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세기 9장1절)
오늘은 창세기 9장1절에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에서 "생육" 과 "번성" 과 "충만" 에 대하여 로마서 9장과 연결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생육" 이라 함은 말 그대로 태어나서 자라나는 것을 의미하며 자라난 자녀들 곧 자손은 또 생육하게 되니 자연적으로 번성하게 되며 번성하고 번성함이 충만하게 되리니 창세기 9장18~19절에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아들들은 셈과 함과 야벳이며 함은 가나안의 아비라. 노아의 이 세 아들로 좇아 백성이 온 땅에 퍼지니라." 하시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 아들 셈, 함, 야벳에게 말씀하신대로 노아의 아들들이 낳은 아이들, 자녀들이 자라나서 온 땅에 퍼지는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였으며 물론 노아의 때에는 이 약속이 그 당대에 이루어지는 말씀이라 여겼겠지만 이 약속은 노아의 때에 이루고자 하여 기록하신 말씀이 아니라.....
중요한 것은 창세기 11장에 보시면 노아의 아들 셈의 자손 중에서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태어나게 되는데 아브라함은 노아의 10대손으로써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하신 이 생육, 번성, 충만의 약속을 아브라함을 통하여 이루고자 하셨으니 하지만 히브리서 11장11~13절에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죽은 자와 방불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이 생육하였느니라.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 하고 쓰고 있듯이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식을 낳고, 낳고 또 낳아서 후손을 많이 얻은 것이 생명에 관한 본능이요 자식을 얻지 못한다면 죽은 자와 다름이 없는 것인데 창세기 16장에 보시면 아브라함에게는 본처 사라가 있었지만 자식을 낳지 못함으로 인하여 그의 여종을 통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바로 "이스마엘" 이며 그러나 창세기 17장6~7절에 "내가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니~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하시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이스마엘을 통하여 아브라함과 아브라함의 후손의 하나님이 되는 것이 약속이 아니라 "이삭" 을 통하여 그 약속을 이루고자 하신 것이며 그 약속대로 창세기 21장 시점에 와서 100세가 된 아브라함을 통하여 "이삭" 을 낳아 생육하였으며 이삭은 야곱을, 야곱은 열 두 아들을, 열 두 아들은 12부족을 이루고 모세의 때에 12지파를 이루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약속대로 비로소 생육하고 번성하고 셀 수 없을 정도로 땅에 충만하게 되었으며 하지만 그 약속을 받은 줄로만 알았는데, 이루어진 줄 알았는데 그들은 그저 믿음을 따라 죽었으니 다시 말해서 히브리서 11장39~40절에 "이 사람들이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니~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하나님의 이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라 하신 약속의 말씀이 이루시는 때는 그 때 그 시대 그 세대가 아니라 그들은 증거만 받았을 뿐 약속이 이루시는 때는 먼 훗날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다시 오신다고 하신 오늘날 우리의 시대에서 이루고자 하시는 것임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래서 로마서 9장7~8절에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하리라 하셨으니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하시는 것처럼 오늘 본문의 말씀인 창세기 9장1절에서 말씀하신, 약속하신 이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라 하신 그 자손이 무조건 아브라함의 씨면, 그 자손이면, 후손이면 되는 것이 아니라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할 약속의 자손은 따로 있다는 것을 의미하니 다시 말해서 이는 혈통(요한복음 1장13절)으로나 육정(인맥,지연,학연... 등등등)으로나 사람의 뜻(축복,안수,세례... 