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백성이 다 의롭게 되어 영영히 땅을 차지하리니...(이사야 60장21절)
오늘은 이사야 60장21절에 "네 백성이 다 의롭게 되어 영영히 땅을 차지하리니 그들은 나의 심은 가지요 나의 손으로 만든 것으로서 나의 영광을 나타낼 것인즉~ " 에서 "의롭다.", "의(義)"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의롭다." 는 것은 "의(義)" 를 행하는 사람에게 주어질 수 있는 말로써 "의(義)" 를 행함에 자신의 유익(입장,처지,상황)을 앞세우거나 자신의 이익(기준,관점)을 내세우면 안되며 오직 남의 유익과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이타심(利他心)" 에서 비롯된 것이라야 진정한 "의(義)" 라 할 수 있고 그 사람을 "의롭다." 말할 수 있지만 우리 사람은 못마땅함에 미워하고 원망하며 마음에 안듦에 분노하고 비방하며 언짢음에 사나워져서 다투고 함부로하기를 서슴치 않는 죄와 악과 불의와 불법에 더 가까왔으니.....
"정의", "공의", "도의" 가 다 같은 맥락의 "의(義)" 로써 "의(義)" 를 행함에 동반되는 전제조건은 "인지상정(人之常情)", "역지사지(易地思之)" 하는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빌립보서 2장3~5절) 마음에 있으니 하지만 우리 사람은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며 남의 유익과 이익을 먼저 살피고 헤아리려하는 마음보다 내 뜻(유익)대로, 내 마음(이익)대로 좌지우지 하고 싶은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욕심이 없는 사람이 없고 또한 삶은 현실이기 때문에 온전히 "의(義)" 를 실현하는 "의로운 사람" 은 안타깝게도 있을 수 없으므로 이미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에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로마서 3장10절)" 하고 쓰고 있듯이 처음, 첫 사람(로마서 5장12절)부터 오늘날까지, 지금까지 의롭게 된 적이 없으며 의롭게 된 사람은 없으니 예레미야 5장1절에 "~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 하셨지만 28~29절에 "살찌고 윤택하며 또 행위가 심히 악하여 자기 이익을 얻으려고 송사 곧 고아의 송사를 공정히 하지 아니하며 빈민의 송사를 공평히 판결치 아니하니 내가 이 일들을 인하여 벌하지 아니하겠으며 내 마음이 이같은 나라에 보수하지 않겠느냐." 하는 것처럼 사람에게 공평과 공정과 공도가 없음으로 하여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에게 내리신 벌은 파멸(멸망,패망)이며 그런즉 "의롭게 됨" 이 없음으로 하여 우리 사람에게 허락하신 보수(갚으심)는 사망(죽음)이니 처음에 신실하고 순수하고 순전하였던 곳이 죄와 악과 불의와 불법과 짝하는 창기(이사야 1장21절)가 되고 서로가 서로에게 물고 뜯고 상처내고 죽이는 살인자가 되었으니 이사야 64장5~6절에 "주께서 기쁘게 의를 행하는 자와 주의 길에서 주를 기억하는 자를 선대하시거늘 우리가 범죄하므로 주께서 진노하셨사오며 이 현상이 이미 오랬사오니 우리가 어찌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하고 쓰고 있듯이 이러한 모습(자세)으로는 결국엔 좀 먹어 헤진 옷 같이 날로날로 쇠패하고 벌레 먹어 바람에 날아가버리는 겨와 같이 하나님 앞에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며 우리의 죄악과 불의와 불법의 행실(행동,행위)을 고치지 않는 한 말로만, 입으로만, 혀로만(마가복음7장6절) 믿는다, 의지한다, 시인하여 외치고 부르짖는 거짓말장이며 라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래서 시편 51편17~19절에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그 때에 주께서 의로운 제사와 번제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시리니~ " 하고 쓰고 있듯이 "제사(예배)" 라고 하는 것이 어디 특정한 장소에 가서 절차와 순서에 맞게 기도와 찬송과 헌금과 봉사와 충성과 열심을 낸다고 하여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실질적으로 우리 사람(인생)이 말하고 행동하고 생활하는 곳은 삶의 현장이요 현실속의 삶에 있기 때문에 거기에서 있어지는 사람과 사람사이, 그 속에서 있어지는 서로가 서로에게 마땅히 하여야 할 정의, 공의, 도의 곧 "의롭게 됨", "의로움" 을 어떻게 행할 수 있느냐에 대한 상한 심령과 통회하는 그 마음을 받고자 하시는 것이요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에게 구하시는 참되고도 온전한 제사(예배)이니 어디에 있든, 어떠한 위치(자리)에 있든 의와 공평으로 행하려고 힘쓰고 애쓰며 노력하는 그러한 사람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기쁘게(잠언서 21장3절) 여기시기 때문이며 시편 45편7절에 "왕이 정의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시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왕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으로 왕에게 부어 왕의 동류보다 승하게 하셨나이다." 하는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사도행전 2장36절)가 되실 수 있었던 것은 이 세상에 온전히 "의(義)" 를 행하는, 의롭게 된 의인은 없으며 하나도 없지만 죄와 악과 불의 불법을 미워하여 이를 행하지 않으려 노력(훈련,연습)하며 그 가운데서 느끼는 심적 갈등이나 상한 심령이 곧 십자가의 고난으로써 마침내 못 박고 죽으셨으므로 모든 사람들보다 승(요한복음 16장33절)하시고 본보기가 되셨으니 이는 그리스도 자신을, 당신을 위하심이 아니라 어떻게 하여야 의롭게 되는지, 악을 미워하는지 알지 못하여 계속해서 죄와 악과 불의와 불법을 가운데 있어서 "인면수심(人面獸心)" 하듯이 짐승 옷을 입고도 자신이 짐승보다 다름이 없는 줄(잠언서 3장16~19절) 깨닫지 못하며 그런즉 그리스도로 옷 입지 못하고 있는 우리들을 인도하기 위하여 이끌기 위하여 표적(기호,깃발)으로 행하신 것임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빌립보서 3장7~9절에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하고 쓰고 있듯이 이 세상에 한 가닥 욕심이 없는 사람이 없고 그 욕심의 소욕(갈라디아서 5장17절)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사람을 대하여, 서로가 서로를 대하여 미워하고 원망하고 분노하고 비방하고 사나워져서 다투고 함부로하기를 서슴치 않는 죄와 악과 불의 불법을 행하지 않는 사람이 없으며 그리스도 또한 이러한 죄있는 모양(로마서 8장3절), 죄의 종의 형체(빌립보서 2장7~8절)를 입고 나셨지만 이에 복종하고 순종하며 굴복하였던 것이 아니라 어찌하든지 버리고 비우고 죽이기 위하여 잠시잠깐(백세 인생)의 기쁨과 행복과 즐거움을 좇기보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원무궁한 차원의 생명과 안식과 구원을 사랑하시므로 고뇌와 애통과 심적 갈등 곧 십자가의 고난의 길을 걸으셨으니 이것이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며 이는 지식적으로, 머리로만 알고 마는 그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찾아감에 있어서 이정표가 되어주는 참된 하늘의 지혜이며 하나님께서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 사람에게 알리고자, 전하고자 하신 참된 의(義)니 이것이 하나님을, 그리스도를 믿는 진정한 믿음이며 이에서 벗어난 열심과 충성과 봉사와 기도와 찬송과 제사는 오직 자신, 사람의 영광(유익,이익)과 의(로마서 10장2~4절)를 세우기 위한 것임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