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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평이 우리에게서 멀고 의가 우리에게 미치지 못한즉 우리가 빛을 바라나 어두움뿐이요 밝은 것을 바라나 캄캄한 가운데 행하므로...

교훈 안에 2019. 5. 25. 09:38

오늘은 이사야 60장2절에 "보라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 에서 "어두움"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지금 우리 사람(인생)의 삶과 생활의 일반적인 패턴은 훤하고 밝으며 생기(활력)와 함께하는 빛이 있는 아침(낮)을 시작으로 어두움과 캄캄함이 내려앉는 밤(저녁)이 되면 모든 것을 뒤로 하고서 우리 자신을 보호를 해주며 편안한 안식처가 되어주는 집으로 돌아가는 그것이며 만약에 이러저러한 이유로 돌아갈 집이 그리 여의치 못하고 또한 그 집이 제대로 보호를 못해주지 못하며 편안함과 행복함을 느낄 수 없는 상황이라면 어두움과 캄캄함이 내려앉는 밤(저녁) 만큼이나 사람의 마음은 불안감과 불행함을 느끼게 되리니 다시 말해서 사람(인생)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불안함을 느끼도록 어둡게 하며 길을 찾을 수 없는 미로(迷路)와 같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아서 불행함을 느끼게하는 그 캄캄함과 아두움은 갈 길, 나아갈 바를 보이게 하는 희망과 행복을 주는 아주 가는 한 줄기라 할지라도 "빛" 이 없기 때문이며 그런즉 빛이 비취는 "광명(이사야 60장3절)" 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니.....  

