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넓고 깊은 물을 말리시고 바다 깊은 곳에 길을 내어 구속 얻은 자들로 건너게 하신 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나이까...
오늘은 이사야 60장5절에 "그 때에 네가 보고 희색을 발하며 네 마음이 놀라고 또 화창하리니 이는 바다의 풍부가 네게로 돌아오며 열방의 재물이 네게로 옴이라." 에서 "바다"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바다" 는 사람이 임의로는 건널 수 없을 정도로 무지 많은 물들이 모인 곳이며 또한 "바다" 를 이룰 수 있는 구성요건은 소금으로써 "바다" 도 물이긴 하나 짠 소금물로 말미암아 그 상태로는 먹을 수 없는 "물" 이며 중요한 것은 바다 즉 인도양, 태평양, 지중해, 카리브해... 등등등 이러한 "바다(창세기 1장10절)" 를 알리고자 하여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에 기록하여 주신 것이 아니라 이에 빗대어.....
"물" 이 요한복음 4장14절에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하는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우리 사람(인생)에 주셔서 무한한, 무궁한 영혼의 생명(요한복음 6장63절)이 되게 하시고 더 나아가 그 영혼의 생명으로 말미암아 육신(몸)의 생명에게까지 영향을 끼치게 하는 말씀 곧 그리스도의 가르침, 그 가르침대로 몸소 실천하여 본보기를 보이신 그 교훈의 말씀을 "물" 이라 하신 것으로써 그 물은 한 사람 "예수" 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이신 것들(요한복음 5장19절)을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것이며 또한 하나님께서 주신 증거(요한복음 5장36절)의 말씀들을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물" 이기 때문에 마음대로 하신 것이 아니며 그 "물" 은 하늘, 하나님 나라 "천국(天國)" 의 하나님 보좌 앞에 있는 "유리 바다(계시록 4장6절)" 에서 흘러나온 것으로써 이 "유리 바다" 물로 세상을 소성(계시록 22장2절)하고자 하시는 것이 하나님께서 처음(창세기)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빅픽쳐이시니... 하지만 세상에서 주는, 쏟아지고 있는 물, 많은 물 즉 정보의 홍수의 "바다" 는 우리 사람에게 주어서, 마셔서 그 영혼을 소성케 할 수 있는 능력이 없고 때로 어떤 물(정보,텍스트)은 사람의 영혼을 심하게 피폐하게 만들거나 다른 사람의 영육(靈肉)을 낭떠러지로 몰고 가기도 하기 때문에 다만 살아가는 동안 좀더 질 좋은, 윤택한 삶을 살아가도록 만들어주고 사는동안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에 불과하기 때문에 깨어있는 사람이라면 이 세상 바다에 치중하고 집중하는 것들을 돌이켜 영혼을 소성시키는, 먹어서 살리게 하는 "유리 바다" 에서 흘러나오는 "물" 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래서 그 물은 베드로전서 3장20~21절에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하고 쓰고 있듯이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다시 오시는(임하시는) 세상 끝, 마지막 때, 인자의 때를 노아의 때(누가복음 17장26~27절)와 같고 하지만 노아의 때와 같은 홍수로 멸하지 않겠다는 약속(언약)의 증거로 무지개(창세기 9장11~13절)를 주신 것은 인자의 때에도 노아의 때와 같은 어떤 홍수의 바다가 있겠지만 그 물, 바다는 정보(말,텍스트)의 바다를 의미하며 방주에서도 "물" 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것처럼 수많은 물, 홍수, 바다 속에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살릴 수 있는, 살리는 "물" 은 오직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신 그 생명수이며 그 "물" 로 마시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씻어야 하되 육체의 더러움이 아니라 영혼 곧 마음의 추하고 더럽고 악한 것들을 씻어야 하며 이는 그리스도께서 앞서서 본보기로 마음의 죄있는 모양(로마서 8장3절), 죄의 종의 형체(빌립보서 2장3~5절), 악한 모양들을 마음에서 씻어 버리기 위하여 받으신 여러 고뇌와 애통과 심적 갈등 즉 십자가의 고난과 못 박히심과 죽으심이 그것이며 세례, 씻어버림 즉 죽으심으로 다시 살아나시는 부활 곧 무한한, 무궁한 생명으로 들어가신 것이며 부활이 없이는 안식도 없으며 생명(부활)과 안식에 들어가는 것이 구원임을 몸소 실천하여 행동으로 보이시고 부활의 첫 열매(고린도전서 15장23절), 구원의 근원(히브리서 5장7~9절)이 되신 것이니 이는 그리스도를 위하심이 아니라 우리 사람이 어디로 가야하는지 길을 찾지 못하고 방향을 잡지 못하고 바다 가운데서 혼란과 혼돈과 공허함과 곤고함(누가복음 21장25절)에 빠져있음으로 하여 그 길을 좇아오게 하시려고 모세가 홍해에서 길을 열으신 것처럼 참 형상이신 그리스도께서 바다 가운데 길을 열어주신 것으로써 씻어서 온전히 선한 양심이 되어야, 바뀌어야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님께 있는 무한한, 무궁한 생명과 안식과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잡아 내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마가복음 1장16~17절에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 하는 것처럼 이 말씀은 있어진 역사적인 말씀을 전하고자 하여 기록하신 것이 아니라 이루질 약속(언약)의 말씀으로써 우리 사람을 이 세상 정보의 홍수, 그 바다 가운데 어족(하박국 1장14절), 물고기라고 한다면 그 바다로부터 영혼을, 영혼(마음,정신 세계)으로 말미암은 육신(몸)을 소성시켜 줄 수 있도록 건져주어야 할 충성심과 사명감이 어려있는 어부는 반드시 있어야 하며 이러한 중차대한 소명을 행하기 위해서 어부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 붙은 자,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가 먼저 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사람을 그릇이라고 한다면 어부의 그 그릇속에 담긴 것이 마땅히 씻어 깨끗케 할 수 있는 생명수 샘물 곧 그리스도께서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 십자가의 도(道) 곧 그 교훈의 말씀의 물이어야 하며 그 물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는 유리 바다, 하나님 나라 예루살렘 성전(계시록 21장2절) 문지방(에스겔 47장)에서부터 발원하는 물로써 처음에는 발목, 발목에서 무릎, 무릎에서 허리, 허리에서 머리까지 찰랑이고 넘쳐서 바다처럼 자유롭게 헤어칠 수 있을 정도로 가득차서 그 배에 생수의 강(요한복음 7장38절)의 흘러넘칠 수 있어야 온전히 다른 사람들에게도 소성할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