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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교훈 안에 2021. 2. 28. 08:10

오늘은 창세기 6장14절에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에서 "방주(方舟)"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노아의 때에 노아가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대로, 지으라고 하신대로 만들었던 이 "방주" 에 관하여 오늘 이 시간에 살펴보고자 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을 잘 몰라 안믿고 못믿는 저 세상 사람들도 다 알고 어느 누구나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 역사적 지식 차원의 그 "방주" 에 관하여 또 다시 살피고 알아보고자 함이 아니라 이러한 지식 차원은 그저 표면적이고 초보적인 수준에 불과하고 전부가 아닌 부분적인 것에 불과하며 다만 누가복음 17장26절에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하시는 것처럼 노아의 때에 있었던 "방주" 에 관한 일이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다시 오신다고 하신 세상 끝, 마지막 때, 오늘날에도 동일하게(베드로후서 3장7절) 동일한 말씀이 적용되기 때문에 또한 마태복음 5장18절에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하고 쓰고 있듯이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기록하게 하신 성경 66권 하나님의 말씀을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다 이루시겠다고 하신 약속의 예언의 말씀이기 때문에 우리 시대, 우리 세대에 맞는 변화(누가복음 12장56절) 즉 참 형상, 실상의 차원에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온전한 뜻이 무엇인지를 전하고자 함이 살피고자 하는 이유와 목적이니 그 때 그 시대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고 예비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홍수에 쓸려서 멸망당하였던 전차를 또 다시 밟게 된다면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도 다 헛 것이 될 것이요 우리의 믿음 또한 헛 일(고린도전서 15장14절)이 될터이니 믿는 자라고 한다면 반드시 우리 시대에 투영될 노아의 때의 "방주" 는 어떠한 모습일지 알아야 멸망과 파멸과 사망에 이르지 않고 하나님의 생명과 안식과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시길 바라며.....  

창세기 6장15~16절에 "그 방주의 제도는 이러하니 장이 삼백 규빗, 광이 오십 규빗, 고가 삼십 규빗이며 거기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찌니라." 하시면서 22절에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하시는 것처럼 여기에서 "방주의 제도" 즉 그 식양과 모형은 노아가 임의대로 지어진 것이 아니라 하늘 위에 계신 하나님께서 보이신대로, 명하신대로 지어진 것으로써 이는 모세의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 중에 거하실 장막(회막,성막,성소)을 모세에게 짓게 하심과 똑같은 상황이니 모세도 모세 임의로 마음대로 장막을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이신대로, 명하신대로 만들었음은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표면적인 표현 방법이나 모양(방주,장막)은 다를찌라도 그 속 뜻, 참 형상은 동일한 것이니 시간은 흘렀지만, 공간은 바뀌었지만 하나님의 뜻은 항상 동일하기 때문이며 그런즉 노아의 때를 통하여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은 이 모세의 장막을 통하여 유추(類推)할 수 있고 모세의 때에 있었던 역사적 사건이나 사실이 무엇을 말하는지 찾기 어려울 때에는 노아의 때를 살펴서 미루어 짐작하여 살필 수 있는 것이니... 출애굽기 25장에서 기록하고 있고 참 형상에 관하여는 히브리서 8장, 9장에서 아주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으며 앞으로 이 모세의 장막에 대하여도 살펴 볼 때가 오겠지만 오늘은 "방주" 와 비교하기 위하여 간단하게 모세의 장막을 들여다 보자면 장막은 오늘날의 교회(성당,성전,예배당)를 의미하는 것으로써 성소와 지성소가 있어서 그 사이를 휘장으로 나누고 있으며 성소를 첫 장막, 예비 장막이라 하고 지성소를 둘째 장막, 증거 장막이라 하며 또한 이 장막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이므로 계시록 13장6절에서는 "장막 곧 하늘"이라 표현하여 기록하고 있으며 그런즉 첫 장막은 첫째 하늘이, 둘째 장막은 둘째 하늘이 되며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12장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이 이끌려 간 세째 하늘에 관하여 기록하고 있으니 사도 바울이 세째 하늘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는 것은 첫째 하늘, 둘째 하늘도 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리스도께서도 히브리서 8장2절에서 "성소와 참장막을 부리는 자라." 기록하고 있으니 당연히 알고 계셨으며 참 장막이 바로 세째 하늘이며 모세도 장막을 만들었으니 당연히 세째 하늘의 존재를 알고 있었을 것이며 노아 또한 방주를 상 중 하 삼층으로 만든 것은 임의대로 마음대로 지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이신대로 명하신대로 지은 것이 맞는 것이며.....

