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오늘은 창세기 2장15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 에서 "다스리다." 와 "지키다."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우리 사람(인생)을 "만물의 영장(靈長)" 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만물을 다스리는 우두머리, 어른이라는 의미로써 창세기 1장28절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 하신 것처럼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에게 주신 권한으로 하나님의 손으로 만드신 만물을 우리 사람에게 주어서 다스리게 하셨으니... 그러나 지금의 우리 사람의 모습은 만물을 다스린다기보다는 부끄럽게도 인간의 유익과 이익, 사람의 욕심을 위해서 약탈하고 제압하고 포획남용하며 함부로하고 있다고 하는 편이 맞는 표현일 것이며 더욱이 로마서 7장18~19절에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하고 쓰고 있듯이 우리 사람의 유익과 이익과 여러 욕심에 치우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온유와 관용과 이해와 배려와 양보와 같은 선(善)으로 행하기 보다는 미워하고 원망하고 분노하고 마녀 사냥하듯이 비방하고 훼방하고 사나워져서 다투고 함부로하고 갑질하기를 서슴치 않는 죄와 악을 행하고 있으니.....
그래서 잠언서 4장23~24절에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궤휼을 네 입에서 버리며 사곡을 네 입술에서 멀리하라." 하시는 것처럼 중요한 것은 가장 먼저 우리 자신의 마음을 죄와 악으로부터 지켜서 말로는 상대방을 저주(미워하고 비방하는 말)하는 사곡한 입술를 버리며 멀리하고 행실에 있어서는 보이는 앞이나 잘 보여야 하는 곳에서와 보이지 않는 뒤에서와 잘 보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곳에서가 동일한 선(善)으로 하여야 하리니 이는 절대로 하루 아침에 버리고 멀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삶 속에서, 생활 속에서 훈련과 연습을 통한 노력이 필요하며 버리고 멀리하려고 하는 피땀눈물의 노력이 바로 "십자가의 고난" 이요 "십자가의 도(道)" 로써 도 닦는다고 아무도 없는 산 속이나 조용한 곳에 눈 감고 명상하고 있는다고 하여 되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아무것도 건드지 않는 곳에 어느 누가 집중하지 못할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부딪혀봐야 죄와 악으로부터 자신의 마음을 지켜서 못됐고 나쁘고 부정적이고 사나운 심성을 버렸는지 멀리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니 그때서야 비로소 우리에게 남는 것은 죄와 악이 아닌 "사랑" 이요 선(善)이 될 수 있으며 고린도전서 13장1~3절에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사랑이 없이 천사의 말을 할 수 있을까? 사랑이 없이 모든 것을 구제하고 자신의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 수 있을까?
이는 근본적으로, 원초적으로 만저는 우리의 자신의, 나 자신의 마음이 선(善)으로 온전히, 완전히 변화되고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써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하는 사람을 온유와 인애와 긍휼과 관용과 배려와 양보와 이해를 베푸는 것은 "사랑" 이라 말하지 않고 "사람이라면 마땅히 할 일" 이라 표현하는 것이 맞는 것이며 참된 사랑은 아무런 보상이나 보답을 바라지 않고 미워도 원망스러워도 마음에 안들어도 못마땅해도 언짢아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방(남,타인,다른 사람)의 유익(입장,처지)과 이익(기준,관점)을 먼저 헤아리고 이해하여 온유와 인애와 긍휼과 관용과 배려와 양보와 같은 사랑으로 행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하니 그리스도께서 유대인들이 미워하고 비방하고 때리고 침 밷고 함부로하는 악함으로 대할 때에 잠잠하고 묵묵히 하였던 것은 정말로 무슨 잘못을 하였거나 무엇이 부족하였거나 죄가 있어서가 아니라 이 "서로 사랑하라." 하신 하나님의 최고한 계명, 완전한 율법을 몸소 실천하기 우리에게 본보기를 보이기 위함이며 이것이 "십자가의 도(道)" 의 완성이며 이겨내야 할 환난이요 고난으로써 요한복음 16장33절에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는 것처럼 온전한 이 "사랑" 행할 수 있을 때에가 비로서 세상을 이기는 것이며 계시록 2장26절에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 하고 쓰고 있듯이 가장 먼저는 우리 자신, 나 자신의 마음을 죄와 악으로부터 멀리하고 온전히 버려서 사랑으로, 선으로 행할 수 있을 때에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 즉 왕 같은 제사장이 되게 하여 주시는 것이며 요한복음 17장2절에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하고 쓰고 있듯이 이로써 그리스도께서 앞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대제사장이 되셨고 이는 그리스도 자신을 위하심이 아니라 우리들을 하나님 앞에 만국을 다스리는 제사장으로 세워 주시기 위하여 본보기를 보이신 것임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
p.s "그리스도 교훈안에" 유튜브(youtuve)에서 "창세기- 이스마엘과 이삭에 대하여" 를 방송하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