등등등)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갈라디아서 3장16절) 곧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에게 붙은 자(고린도전서 15장23절)요 그리스도의 본과 자취(베드로전서 2장21절)를 좇아서 따라 행하는 그에게 속한 자(계시록 14장4절)요 무한반복 범한 죄와 행한 악에 대하여 용서만 구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죄와 악을 마음과 생각에서 제하여 버리고 이제는 죄와 악의 무겁고 더러운 옷은 벗어버리고 빛의 갑옷,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로마서 13장12~14절)라야만이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며 또한 로마서 9장 27~28절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뭇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찌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사 필하시고 끝내시리라 하셨느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바다의 모래 같다는 것은 혈통, 혈육으로 낳은 육신의 자녀가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도 오직 남은 자 즉 악속의 자녀라야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 붙은 자, 옷 입은 자라야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진정한 생육, 번성, 충만하게 하기 위하여 구원을 얻게 하시는 것이며 이것이 성경 66권을 통하여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빅 픽쳐, 큰 그림이라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로마서 9장30~32절에 "의를 좇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의의 법을 좇아간 이스라엘은 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 하시는 것처럼 여기에서 "의(儀)의 법" 이라 함은 실질적으로 우리 사람의 잘못된 오류 곧 미워하고 원망하고 분노하고 비방하고 훼방하고 사나워져서 다투고 함부로하고 갑질하는 죄와 악은 계속하여 행하면서 말로만 "주여 믿습니다." 하며, 입으로만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시고 악에서 구하옵소서" 하며 혀로만 "사랑과 평화" 를 외치고 부르짖으면서 정작 사람의 계명 곧 체면과 자존심을 더욱 중요시 하면서 자신들의 행실을 고쳐 행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며 그런즉 비록 하나님을 잘 몰라 안 믿고 못 믿던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최고한 계명과 완전한 율법이 무엇인지 잘 몰랐다 할지라도 참된 의(義) 즉 "서로 사랑하라." 하신 말씀대로 다른 사람의 입장과 처지를 먼저 헤아리고 이해하고 존중할 줄 알며 관용하고 배려하고 양보할 줄 아는 사람 곧 이방인들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더 의(義)를 좇아간 사람들이 되어서 하나님의 의(義) 곧 생명과 안식과 구원에 더욱 가까웠으니 입으로만, 혀로만, 말로만 하면서 체면과 자존심을 더 좇아가는 자는 의(儀)의 법 곧 형식과 절차와 순서를 따라서 의식(예배,예식), 의문(儀文)을 좇아 행위에 의지하는 육신의 자녀는 하나님의 빅 픽쳐, 큰 그림에서 남은 자가 될 수 없으니 진짜 씨는 사람의 씨 즉 혈통으로 육정으로 사람의 뜻으로 난 씨가 아니라 하나님의 씨 즉 하나님의 씨는 누가복음 8장11절에서 말씀이라 하였으며 그 씨, 말씀의 핵심 키워드는 요한일서 3장11~15절에서도 기록하고 있듯이 처음부터, 창세부터 하나님께서는 "서로 사랑하라." 하신 것이며 최고한 계명이요 체면과 자존심과 같은 모양만 좇아가는 의의 율법이 아닌 완전한 율법이며 이를 지켜 행하기 위하여 어려서부터 행하여 왔던 죄와 악을 버리고 비우고 죽이기 위하여 피땀눈물의 노력 곧 십자가의 고난을 겪으신 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이 고난이며 이것이 진정한 생육, 번성, 충만하게 하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약속을 믿는 믿음의 의로써 몸소 실천하여 본보기를 보이신 것이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며 이로써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게 될 참 형상의 맏아들이 되시고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부활에 참예하셨으니 이는 그리스도 당신을 위하심이 아니라 이를 본보기로 보고 따라오고 좇아오게 될 우리들을 위하심이니 그런즉 우리 또한 그리스도를 본받아서 서로 사랑하라 하신 하나님의 의를 좇기 위하여 사람의 뜻, 사람의 의를 좇는 체면과 자존심, 이 체면과 자존심을 좇기 위하여 죄와 악을 행하던 것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피땀눈물의 노력 곧 십자가의 고난을 그리스도와 같은 마음으로 행할 때에 생육, 번성, 충만하는 약속의 자녀가 된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