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안 땅 일곱 족속을 멸하사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시기까지...
오늘은 사도행전 13장19절에 "가나안 땅 일곱 족속을 멸하사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시기까지 약 사백오십 년간이라." 에서 "가나안(Canaan)"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가나안" 은 오늘날의 이집트와 시리아 사이에 있으며 이스라엘과 끊임없이 대립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지역을 의미하며 이 "가나안" 에 관하여 6000년 전 하나님께서 모세의 때에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가나안으로 들이고자 하셨으니 그 이유는 민수기 14장8절에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하신 것처럼 애굽에서의 430년간 종노릇하던 것에서 탈출하여 벗어나기만 하면, 아무것도 없는 광야를 지나가기만 하면 그 곳에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 이 있기 때문이며 또한 여호수아 1장13절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안식을 주시며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시리라 하였나니 너희는 그 말을 기억하라." 하고 쓰고 있듯이 애굽을 벗어나고 광야를 지나왔으므로 이제는 모든 슬픔, 서러움, 아픔은 잊어버리고 그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 에서 안식을 주어 편히 쉬게 하고자 하셨기 때문이니 그러나 무조건 들어가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 곧 신명기 11장8~9절에 "너희는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모든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너희가 건너가서 얻을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을 것이며 또 그와 그 후손에게 주리라고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애굽을 탈출하게 하신 것은 애굽에서 종노릇하던 종의 근성을 버리고 탈출하게 하고자 하신 것이며 광야를 지나게 하신 것은 버릴 것은 버리고 비울 것은 비우게 하기 위함이며 그런즉 우리 사람(인생)에게 바라고 원하시며 기뻐하시는 것은 죄와 악을 떠나서(에스겔서 33장19절) 하나님이 계명과 법을 지켜 행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지만 실상은 지금도 아직도 미우면 미워하고 원망하며 마음에 안들면 비방하고 훼방하며 못마땅해지면 사나워져서 다투고 함부로하고 갑질하는 죄와 악의 종이 되어 종노릇을 하며, 죄를 범하고 악을 행하게 만드는 육체의 욕심(욕구,욕망)을 좇아가고 있으니 그 때나 지금이나 거기나 여기나 별반 달라진 것이 여전히 탈출한 것도 버리고 비운 것도 없음으로 하여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약속의 땅 "가나안" 은 현재, 오늘날 젖과 꿀은 커녕, 쉼이 있는 안식은 커녕 날마다 갈등과 분쟁과 테러와 전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폐허의 땅이 되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래서 히브리서 4장8~9절에 "만일 여호수아가 저희에게 안식을 주었더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있도다." 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눈물(계시록 21장4절)과 사망과 아픔을 닦아주시며 안식할 때가 남아있다는 것은 6000년 전 여호수아에게 주었던 "가나안" 도 아니요 2000년 전 그리스도의 때도 아니요 다른 날 즉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다시 오신다고 하신 세상 끝, 마지막 때 오늘날을 위하여 모세의 때에 여호수아와 몇 명이 들어갔던 그 때의 "가나안" 을 빗대어 그 이면(裏面)에 있는 온전한 참 형상의 "가나안" 에 대하여 하신 말씀으로써 히브리서 11장8절에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 16절에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이미 모세의 때 훨씬 이전 아브라함의 때에 아브라함은 오직 하나님의 이 "가나안" 에 대한 약속(언약,예언)의 말씀을 바라보고 믿음으로만 나아갔으니 이는 땅(지구) 어디(팔레스타인)에 있는 "가나안" 을 말씀하심이 아니라 하늘(하나님 나나)에 있는 더 나은 본향 즉 하늘로부터 오는 "예루살렘 성(계시록 21장2~4절)" 이며 이를 우리 사람이 덧입을 때(고린도후서 5장1~4절)에 사망이 생명에게 삼킨 바 되어 사망도, 눈물도, 아픔도 벗어나고 지나가 온전히 쉼이 있는 안식 곧 "가나안" 에 들어가는 것이니 이것이 "구원" 의 참된 의미이며 히브리서 11장39~40절에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신 것처럼 오직 세상 끝, 마지막 때에 살아서 하나님을 믿으며 오직 살아있어서 두 번째 다시 오시는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는 우리들을 위하여 모세의 때를 빗대서 그림자(표면적,피상적)로 보여주신 것임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사도행전 7장4~5절에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 아비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시방 거하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 그러나 여기서 발 붙일 만큼도 유업을 주지 아니하시고 다만 이 땅을 아직 자식도 없는 저와 저의 씨에게 소유로 주신다고 약속하셨으며~ " 하고 쓰고 있듯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이 젖과 꿀이 흐르는 안식의 땅 "가나안" 에 관한 약속은 그 아들 이삭의 때를 지나, 이삭의 아들 야곱의 때를 지나, 야곱의 열두 아들 중 요셉의 때를 지나, 요셉으로부터 비롯된 이스라엘 자손들이 애굽에서의 430년간 종살이를 하던 모세의 때를 지나, 여호수아의 때를 지나, 사사시대를 지나, 사울 왕으로부터 시작된 왕국시대를 지나, 2000년 전 유대 땅에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때를 지나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다시 오신다고 하신 세상 끝, 마지막 때 오늘날에 이르렀으니 참된 아브라함의 자손은 아브라함이 그러하였듯 하나님의 계명(마가복음 12장31절)의 법(로마서 13장8~10절)을 온전히 지켜 행하며 순종함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라야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할 수 있으며 그 때 그 시대 그 세대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아서 여전히 죄와 악의 종노릇을 하며 버리고 비워 벗어나지 못한다면 안식할 때가 남아있다 할지라도 온전한 참 형상의 "가나안" 에,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