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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으라...(사도행전 11장7절)

교훈 안에 2019. 11. 11. 10:59

오늘은 사도행전 11장7절에 "또 들으니 소리 있어 내게 이르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으라 하거늘~ " 에서 "먹다."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 생물 그리고 우리 사람(인생)은 반드시 살기 위하여, 살아가기 위하여 먹어야 하고 때로는 먹기 위해서 살기도 하니 맛나는 산해진미(山海珍味)를 먹으려고 맛집을 찾아다니면서 더불어 좋은 구경과 여행을 하는 것은 삶의 낙(樂)인 것처럼 우리의 영혼(靈魂) 즉 정신 세계를 지배하며 움직이고 있는 "마음과 생각" 도 반드시 살기 위하여, 살리기 위해서 필요한 양식(누가복음 11장3절)을 먹어야 하리니 우리 사람의 육신(몸,신체)을 먹이고 살찌우는 것을 전하고 알리기 위해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에서 기록하여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공중에 나는 새(마태복음 6장25~31절)도, 들의 백합화도, 들풀도 먹이시고 입히시는데 하물며 우리 사람은 더욱 그러하지 않겠으며 사지(四肢)가 멀쩡한데 어딘들 밥벌어 먹지 못할까? 이러한 것은 단지 표면적인 것에 불과하며 그 이면(裏面)에 하나님의 말씀의 계명과 법을 먹게 하심으로 우리 사람의 영혼을 윤택하게 해서 하나님께 있는 영원무궁한 생명으로 살게하고자 하여 "먹다" 에 관하여 기록하여 주신 것임을 염두에 두시길 바라며.....   

에스겔서 3장1~2절에 "

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받는 것을 먹으라. 너는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고하라 하시기로 내가 입을 벌리니 그가 그 두루마리를 내게 먹이시며~ " 하고 쓰고 있듯이 에스겔은 이상(에스겔서 1장1절) 중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두루마리를 입을 벌려 먹이시고 그 먹은 것을 비록 이마가 굳고 마음이 강퍅하여 네 말을 듣고자 아니하리니 이는 내 말을 듣고자 아니할지라도 다른 곳이 아닌 이미 하나님을 믿고 있는 이스라엘(7절) 곧 하나님의 백성에게로 가서 먹은 것을 전하라고 하시니 이미 그들은 겉으로는 하나님을 믿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다른 무언가에, 죄와악과 불의와 불법에 사로잡혀(11절) 강퍅해지고 완악하며 패역한(9절) 그들에게 전하라고 하신 것이며 그런즉 먹고 먹이신다는 것은 1

0절에 "