중요한 것은 히브리서 8장5절에 "저희가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그림자라. 모세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 하시는 것처럼 노아의 방주든 모세의 장막이든 이는 그 시대에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을 모시는 그 시대, 그 세대에 맞게 하나님을 믿는 방법이며 그리스도께서도 당연히 그 시대 그 세대에 하나님을 믿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노아의 방주에 관하여, 모세의 장막에 관하여 가르치고 알리고 전하였을 것이니 사도(사도행전,고린도후서,히브리서,계시록... 등등등)들이 말씀으로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며 하지만 그들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으심을 겪기 전에 제대로 귀담아 듣고 그 뜻을 헤아려 이해하여 믿음으로 실행하고 지켜 행하였다면 두 번째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지 않았을 것이라. 이제 그 모든 기회와 참 뜻을 알아야 하고 또 전해야 하며 무엇보다 우리 자신이 지켜 행하는 참 된 믿음의 도리를 지켜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다시 오신다고 하신 세상 끝, 마지막 때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몫이며 오늘날 우리 시대에 하나님을 섬기고 모시고 믿는 올바르고 온전한 방법은 노아의 방주, 모세의 장막과 같은 하늘의 모형과 그림자 곧 피상적이고 초보적인 것에 의지하여 하나님을 섬기고 모시며 믿는 것으로는 우리를 온전케(히브리서 9장9~10절) 할 수 없으므로 하나님을 섬기며 믿는 사람으로서 반드시 참 형상을 알아야 할 의무와 사명이 우리에게 있고 그 사명에 열심과 충성을 다하는 것이 우리의 진정한 할 일임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베드로전서 3장20~21절에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명 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물은 예수 그리스도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하고 쓰고 있듯이 오늘 본문의 말씀 창세기 6장14절부터 기록하고 있는 방주는 하늘의 모형과 그림자 즉 표면적이고 초보적인 차원이라면 이 베드로전서 3장20~21절은 방주에 대한 참 형상을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써 우리는 홍수로 세상을 멸한 "물" 만 알고 있지만 사실은 방주에서 구원을 얻게 한 "물" 도 있으니 그 물은 우리의 육신, 몸의 더러움을 씻는 물이 아니라 서로 미워하고 원망하고 분노하고 비방하며 서로 사나워져서 다투고 함부로하고 갑질하는 못됐고 나쁜 마음의 더럽고 추하게 만드는 죄와 악을 씻어 선한 양심으로 바뀌고 변화되게 하는 세례의 물로써 죄와 악은 마음과 생각에 새겨져서 우리 사람을 더럽게 만드는데 물을 뿌리고 발을 씻기고 손을 씻는 세례, 몸을 아예 물 속에 담그는 침례 세례를 한다고 하여 그 마음에 있는 죄와 악이 씻겨지고 깨끗해질까? 이는 그저 예의를 갖추어서 보여주기 위한 형식적, 의식(儀式)적인 것에 불과하며 오직 그리스도께서 "솟아나는 샘물", "생수의 강" 하신 말씀의 물로만 씻어서 깨끗하게 할 수 있으며 이것이 참 형상의 물 세례이며 이것을 예비하고 준비하는 것이 방주를 만드는 것이며 그 샘물, 생수의 핵심 키워드는 "서로 사랑하라." 하신 최고한 계명, 완전한 율법이며 이를 지켜 행하기 위해서는 부득불 삶 속에서, 생활 속에서 죄와 악을 씻는 피땀눈물의 노력이 필요하며 이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이며 우리 시대에 방주를 짓는, 믿음의 방식이라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