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창세기 2장17절)
오늘은 창세기 2장17절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에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하나님께서 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의 실과를 먹지 못하게 하신 이유는 오직 먹는 날에는 죽게되기 때문이며 "나무" 는 앞서 지난 방송에서 살펴 보았듯이 예레미야 5장14절에서 "사람" 이라 표현하여 기록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으며 그렇다면 나무의 실과 즉 열매는 결실을 뜻하기 때문에 사람에게 있어서 결실은 그 마음과 생각에 담겨 있는 것이 최종적으로 나오게 되는 "행실", "행동", "행위" 가 되기 때문에 "실과를 먹는다." 는 것은 그 행실을 따라 배워서 그와 똑같이 행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사람의 행동은 그 사람의 사상과 이념과 가치관과 어떤 기준과 관점과 성향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므로 그 사람의 사상과 이념과 관점을 배웠다고 말할 수 있으니...
그렇다면 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는 과연 누구인가? 하는 것으로써 먼저 창세기 3장13~14절에 "여자가 가로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 하시는 것처럼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의 실과를 먹도록 권유한 것이 바로 "뱀" 으로써 "뱀" 이며 이 "뱀" 을 계시록 12장9절에서는 "큰 용이 내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쫓기니라." 하고 기록하고 있으니 여기에서 "뱀" 이라 함은 코브라 뱀, 누룩 뱀, 구렁이와 같은 그러한 뱀이 아니라 "용" 즉 영물(靈物)이요 악령(惡靈)을 의미하며 사람에게는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영(靈)이 임하고 내리지만 성경 66권 하나님의 말씀에서는 성령이 임하고 내리면 성령이 충만한 좋은 나무, 선한 나무(누가복음 8장15절)라 기록하고 있으며 악한 영(靈)이 임하고 내리면 악령이 충만한 악한 나무, 못된 나무가 되는 것이며 중요한 것은 그 임하고 내린 영(靈)이 성령인지, 악령인지 보이지 않는 영(靈)인데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하는 것으로써 앞서 지난 방송에서 "나무" 에 대하여 살펴 볼 때에 누가복음 6장43절에서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하시면서 45절에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하신 것처럼 물론 우리 사람은 착하고 너그럽고 곱고 좋은 마음으로 선(善)을 행하며 그러한 말도 하지만 또한 못마땅하거나 언짢아지거나 마음에 안들고 미워지면 동전 뒤집듯 마음이 뒤집혀서 그 착하고 좋았던 마음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분노하고 마녀 사냥하듯이 비방하고 훼방하고 사나워져서 다투고 함부로하고 갑질하는 악(惡)도 행하며 못됐고 나쁜 말도 하기 때문에 이러한 육체의 욕심을 육체의 소욕(갈라디아서 5장16~17절)이라 기록하고 있으며 이것이 "악령의 소욕" 이며 과연 이러한 우리 사람을 선하다고 해야 할까? 악하다고 해야 맞을까? 한 집에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듯이 우리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주체가 무엇인지를 인지하고 자각을 해야 하며 육체(악령)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이 함께 거할 수는 없다는 것을 염두에 두시길 바라며.....
그래서 누가복음 4장18절에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 하고 쓰고 있듯이 이사야 61장에서는 "주의 신(神)" 이라 표현하여 기록하고 있으며 이는 주의 성령 곧 그 사상과 이념이 그 사람에게 있을 때에 나오게 되는 말과 행실의 정석(定石)에 관하여 기록하고 있는 말씀으로써 또한 말이 앞서기 보다는 행동으로 그 자유함을 몸소 보여주고 실천하여 본보기가 되는 것에 방점이 있으며 여기에서 "자유" 라 함은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구분 못하고서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하는 그러한 "자유로움" 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는 상대방의 입장이나 처지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존중함이 없는 오만하며 "방자하다" 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는 것이며 로마서 8장21절에서 기록하고 있는 "하나님의 영광의 자유" 즉 생명과 안식과 구원에 대하여 자유하는 것을 의미하며 주의 성령이, 신(神)이 임하고 내린 것을 우리는 "신내림" 이라 하며 남에게 다른 사람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서는 먼저는 자기 자신이 주의 성령의 임하고 내려서 그 눌리고 포로된, 종노릇하였던 죄와 악에서 벗어나 자유함을 얻어야 다른 사람도 돌아볼 수 있는 눈과 마음이 생기게 되기 때문에 내 코가 석자인 상태에서는 돌아볼 여유조차 없다는 것이니 그런즉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에게 자유 즉 생명과 안식과 구원을 주신 것은 먼저 성령이 임하심으로 성령의 소욕으로써 행하셨기 때문이며 성령의 소욕의 근본은 온유하고 인애하고 긍휼하고 관용하고 화평(배려,양보)하는 사랑에서 비롯되니 나무로 표현하자면 착하고 좋은 나무를 넘어서 "생명 나무" 가 되는 것이며 요한복음 15장5절에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 하시는 것처럼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다." 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그 본과 자취를 좇아서 그와 같이 행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와 같이 행함으로 과실을 많이 맺는다면 그 사람 역시 착하고 좋은 나무을 넘어서 생명 나무 과실이 되어 다른 사람에게 주어 먹게 하여 소성케 하는 것이며 그런즉 생명 나무 실과를 먹기를 권유하신 것은 "하나님" 이시며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의 실과를 먹도록 권유한 것은 "뱀" 곧 "용", 악한 영(靈)이라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오늘 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고자 한 가장 큰 이유는 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를 계시록에서는 과연 어떻게 표현하여 기록하고 있는지 알기 위함이니 계시록 13장1~2절에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하시는 것처럼 생명 나무이신 그리스도에게 살게 하는 생명의 권세(요한복음 17장2절)를 하나님 곧 성령으로부터 받아서 주신 것처럼 멸망과 파멸에 이르게 하는 사망의 권세는 용에게 받은 7머리 10뿔 짐승이니 그 짐승을 창세기에서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라 표현하여 기록하고 있으니 표현 방법만 달리 했을 뿐 그 속을 들여다 보면 처음(창세기)부터 끝(계시록)까지 성경 66권을 기록하신 주체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사람도 어떤 책 소설이나 철학, 수필을 쓸 때에는 일관된 자신의 생각과 가치관을 써내려 가는 것처럼 성경 66권도 여기 다르고 저기 다를 수 없는 것이며 다만 여느 책들과 차이가 있다면 보이지 않는 영(靈), 성령인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여주기 위하여 보이는 만물(로마서 1장20절)을 들어서 빗대어서 기록하셨으므로 그 속뜻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