내가 네게 이를 모든 말을 너는 마음으로 받으며 귀로 듣고..." 하는 것처럼 마음으로 받아 들이고 깨달아 일깨워 우선, 먼저는 자신의 영(靈)의 생명을 보호하고 지키며 살게 하고 더 나아가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다고는 하지만 말뿐, 혀로만 할뿐, 입으로만 할뿐 미우면 미워하고 원망하고 분노하며 못마땅하면 비방하고 훼방하고 때리며 언짢으면 사나워져서 다투고 함부로하기를 서슴치 않는 죄와 악과 불의와 불법에 종노릇하며 사로잡혀 있는 하나님 백성(자녀,성도)들을 일깨우고 돌이켜서 고쳐 행하게 하여 살게하고자 하심이니..... 중요한 것은 이 에스겔서 3장의 말씀은 되어진 일이 아니라 이상(異狀) 가운데, 환상 가운데, 비몽사몽간에 알리시고 되어질 일들을 미리 보이신 약속(언약,예언)의 말씀으로써 이 말씀대로 되어진, 이루어진, 행하신 이는 에스겔서를 기록한 에스겔이 아니라 에스겔을 빙자(호세아 12장10절), 비유하여 "그리스도(누가복음 24장44절)" 께서 그리하실 것을 나타내 보이신 것이니 누가복음 7장34~35절에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이 말씀은 참으로 옳으니 이 세상에 먹기를 탐하며 포도주(술)을 즐겨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특히나 몸에 좋은 보양식이라고 하면 어디든 찾아가 먹을 것이며 가장 비싸고 좋은 술이라면 그 자리를 마다하지 않는 것이 우리 사람인데 그렇다고 부족하며 하찮게 여기고 좀 어리석고 가진 것이 없는 사람과는 또 멀리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솔직한 심정이지만 오히려 그러한 부족하고 나약하고 어리석은 사람들과 친구가 되어 함께 하고자 하시는 것은 그리스도이시며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두루마리" 를 먹고 마심으로 말미암아 가능한 일이니 더 나아가서 요한복음 6장9~11절에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저희의 원대로 주시다." 하는 것처럼 그리스도는 절대로 없는 것도 뚝딱 생기게 하는 도깨비도 아니요 또한 다른 모양으로 뿅하고 만들어내는 마술사도 아니니 오직 수많은 사람을 먹이고도 남은 것이 있을 수 있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는 하나님의 두루마리 말씀 뿐이며 이를 먹고 마시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요한복음 6장48절에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다." 하시면서 51절에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먹고 마심으로 듣는 귀가 있어서 듣고 마음으로 받아 지켜 행하여 그 영혼으로 살게할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의 먹고 마심의 목적이요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임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계시록 10장10~11절에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책을 갖다 먹어 버리니 내 입에는 꿀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저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 하는 것처럼 우리에게는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다시 오신다(임하신다)고 하신 약속(언약,예언)이 남아있고 오늘날에도 에스겔과 같이 다시 오실(임하실)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 두루마리 책을 먹을 것을 미리 보여 주신 사람이 있으니 그리스도께로 받아서 계시록을 기록한 "사도 요한" 이며 그러나 사도 요한은 빙자, 비유한 인물이며 그렇게 두루마리 말씀을 먹고서 하나님의 백성(자녀,성도)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오늘날에는 땅 끝(사도행전 1장8절)까지 기존의 가르치고 전하고 배워 온 것들만이 아닌 아닌 부족하고 모자랐던 참 형상(실상)과 온전하신 하나님의 뜻을 다시 가르치고 전하고 알리며 앞으로 되어질 것들에 대하여서도 다시 예언하는 일이 있으면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다시 오신 것을 미루어 알 수 있는 것이니 다시 말해서 우리 사람과 똑같은 죄 있는 사람의 모양(로마서 8장3절), 죄의 종의 형체(빌립보서 2장7~8절)를 입고 태어나 한 사람 "예수" 가 하나님의 영(이사야 61장1절)이 내리시고 임하심(누가복음 4장18절)으로 "그리스도" 가 되신 것처럼 다시 오신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영이 내리시고 임하시며 그러한 그리스도의 영(로마서 8장9절) 즉 그 가르침, 교훈(요한2서 1장9절)안에 거하여 서로 미워하고 원망하고 분노하고 비방하고 훼방하고 다투고 함부로하기를 서슴치 않는 죄와 악과 불의와 불법을 벗어버리고 그리스도로 옷(갈라디아서 3장27절)로 옷 입는 것이 그리스도의 영(靈)이 임한 것이요 그런즉 다시 오신 것이니 중요한 것은 야고보서 1장22~26절에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 것이라." 하고 쓰고 있듯이 먹기만 하고 들을 귀가 있어서 듣고 마음으로 받지 못하여 그릿도의 가르침, 교훈 즉 그 십자가의 도를 본받아서 지켜 행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믿음은 헛 것이요 거짓이요 속이는 자이니 우리로 두루마리, 말씀의 양식을 주어 먹게 하신 것은 지켜 행하게 하기 위함이며 지켜 행하여야만이 우리 영혼의 살리며 살게 하고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고자 하시는 구원이라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