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아들들은 원방에서 오겠고 네 딸들은 안기워 올 것이라...
오늘은 이사야 60장4절에 "네 눈을 들어 사면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네 아들들은 원방에서 오겠고 네 딸들은 안기워 올 것이라." 에서 "아들들", "딸들"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씨(누가복음 8장11절)" 라 할 때에 그 말씀의 씨를 믿으며 의지하여 좇아서 행하려 하는 사람들을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에서는 자녀, 성도, 백성 또는 그 자녀들을 "아들들", "딸들" 이라 기록하고 있으니 중요한 것은 고린도전서 11장12절에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으나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 하는 것처럼 누가 먼저이고 누가 나중일 수 없고 또한 "뼈 중에 뼈, 살 중에 살(창세기 2장21~23절)" 하듯이 누가 누구에게 속하였다고 하여 수직관계처럼 차별(로마서 10장12절)이 있을 수 없는 것은 누구라고 특별할 것 없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으며 하나님께 속하여서 하나님 안에서 하나(갈라디아서 3장28절) 즉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니.....다만 갈라디아서 4장22~24절에 "기록된 바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계집종에게서,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나 계집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고 쓰고 있듯이 30절에 "~ 계집 종의 아들이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여기에서 "계집 종", "자유하는 여자" 하시는 것은 빗대어 비유로 하신 말씀이요 또한 반드시 이루실, 이루어질 약속 곧 언약이니 다시 말해서 "계집 종" 의 그 종 되었던 것은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요한복음 8장34절)" 하는 것처럼 아들이 다 아들이 아니라 아들이라 할지라도 계속하여 죄(罪)에게 얽매이고 져서, 악(惡)에게 사로잡히고(로마서 7장23절) 져서 못마땅하면, 마음에 안들면, 언짢아지면 참지 못하며 다스리지 못하고서 미워하고 비방하고 훼방하고 사나워져서 다투고 함부로하며 무례히 행하기를 서슴치 않는다면 그 아들은 "죄의 종" 이요 본질상 "진노의 자녀(에베소서 2장3절)" 이며 하지만 다스릴 줄 알고 제어할 줄 알아서 나보다 남을 낫게 여겨(빌립보서 2장3~5절) 남의 유익(입장과 처지와 상황)을 구하여 헤아려 이해하고 살피며 온유와 인애와 관용과 긍휼(야고보서 3장17~18절) 곧 사랑으로 행할 수 있으면 그리 되기 위하여 애쓰며 노력(훈련,연습)하는 자는 악의 노예도, 죄의 종도 아닌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자유케 된 자요 이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들" 이요 "딸들" 로서 나타나리니 이것이 이루실 약속, 언약이며 하나님의 유업은 당연히 마땅히 자유로워진 "아들들" 의 것이 된다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래서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갈라디아서 3장16절)이라, 아들들이라 하지 않으시고 오직 "그리스도" 를 하나님의 아들로 삼으셨으니 로마서 1장3~4절에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사실 혈통(혈육)이나 족보(육적 계보)는 그리 중요하지 않으니 이는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고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이며 사람의 육신(몸)을 만들어주신 것은 혈육의 부모님이시지만 사람안의 심령(스가랴서 12장1절) 즉 "정신 세계" 라고 하는 영혼, 마음은 하나님께서 부모로서, 아버지로서 지으시고 만드셨으며 다만 우리 사람(인생)이 눈과 귀와 입이 어두워져서 제 길(욕심,죄,악)로 제 곳(사망,파멸)으로 걸어갔을 뿐 이러한 내 뜻대 내 마음대로 좌지우지 하고 싶어하는 욕심으로 말미암은 죄와 악을 버리고 비우고 죽이지 못한다면 결코 하나님께 있는 무한한, 무궁한 생명(부활)으로 나아갈 수 없음을 몸소 실천하여 앞서서 본(本)을 보이시고 부활의 첫 열매(고린도전서 15장23절) 곧 하나님의 맏아들로 인정되셨고 구원의 근원이 되셨으니 로마서 8장29절에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맏아들이 있으면 그 형제들 즉 자녀들, 아들들도 있으니 아들이 다 아들이 아니라 아우는 형을 따라하기 마련인 것처럼 형제들이라면 마땅히, 당연히 맏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본(本)과 자취를 좇아서 지켜 행하여야 하며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은 죄 있는 모양(로마서 8장3절), 죄의 종의 형체(빌립보서 2장7~8절)에서 얽매여 있던 것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갖은 노력 곧 고뇌와 고생과 애통과 여러 심적 갈등 즉 십자가의 고난의 길을 걸으셨으며 고난(히브리서 5장7~9절)이 지난후에야 비로소 죄에 대하여 못 박을 수 없으며 마침내 죄에 대하여, 악에 대하여 죽을 수 있으며 그제서야 자유롭게, 자유하게(요한복음 8장32절) 되리니 우리 사람(인생)의 현실의 삶에서 우리를 괴롭히며 외롭게하고 근심과 걱정이 있게 하고 조급함과 초조함으로 집착하게 하였던 본질은 내 품으로 끌어 안으려고만 하는, 쟁취하려고만 하는, 그래서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하고자 하는 욕심 때문이요 이것이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사람이라면 짊어져야 "십자가" 라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갈라디아서 2장20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한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하는 것처럼 이 세상에 한 가닥 욕심이 없는 사람이 없지만 그 욕심을 버리지 못한다면, 마음에서 비우지 못한다면 그 욕심이 자꾸만 죄의 나락으로, 악의 구렁텅이로 이끌고 가서 죄의 종 곧 진노의 자녀로 나타나고 드러나게 하기 때문에 그 십자가를 못 박아 버려야 자유케 되어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들로 하나님의 앞에 설 수 있으며 그 때까지 비록 육체 가운데 있다고 하나 그 마음 곧 심령은 새롭게 되어 그리스도에게 붙은 자(고린도전서 15장23절), 그에게 속한 자(계시록 14장4절),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갈라디아서 3장27절)로서 종의 아들이 아닌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리니 그리스도께서 죄 많은 악이 있는 우리 사람과 똑같은 모양(히브리서 2장14~16절)에 속하셨던 것은 죄악으로 말미암아 사망(파멸)의 세력에 잡혀서 죄의 종되었던 우리들을 놓아주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들로 붙들어 주기 위함이라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