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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지니라...

교훈 안에 2020. 12. 20. 11:00

오늘은 창세기 4장4~5절에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 에서 "제물(祭物)"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제물" 이라 함은 제사 때 조상님께 혹은 신께 바치기 위해 사용되는 동물(양,염소... 등등등)이나 여러가지 음식을 의미하며 이를 "제수(祭需)" 라고도 하며 세상에는 조상에게 올리는 제사, 장사가 잘 되게 해달라고 드리는 고사, 마을에서 올리는 당산제, 기우제 등등등 종류가 많이 있어서 그 때마다 제사의 "제물" 이나 "제수(第需)" 로 제삿상에 싱싱하고 좋은 곡식, 과일, 고기, 생선, 나물을 올리고 있으며 중요한 것은 성경 66권 하나님의 말씀에서도 가인이 그러하였듯, 아벨이 그러하였듯 하나님께 첫 수확한 물건 즉 가인은 농사꾼이니 곡식을, 아벨은 양 치는 자이니 양을 제물로 드렸으며 그 구체적인 제사 방법이나 사용되는 제물, 제수 즉 제사의 예법에 관하여는 "모세의 율법" 에 기록하고 있으며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왜 아벨의 제물은 받으시고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을까? 하는 것이며 또한 제사를 드리는 목적과 이유에 있어서는 세상에서 드리고 있는 제사와 하나님께 올리는 제사와는 차이가 있어서 세상에서 드리는 제사는 후손들 잘 봐달라, 잘 되게 해달라는, 돈 잘 벌어서 부자되게 해 달라는, 좋은 직장 좋은 학교에 들어가게 해 달라는 목적을 담고 있는 반면 하나님께 올리는 제사는 소나 양이나 염소와 같은 짐승을 희생 제물로 잡아서 또는 좋은 곡식이나 과일을 올려서 삶 속에서 지었던 범하였던 죄를, 생활 속에서 행한 악을 용서해 달라고 하는 오직 "죄 사함" 에 관한 개념이기 때문에 "속죄제", "속건제" 라고 말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며 그런즉 그 제물들은 "속죄물" 이 되는 것으로써 제사의 종류에는 짐승을 잡아 피는 뿌리고 고기와 내장은 태우는 번제, 화제가 있고 곡식으로 드리는 소제, 과일로 드리는 전제가 있으며 이 번제는 이미 노아의 때부터 시작해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때에도 해왔던 제사법이며 이를 모세가 하나님께 받아서 율법으로 기록한 것이니... 지금도 세상에서는 여전히 제사 때마다 제물, 제수 음식을 만들어서 올리고 있으며 하나님을 믿으며 섬기는 교회나 성당, 예배당, 성전에서는 지금 드려지고 있는 제사가 "예배" 이며 제물로 드려지고 있는 것이 바로 "헌금" 이며 하지만 오늘날 교회에서 예배(제사)의 목적이 "죄 사함" 이기 보다는 그 기도의 제목이 사업 번창이나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직업을 얻게 해 달라고, 돈 잘 벌게, 자식(자녀)들 좋은 학교에 갈 수 있게 해 달라 하며 헌금하는 것이 더 많기 때문에 이러한 요행이나 행운에 가까운 복(福)을 받기를 원한다면 교회나 성당으로 갈 것이 아니라 다른 신(神)을 찾아가는 것이 맞으니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에 대한 회개함과 악에 대한 돌이킴에 귀를 기울이시고 그 목소리에 응답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시길 바라며.....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받고자 하시며 응답하시는 참된 제사(예배)와 온전한 제물(헌금)은 로마서 12장1절에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하시고 요한복음 4장24절에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하시는 것처럼 비록 "너희 몸" 이라 표현하여 기록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는 영(靈)이시기 때문에 "너희 몸" 이라 읽고 "우리의 마음" 이라고 쓰는 것이 맞는 것이며 또한 눈에 보이는 제물(헌금)이 아닌 우리 사람의 보이지 않는 잘못과 허물과 죄에서 돌이켜서 고쳐 행하려는 마음을 제물로 언제 어디서나 드릴 수 있는 그 곳이 바로 온전한 제사요 제물이니 아직도 지금도 못됐고 나쁘고 악한 마음, 꼬이고 부정적이고 사나운 심성에서 비롯된 미워하고 원망하고 분노하고 비방하고 사나워져서 다투고 함부로하고 갑질하던 죄와 악의 마음을 버리고 비워서, 이러한 마음을 태워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착하고 좋은 마음(누가복음 8장15절)으로 바뀌고 변화되는 것이 하나님께서 받고자 하시는 산 제사요 바쳐야 할 향기로운 제물(에베소서 5장2절)이며 그래서 히브리서 