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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교훈 안에 2019. 8. 19. 16:09

오늘은 사도행전 10장2절에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 에서 "하나님(God)"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하나님은 영(요한복음 4장24절)이시니~ ", "하나님은 말씀(요한복음 1장1절)이시니라.", "하나님은 오직 화평의 하나님(고린도전서 14장33절)이라.", "하나님은 하나(갈라디아서 3장20절)이시니라.", "하나님은 빛(요한일서 1장5절)이시라.", "하나님은 사랑(요한일서 4장8절)이심이라." 하는 것처럼 "하나님" 을 수식하고 표현하는 말들은 무수히 많이 있으며 이를 모르는 사람 또한 없겠지만 사람(인생) 스스로가 마냥 진실되고 참된 것만은 아니라 기분에 따라서, 어떤 성향이나 신념에 의해서, 계산(유익,이익)에 따라서, 성공이나 야망에 눈이 멀어서, 자신의 어떤 기준이나 관점에 의해 시시때때로 변하거나 다른 색(유다서 1장7절)을 입혀서 사람의 권위와 명예와 재력과 권력을 쌓는데 유용한 칼자루로 사용이 되었던 것이 사실이며 하지만 제아무리 이 색, 저 색 색을 입혀서 이를 바라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구분하기 어렵게 해놓았다고 할지라도 만유(에베소서 4장6절) 가운데 계시며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안에 깃드심(고린도후서 5장1~2절)으로 회복(사도행전 3장21절)하고자 하시는 것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시니.....

중요한 것은 고린도후서 5장21절에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하나님의 영(누가복음 4장18절)이 임하시고 하나님의 신(이사야 61장1절)이 기름붓듯 내렸던 "그리스도" 로 말미암아 죄 많고 악하며 불의와 불법이 가득한 우리 사람(인생)들을 의(義)가 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이시니 여기에서 "죄를 삼았다." 하시는 것은 사람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그 마음을 다스리고 제어하고 조절하고 절제하여 어떤 상황(입장,처지)에서도 순화(순하게 받아들임)하고 승화(악을 선으로 바꿈)시킬 줄 알지만 극박하고 극적인 상황에서는 어김없이 미워하고 비방하고 사나워져서 다투고 때리고 침밷고 곤욕을 주며 함부로하기를 서슴치 않는 죄와 악과 불의의 불법의 길을 택하여 죄를 삼았던 것은 우리 사람이며 그러나 그러한 그들(유대인), 사람들과 똑같이 되어서 치고 박고 미워하고 비방하고 분노에 휩싸여 침 밷고 함부로하였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마음을 다스리고 제어하고 조절하고 절제하여 순화하고 승화시켜 입으로 범죄치 않으려 잠잠(시편 39편1~2절)하였으며 하나님의 길 곧 계명(마가복음 12장31절)과 법(로마서 13장10절)을 묵묵히 지켜 행하셨으니 이는 무슨 죄가 있어서도 아니요 설령 무슨 죄가 있다고 할지라도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용서하심과 같이 용서(골로새서 3장12~14절)하기를 바라고 원하시는 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뜻이지만 다스려지지 않아서, 제어가 안되어서, 조절이 안되고 절제가 안되어서 죄악으로 내리 달리며 불의와 불법으로 치달았던 것은 우리 사람(인생)이니 그러지 말고 잠잠할 줄 알며 묵묵히 걸을 줄 아는 본보기를 보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믿는다고 외치며 부르짖는 사람들이 말로만, 입으로만, 혀로만 "주여, 주여" 할 것이 아니라 그 본과 자취를 좇아서 지켜 행할 줄 알게 될 때에 우리 사람에게 하나님의 의(義)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 바로 심판(야고보서 2장12~13절)이 없고 징계가 없음으로 하여 죄악을 행하기에 담대하고 불의와 불법을 행하기에 용감하였던 것은 우리 사람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래서 미가서 6장6~8절에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를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하고 쓰고 있듯이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베드로전서 1장17절)로 취하지 않으시지만 우리 사람은 외모(재력,학력,권력)를 중요시하여 이를 취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사람의 생각으로 하나님께 돈(헌금)을 많이 드리는 것이 기뻐하시고 기도에 응답해주시며 충성과 열심의 기본 자세이며 공력(공덕)을 쌓는거라 여기지만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에게 구하시는 것은 자신의 기분이나 성향(신념)이나 계산(유익,이익)이나 야망(성공)에 의해 좌지우지 되지 말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지지 말아서 오직 마음 만큼은 말석(末席)에 두어 공의(정의,공평)를 행하며 인자(仁慈)를 사랑하여 이를 행할 줄 아는 그것이니 그러한 사람으로 하나님의 집으로 삼으시고 안식처(이사야 66장1~2절)로 삼아서 거기에 깃들기를 바라시는 것이며 그러할 때에 우리 사람은 하나님의 영(靈) 곧 성령(聖靈)을 덧입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비로소 하나님은 우리의 진정한 "하나님(고린도후서 6장16절)" 이 된다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로마서 14장17~19절에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믿지 아니하는)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하는 것처럼 먹고 마시는 성찬식과 같은 예식은 절차(순서)에 따라 행하는 형식에 불과할 뿐 이러한 것으로 하나님께 우리 사람의 마음을 온전히 드리며 올릴 수 없으니 마음에는 없어도 겉으로만 꾸며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이며 오직 어디에 있든지 그 서 있는 곳에서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마음(빌립보서 2장3~5절)으로 의(義)와 평강과 희락으로 행하면서 이것으로 서로 덕을 세울 수 있어야 하나님께로 칭찬이 있으리니 하나님은 서로 투기하고 다투며 미워하고 분노하고 논쟁하며 함부로하는 이러한 어지러움(고린도전서 14장33절)의 하나님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대하여, 사람이 사람을 대하여 헤아리고 살펴서 이해하여 배려하고 양보하려 힘쓰는 화평의 "하나님" 이라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