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사도행전 10장46절)
오늘은 사도행전 10장46절에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에서 "방언(方言)"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방언" 이라 함은 사도행전 2장1~4절에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보여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2000년 전에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다시 나타나셨다가 하늘로 올리우신(사도행전 1장11절) 후 오순절날에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인 믿는 자들에게 성령 충만함으로 말미암아 "방언" 으로 말하기 시작한 것이 현재, 오늘날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고린도전서 12장8~11절에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다른 이에게는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각종 방언 말함을,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하는 것처럼 "방언" 은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믿는 우리 사람들에게 주신 은사로써 이러한 각종 은사들은 더욱더 각자의 믿음을 돈독하게 하는 역할을 하였으니.....그러나 믿는 모든 사람들이 다 사도이며 교사이며 능력을 행하며 방언을 말할 수는 없으며 분명 믿음이 연약하고 어리고 부족한 지체(고린도전서 12장27~30절)는 있기 마련이며 또한 언제나 이러한 은사 아래에 있을 것이 아니라 고린도전서 12장 마지막 절에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하고 쓰고 있듯이 우리에게는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다시 오신다(임하신다)고 하신 약속(언약,예언)이 남아있고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유대(이스라엘)땅에 처음 오신 이후로 2000년이 흐른 지금 이제는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히브리서 5장12절) 다시 오시는 때는 하나님에 관한 모든 것을 밝히 드러내고 나타내서 이르시는(요한복음 16장25절) 때이며 밝히 드러내고 나타내서 이르시는 주체는 보혜사 곧 진리의 성령이 임하시고(누가복음 4장18절) 내리신(이사야 61장1절) 그리스도이시며 또한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보내시는 성령(요한복음 14장26절) 즉 또 다른 보혜사(요한복음 14장16절)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천국)를 찾아가는 길(베드로전서 3장21절)과 방법(지혜)을 제대로, 똑바로 알아야 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우리가 받아야 할 성령으로 인한 가장 큰 은사요 제일 좋은 길이니 고린도전서 14장8~9절에 "만일 나팔(방언)이 분명치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쟁을 예비하리요. 이와 같이 너희도 혀로서 알아듣기 쉬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그 말하는 것을 어찌 알리요 이는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라." 하는 것처럼 제아무리 성령 충만함을 입어 방언이 터져 나오고 말한다고 할지라도 그 이르는 방언의 의미 즉 나팔소리의 뜻을 알지 못한다면 어찌 경계과 거울(고린도전서 10장11절)로 삼으며 어찌 교훈(로마서 15장4절)이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으로써 이제는, 지금은, 오늘날에는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이 은사가 되는 시대는 끝났으며 분명한 말로 하나님에 관하여, 하나님 나라(천국)에 갈 수 있는 방법(지혜)을 알아들을 수 있도록 알리고 전하는 것이 이 세상에 속한 언어가 아닌 하나님 나라 언어 즉 "새 방언(마가복음 16장17절)" 이 되리니 19절에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이제는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을 말하고 쏟아낸다고 하여서 하나님, 하나님 나라(천국)을 찾아갈 수 없으며 인도할 수 없다는 것을 잡아 내셨으면 한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3장1~3절에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하는 것처럼 이 세상에 사랑으로 행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하지만 우리 사람(인생)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사랑으로 행하기도 하지만 동전 뒤집듯, 손바닥 뒤집듯 못마땅해지거나 마음에 안들거나 언짢아지면 미워하고 원망하고 분노하고 비방하고 훼방하고 다투고 함부로하기를 서슴치 않는 죄와 악과 불의와 불법도 행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에서 기록하신 , 그리스도께서 기록하신 말씀대로 지켜 행하신(히브리서 10장7절) "서로 사랑하라." 하신 말씀의 뜻을 제대로 올바로 알았다면 이리 행하지는 않았으리라. 그런즉 온전한 사랑이 없으면서, 제대로 사랑으로 행하지 못하면서 천사의 말을 한다는 것은 두 얼굴로 행하는 이중인격자요 방언을 말한다는 것은 그져 자랑하고 내세우는 것에 불과하리니 "서로 사랑하라." 하신 이 계명(마가복음 12장31절)과 완전한 법(로마서 13장10절)이 그 어떤 은사보다도 가장 크고 좋은 것으로써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고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관용과 친절과 겸손과 온유와 긍휼과 사랑으로 베푸는 것은 "사랑" 이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당연히 할 일" 이라 표현하는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방(남,타인,다른 사람)을 헤아리고 이해하여 배려하고 양보할 수 있는 그것이 참된 사랑이며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성경 66권을 통하여 깨닫기를, 일깨우기를 바라고 원하신 "서로 사랑하라." 하신 말씀으로 행할 수 있게 되며 그 참 사랑을 알게 될 때에는 이것이 가장 큰 은사이므로 그 이전의 모든 예언도, 방언도(고린도전서 13장8~10절), 지식도 폐한다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그러므로 로마서 5장7~8절에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해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는 것처럼 부모는 생떼같은 자식(자녀)을 대신해서 죽을 수 있는 사랑에서 비롯된 힘이 있으며 그러나 이 외에는 누구를 대신하여 죽어줄 수 있기는 참으로 어렵고 드문 일이며 우리 사람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마음에 불일듯 이는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좌지우지하고 싶은 육체의 욕심(정욕)으로 말미암아 그 소욕 곧 죄와 악과 불의와 불법을 행하지 않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다 죄인(디모데전서 1장15절)이며 죄인된 우리 사람 곧 그 당시에는 유대인(이스라엘)들이었지만 유대인들의 미워하고 비방하고 때리고 침밷고 함부로(무시,멸시,업신여김)하는 소위 갑질의 모습은 그 때나 지금이나, 거기나 여기나 뭐 별반 다른 것이 없으니 여하튼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사람과 똑같이 되어서 미워하고 비방하고 때리고 침밷고 더 큰목소리로 싸우고 함부로하였던 것이 아니라 묵묵히 그 모든 죄와 악과 불의와 불법의 비난소리를 다 받아들이고 잠잠하였으니 싸울 줄 몰라서, 미워할 줄 몰라서 함부로할 줄 몰라서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사랑하라." 하신 계명과 법을 지켜 행하시기 위하여 다만 마음속으로는 숨은 속사람의 정욕과 소욕을 버리고 비우고 죽이는 십자가의 고난의 길을 걸으셨으니 하나님의 우리 사람을 향한 참된 사랑을 몸소 실천하여 본보기를 보여주시기 위하여 못나고 죄인된 우리들을 대신하신 것이며 또한 그리스도께서는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참된 "방언" 이심을 아셨기 때문이며 이는 그리스도를 위하심이 아니라 우리 또한 그 본과 자취를 좇아서 행하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