10장1~3절에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하게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제사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하시면서 8~9절에 "주께서는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는 원하지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16~18절에 "그 날 후로는 그들과 맺을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 그들의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하시는 것처럼 그 제물이 짐승(양,염소)이나 곡식이나 과일이 아닌 헌금으로 바뀌었다고 하여, 무릎을 꿇고 절을 하는 그러한 제사가 예배의 형태로 바뀌었다고 하여 그것이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영적 예배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이는 여전히 절차와 순서(주보)에 입각하여 끊임없이 반복하여 매일(새벽 기도), 수요일, 주일, 월삭(정기예배,부흥예배), 절기(부활절,성탄절,추수감사절)로 모이면서 삶 속에서 미우면 미워하고 마음에 안들면 분노하고 생활 속에서 못마땅하면 비방하고 언짢아지면 함부로하고 갑질하던 죄와 악에 대하여 용서(주기도문)를 구하고 있는 모든 것이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으로써 이러한 것으로는 우리로 온전케 할 수 없는 초보적 단계이고 부분적인 차원이며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것을 원하지 기뻐하지 않으시고 오직 "서로 사랑하라." 하신 최고한 계명을 마음과 생각에 기록하여 언제 어디서나 잊지 않고 자연스럽게 나와서 지켜 행할 수 있게 되는 것이 받고자 하시는 제물(헌금)이요 비로소 우리의 죄와 불법(악)을 기억지 않으시며 죄와 악이 사하여졌은즉 다시는 용서해달라고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게 된다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11장3절에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여기에서 "더 나은 제사" 라 하심은 그 드려진 처음 익은 곡식이나 어린 양과 같은 제물(헌금)에 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무한 반복하는 제사와 제물과 번제와 속죄제를 원하지 않는다고 하셨기 때문이며 그 마음의 어떠함 즉 죄가 항상 문 앞에 엎드려져 있으니 죄와 악을 절제하고 조절하고 다스릴 수 있는 마음(창세기 4장7절)의 상태, 모습, 태도, 자세를 말하는 것으로써 그로 인하여 그 아우 아벨은 "의로운 자" 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의(義)" 라 함은 죄와 악에서 떠나 착하고 선한 양심(베드로전서 3장21절)으로 "서로 사랑하라" 하신 최고한 계명으로 행하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선택적으로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모든 좋은 것 곧 겸손과 온유와 관용과 배려와 양보와 같은 사랑으로 하면서도 힘들게 만들어 어렵게 곤란하게 만들며 밉고 마음에 안들고 못마땅한 사람에게는 미워하고 비방하고 함부로하고 갑질하는 죄와 악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무슨 일이 있어도 무조건 다른 사람의 입장과 처지를 헤아리고 이해하고 존중하여 관용과 배려와 양보로 행하는 사랑으로 할 때라야 비로서 하나님 앞에 온전한 제물(헌금)이 되리니 요한일서 3장11~12절에 "우리가 서로 사랑할찌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 가인 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찐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우리가 아직도 그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제어하지 못하고 절제하지 못하여 계속하여 미워하고 원망하고 분노하고 비방하고 함부로하고 갑질하는 죄와 악으로 행한다면 가인 같인 악한 자에 속한 자가 되어 하나님께서 그 제물을 받지 않으실 것이며 버리고 비워서 "서로 사랑하라." 하신 최고한 계명으로 행하는 자는 의로운 자로서 그 제물(마음)을 받으실 터이니 그리스도께서 앞서서 죄와 악을 어찌하든지 버리기 위하여 흘리신 피땀눈물의 십자가 고난의 본보기를 보이신 것은 우리 또한 그 본과 자취(베드로전서 2장21절)를 좇아서 따라 지켜 행하게 하기 위함이요 그리스도와 같은 의로운 자로 나타나 하나님께 있는 생명과 안식과 구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는 것을 잊지 마셨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