하는 것처럼 우리가 예전에 이를 뼛속 깊이 알았다면, 깨달았다면 이렇게 행하지 않았을터이니 죽을 줄 알면서도 구덩이로, 낭떠러지로, 악화일로(惡化一路)로 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며 그러나 이제는 알리시는 때요 일러서 전하는 시대에 우리가 있음으로 하여 강퍅한(히브리서 4장7~9절) 마음으로 굳은 이마와 뻣뻣한 목으로 있으면서 고쳐 행하지 않는다면 지금까지 그래왔듯 죄와 악으로 인하여, 잘못과 허물로 인하여 겪지않았어도 됐을, 겪을 필요없었는 파멸(멸망,패망)과 사망(죽음) 앞에 부끄럽게도 또다시 마주하게 되리니 우리의 자녀들에게, 후손들에게 진정으로 물려주어야 할 유산은 생명과 안식과 구원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