요한일서 1장5~6절에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 하고 쓰고 있듯이 하나님께서 "빛" 이신 것은 하나님께서 "의로운 해(말라기 4장2절)" 이시기 때문이며 모든 빛나는 의(정의,공의), 의로움(공평,공정)은 어떠한 이유나 무슨 핑계와 토를 달지 않고서 행할 수 있어야 참된 진리(眞理)라 할 수 있으며 자신의 유익(입장,처지)이나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좌지우지 하고 싶은 욕심에 의해 다른 사람(타인)을 미워하고 비방하거나 훼방하면서도 하나님을 믿으니 "나는 의(義)의 편에 서 있다." 라고 말하며 또한 자신의 이익(기준,관점)만을 내세워서 상대방에게 사납게 다투거나 함부로하고 무례히 행하면서도 그리스도를 믿으니 정당하고 타당하게 여기면서 "나는 의로움이 있다." 라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거짓말하는 자요 어두운 가운데 행하는 자이니 요한일서 2장9~11절에 "빛 가운데 있다 하며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두운 가운데 있는 자요~ 또 어두운 가운데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어두움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니라." 하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며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그 의로운 태양 즉 빛 가운데 행하며 거기에 있다고 한다면 무엇보다 "서로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원수까지도 사랑하라.", "일흔 번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 하신 첫 째되는 계명, 최고한 법 곧 그 말씀 가운데에 있으며 그리 행하여야 하리니 "하나님을 사랑(요한일서 4장16절)이시라." 하신 그 "사랑" 은 물론 세상에는 여러 사랑의 유형과 형태가 있지만 부모가 자식(자녀)을 사랑함에 있어서 미운, 마음에 안드는, 못마땅한, 언짢은 여러 이유와 핑계가 있다고 할지라도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는 것처럼 사람이 사람을 대하여, 서로가 서로를 대하여 이같은 사랑으로 행하기를 바라고 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 이며 모든 이유와 핑계는 여전히 자신을 내려놓지 못하며 자존심과 체면을 앞세우는 우리 자신의 내면에 있는 것이지 아직도 이러저러한 이유로, 이래저래 핑계를 대며, 이러쿵저러쿵 토를 달면서 그 이유를 남(타인)에게서 찾으면서 상대방(다른사람)을 미워하고 비방(흉보고 욕함)하고 훼방(잘못되기를 바람)하고 사납게 다투고 함부로하며 무례히 행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어두움과 캄캄함 가운데 있는 것이며 그 어두움과 캄캄함이 눈과 귀와 입을 멀게 하여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미로속을 헤매는 것과 같은 불안함과 초조함과 조급함과 불행함으로 이끌며 인도하게 된다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래서 마태복음 4장16절에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 하고 쓰고 있듯이 여기에서 "큰 빛" 이라 하심은 의로운 태양이신 하나님의 빛과 광명을 갖고 오신 "그리스도" 를 뜻하며 한 사람이었던 "예수" 께서 그리스도(사도행전 2장36절)가 되실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사람(인생)이 이러한 어둡고 캄캄한 흑암과 그 흑암으로 말미암은 사망(파멸,죽음)의 그늘 아래에 있은 것이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그러하였고 우리의 부모가 그러하였고 우리의 부모의 부모가 그러하였고 그 부모의 부모가 그러하였던 대대손손 인류가 있은 이래로 유전처럼 이어져 온 것들이며 하나님의 의로운 태양, 그 빛으로 나아오는 방법(지혜)과 그리로 걸을 수 있는 길(지식)을 모르고 있는 우리 사람에게 그 길과 방법을 나타내고 드러내 보이신 것이 그리스도로써 많은 인내와 노력(훈련,연습)이 필요함은 이미 몸과 마음에 배어서 빛으로 행하는 것보다 어두움으로 행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편해졌기 때문이며 죄 있는 모양, 죄의 종의 형체는 사람이라면 어느누구를 막론하고 재산처럼 소유(누가복음 14장33절)하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이를 얼마나 일깨우고 돌이켜서 버리고 비우고 죽여서 고쳐 행하고자 하는가 하는 사람의 의지(의욕)에 달려 있으며 어두움에서 빛으로 옮겨가기 위한 그러한 인내와 노력이 곧 그리스도의 고난과 못박히심과 죽으심, 그 "십자가의 도(道)" 이니 이렇듯 본보기를 보이신 것은 입으로, 혀로, 말로 떠드는 것에 있지 않고 말을 앞세우고 내세우는 것 만큼이나 비례하는 행실(실천)이 있어야 진정성과 진실성이 있으며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니 이는 그리스도를 위하심이 아니라 말을 앞세워서 입으로 다하는 우리 사람(인생)에게 본(本)을 보이시기 위함이며 입으로, 혀로, 말로 하나님을 믿는다, 그리스도를 믿는다 인정하고 시인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지켜 행하여야만이 어둡고 캄캄한 흑암과 사망(파멸,죽음)의 그늘에서 벗어나 빛과 광명으로 나아가며 생명(부활)과 안식과 구원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아모스서 5장14~15절에 "너희가 살기 위하여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찌어다.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공의를 세울찌어다." 하시며 20절에 "여호와의 날이 어찌 어두워서 빛이 없음이 아니며 캄캄하여 빛남이 없음이 아니냐." 하고 쓰고 있듯이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의로운 태양, 그 빛을 갖고 오셨지만 첫 번에 오셨던 유대인(이스라엘)들도 빛 가운데 행하지 못하였으며 2000년이 흐른 지금도 우리 사람은 아직도 여전히 온전히 빛 가운데 행하지 못하며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은 빛이 세상에 왔으되(요한복음 3장19~20절)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며 빛과 어두움이 공존할 수 없는 것처럼 죄와 악 가운데 있으며 선(善)을 행하고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요 거짓말이니 죄와 악이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나아오지 못하게 함이니 하나님께서 의로운 태양으로서 빛을 사람들에게 비추었지만 빛이 없음이, 빛남이 없음이, 광명이 없음은 빛을 알아(깨달아)보지 못하고 빛을, 광명을 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자신의 유익과 이익과 욕심을 채우며 자신의 체면과 자존심을 챙기기 위한 도구가 되어 미워하고 비방하고 불평하고 원망하고 훼방하고 사나워져서 다투고 함부로하고 무례히 행하는 어두움과 캄캄함, 그 죄와 악에서 떠나려는, 벗어나려는 그러한 인내와 노력(훈련,연습)이 비로소 처음(창세기 1장3~5절)에 창조하신 "빛이 있으라." 하신 말씀대로 이루어져서 온전히 우리 사람 가운데 머물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